제9 자한편(第九 子罕篇)-4
나이를 더해 갈수록 끊어야 할 것들이 분명해진다. 좋지 않은 부분이 점점 확실히 느껴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가만히 생각해 보면 좋은 점을 놓을 수 없어 다시 시작하곤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담배 첫 모금을 깊게 빨고 난 후 내뱉을 때 답답함의 끈적함들은 함께 밀려 나간다. 그 순간은 내 폐에 못된 멍울들이 스멀스멀 몽글거린다고 해도 절대 포기하기 어려운 후련함이다.
한잔 술에 울분을 녹이고, 두 잔술에 벗을 확인하고, 세 잔술에 천지와 하나가 되다가 마침내 꼭지가 돈다. 이러한 경지에 이르러 보면 간 따위의 사소한 내장의 건강을 고민 것은 대장부의 일이 아니다.
과거 존재했던 사법고시 수석합격자도 근접하지 못할 집중력으로, 상대방의 패를 계산해 힘차게 배팅한 것이 적중하는 희열은, 느껴보지 못한 사람은 알지 못한다. 노름꾼(gambler)에게 있어 해가 지는 것은 판을 벌이라는 신호이고 해가 뜨는 것은 힘내라는 격려이다.
하지만 이러한 열정도 시간의 흐름은 당해내지 못한다. 더 하고 싶어도 혈압, 혈당, 간 수치, 그리고 쌈짓돈의 규모가 감당할 수 없게 한다. 무엇보다 ‘옳지 않다’는 다른 사람의 말 없는 시선은 찬물 만난 번데기처럼 자존감의 급격한 수축을 피할 수 없게 한다.
세상의 모든 것은 변한다. 오직 변하지 않는 것은 변한다는 사실뿐이다.① 만일 이 명제가 옳다면 ‘영원 불변의 확고한 나의 신념’은 정신 나간 헛소리가 될 수밖에 없다.
意: 내가 윗사람이라고 합의의 과정과 절차를 무시하고 결정하는 것은 위험하다. 옳다는 기준이 항상 변할 수 있으므로 내 생각을 항상 새로운 기준과 비교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생각만을 기준으로 독단하는 것은 ‘꼰대’로 임명되는 지름길이다.
必: 골뱅이 소면에 오이가 빠진 것에 분노해 목젖을 공개하며 “골뱅이 소면엔 반드시 오이가 들어가야 한다”라고 절규하는 것은 반드시 ‘꼴통’ 소리를 피할 수 없다. 골뱅이 소면에 소면이 빠져도 얼마든지 맛있을 수 있다.
固: 과거에 옳다는 것이 입증된 경험적 사실에 근거해 정당함을 주장하는 것을 전문용어로 ‘라때는’이라고 표현한다. ‘라때는’ 성향을 가진 사람들의 특징은 과거를 매우 신뢰하며 미래를 향한 시선에 매우 인색하다. 진화론적 관점에서 상상해 보면 시간이 흐르면 눈이 뒤통수로 이동할 개연성이 매우 높다.
我: 이 세 가지 성향이 일정 수준을 넘어 하나로 모이게 되면 ‘자기 확신’의 경지에 이르게 된다. 세상은 나 아니면, 안된다. 나는 무조건 옮으며 내가 가장 수고하고 내가 모든 사람을 먹여 살리는 존재가 되는 것이다. 우리는 이런 사람을 ‘갔다’라고 표현한다. 문법적으로 ‘동사의 일반명사형 표현’이라고 한다.
내가 아는 노인네 중에 위 4가지를 전부 해보고 ‘이렇게 살면 안 되겠다’라고 깨닫고 끊어 버린 사람이 있다.
공자께서는 네 가지를 끊었다. 자기 마음대로 결정하지 않으셨고, 틀림없이 그렇다고 단언하지 않으셨고, 고집하지 않으셨으며, 따라서 아집을 부리는 일이 없으셨다.②
본문에 분명히 ‘끊었다(絶)’라는 표현이 있는 것으로 보아 공자 스스로가 한때는 ‘꼰대’, ‘꼴통’, ‘라때는’의 삶을 살았고 마침내 ‘갔던’적이 있다는 것을 고백한 아름다운 문장이다.
다만 아쉬운 점은, 지가 그렇게 살 때 주변에서 유탄 맞은 사람들에 대해 심심한 사과와 반성이 빠졌다는 점이다. 그래도 잘못을 알고 끊었으니 대단한 일 아닌가? 나도 슬며시 끊어 볼 궁리를 하고 있다.
① 『주역』 관련한 책 어딘가에 나오는 말인데 어딘지 까먹었고 찾기는 귀찮아 그만뒀다.
② 류종목 지음 『논어의 문법적 이해』 ㈜문학과 지성사. 서울. 2020. pp.292-293.
원문은 子絶四: 毋意, 毋必, 毋固, 毋我.이다.
통해 에서는‘絶四’ 부분의 해석을 “네 가지 일을 전혀 하지 않으셨으나 “로 해석했다. 그러나 ‘絶‘의 해석이 매우 나른해, 문법 설명 및 어휘 풀이를 인용해 ”네 가지를 끊다 “로 바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