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앙코르’, 공자와 조영남의 차이 - 歌而善, 比使反之

제7 술이편(第七 述而篇)-31

by 누두교주

연주나 노래를 잘할 경우 우리는 출연자의 솜씨를 찬양하여 박수를 치며 ‘앙코르(encore)'를 외치는 경우가 있다. 듣는 사람도 행복하고 앙코르 요청을 받는 출연자에게도 기쁜 일이 아닐 수 없다.

앙코르는 중국어로 짜이 창(在唱 - 또 불러①) 이라고 하는데 내가 아는 한 문헌상 최초로 '또 불러'를 외친 사람은 공자이다.


공자께서 남이 노래하는 자리에 함께 있을 때 잘 부르면, 반드시 그것을 반복하게 하고는, 뒤이어 함께 따라 부르셨다.(2)


지금 이 글을 읽는 분들은 고대 한문 문헌에서 최초의 앙코르 사례를 발굴한 엄청난 성과를 함께 음미하고 있다고 생각하면 된다. 동시에 2,500여 년 동안 술만 마시면 '또 불러'를 외치면서도 정작 『논어』가 출전임을 몰랐다는 신비한 사실도 공유하는 것이다.




그런데 가수가 노래를 잘해서 청중이 '또 불러'하는 것은 이해가 가는데, 가수가 지가 노래 부르다 자기 흥에 겨워 청중들에게 따라 부르길 유도하는 경우도 있다. 청중들이 얼떨결에 가수가 시키는 대로 한 번 따라 불렀는데, 또다시 "한 번 더~~"를 외치며 다시 반복하도록 하는 가수도 생존해 있다. 조영남이다.



가수가 자기 이름을 걸고 개인 콘서트를 한다면 그건 오롯이 그 가수(또는 그룹)의 무대이며 찾아가는 관객들도 그 가수를 매우 좋아하는 사람들이 모인 경우다. 따라서 같이 펄펄 뛰던, 서로 '또 불러'를 시키던 그다지 특별난 일은 아니다.


하지만 예를 들면 가요무대와 같이 여러 명의 가수가 나오고 사회자가 일일이 소개하는 경우는 시간도 그에 맞추어 써야 한다는 것이 상식이다. 즉 내가 시간을 많이 쓴다는 것은 다른 사람의 시간의 뺏는 것과 다르지 않은 결과가 된다. 그런데 나올 때마다 "한 번 더~~"를 외치며 실실 웃는 가수가 조영남이다.




공자가 잘하는 노래를 들으면 "한 번 더~"를 요구한 이유는 뭘까? 주희의 해석을 보자.


반복하여 노래를 부르게 한 것은 그 상세함을 알아 좋은 것을 취하려 하는 것이요, 뒤에 따라 부른 것은 자세한 것을 앎을 기뻐하고 그의 좋은 점을 許與(인정) 해준 것이다.➂


이렇게 이해하는 것이 맞을까? 이 해석의 뒤에는 "이는 성인의 기상이 종요하고 성의가 간절하며, 또 겸손하고...." 운운하며 장황하게 이어진다.


내가 볼 때 공자가 '또 불러'를 시키고 자기가 따라 부른 이유는 그냥 자기가 듣기에 '노래가 좋아서 그런 것'이다. 그걸 애써서 상상해 엄청난 일로 포장하는 것은 SF 소설과 다르지 않다.




지극히 주관적인 생각이지만 난 조영남 노래가 참 듣기 좋다. 듣기에 시원하고 듣고 나면 개운하다. 조영남은 가장 고급 진 목청을 가지고 있지만 편하고 흥겨운 노래를 부른다. 대 학자가 잘난 척 안 하고 어려운 이야기를 쉽게 하는 것 같다. 허름한 식당에서 기대 않고 시켰는데 투 뿔 한우를 삼겹살 값에 만난 것 같은 느낌이 든 적도 있었다.


아무리 그렇다고 하더라도 조영남의 얼굴과 '한 번 더~'는 좀 받아들이기 어렵다. 그래도 그의 노래가 듣고 싶을 때는 음원을 찾아 좋은 소리로 들으려 한다. 듣기 좋으면 내가 re-play 시키면 된다. 아니면 끄면 된다.


① 『論語译注』杨伯峻 译注。中华书局。 北京。 2019. p.74


②『논어 論語』김학주 역주. 서울대학교 출판문화원. 서울. 2009. p.116.

원문은 아래와 같다.

子與人歌而善, 比使反之,而後和之

➂ 『顯吐完譯 論語集註』傳統文化硏究會. 서울. 1991. p.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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