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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누두교주 Nov 02. 2022

농자천하지대본이라는 개 뻥! - 焉用稼?

제13편 자로(第13篇 子路) - 4

  농악 놀이를 할 때 항상 크게 써 앞세우는 글귀가 ‘농자천하지대본’이다. 농사짓는 것이 하늘 아랫사람들이 살아가는 큰 뿌리라는 뜻이다. 그래서 농사짓는 농민은 매우 중요한 사람이라고 추켜세우는 것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농사짓는 농민들은 항상 수탈의 대상이었으며 농업은 돈을 벌 수 있는 산업이었던 시절은 결단코 존재하지 않았다. 따라서 농사짓는 농민들이 모여 사는 농촌은 고된 노동과 빈곤이 모여있는 공간과 다르지 않았다.     


  누군가는 가장 위대한 스승으로 존경해 마지않는 공자는 농사를 어떻게 생각했을까? 매우 중요한 것을 인정하고 먹는 것에 매일 감사하며 농부의 노고를 위대한 가치로 칭송했을까? 우리가 흔히 들어 알고 있는 사·농·공·상의 위계질서를 혹시 공자가 만든 것은 아닐까? 모두 택도 없는 소리다.     


  공자의 제자 번지(樊遲)가 곡식 기르는 법과 채소밭 가꾸는 것을 가르쳐 달라고 요청하자 공자는 두 번 모두 “나는 늙은 농부만 못하다”며 거절했다. 그걸로 끝난 것이 아니라 특유의 뒷담화로 제자의 뒤통수를 깠다.  

   

  번지가 나가자,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소인이로다, 번수는!


  윗사람이 예를 좋아하면 곧 백성들은 감히 공경치 않을 수가 없게 되고, 위 사람이 의로움을 좋아하면 곧 백성들은 감히 복종하지 않을 수가 없게 되며, 윗사람이 신의를 좋아하면 곧 백성들은 성실히 행동하지 않을 수가 없게 된다.


  이렇게만 되면 곧 사방의 백성들이 제 자식을 포대기에 싸 업고 모여들 것인데,


  곡식 기르는 법은 어디에 쓰겠는가?”  

  

  나는 처음 『논어』를 읽을 때 “곡식 기르는 법은 어디에 쓰겠는가?”라는 공자의 말에 심한 배신감을 느꼈다. 사람이 먹지 않고 살 수 없는 법인데 어떻게 이렇게 무시할 수 있을까? 공자의 이런 언사가 식량이 끊겨 단체로 쫄쫄이 굶는 지경에 이르는 되빠꾸를 맞게 됐다고 나는 확신한다.      



 

   우리 가여운 할아버지 할머니들은 ‘농자천하지대본’을 하늘처럼 믿고 그저 땅에 엎어져 평생 호미질, 쟁기질을 하다 그 땅으로 돌아가셨다. 그때 같은 하늘 아래서는 보리와 콩도 구분하지 못하면서 예의를 말하고 의리를 말하고 신의를 말하며 호의호식하는 무리들이 있었다. 이게 말이 되는 소리인가?     


  21세기를 사는 오늘, 우리는 여전히 먹는다. 더 잘 먹는다. 그런데 사다 먹는다. 반도체, 자동차 만들어 팔면 될 일이지 곡식 그까짓 “곡식 기르는 법은 어디에 쓰겠는가?” 그래서 농사짓는 사람은 바보가 되고, 농업은 사양 산업이 되었고 우리 농촌은 적막강산의 거대한 양로원으로 변했다.     


  그 결과 쌀을 제외한 우리나라 먹거리 자급률을 5%에 불과하다. “곡식 기르는 법은 어디에 쓰겠는가?” 하는 공자의 가르침을 참 잘도 실천했다.




  농자천하지대본을 믿고 흙과 삶을 함께한 오늘날의 농부는 벌컥벌컥 서러움을 마시고 우리 곁을 떠났다. 농자천하지대본의 영예로움을 뒤로하고 그는 아마도 “곡식 기르는 법은 어디에 쓰겠는가?”를 중얼거리며 갔을지도 모르겠다.     


한여름 땡볕

양짓말 삼촌은

비닐하우스 안에서

숨이 턱턱 막힐 지경이었다     


홀아비 살림 이십년 만에

적도 부근에서 데려온

까무잡잡 키 작은 어린 아내

집 나간 지 이태째     


도망치듯

비닐하우스에서 나와

장화를 벗으면

주르륵 물이 흘러나왔다

삼촌이 흘린 땀이었다     


상추 쪽파 부추 얼갈이

그해 봄에서 여름까지

비닐하우스 갈아엎기를 네댓번

몇 년 새 쌓인 빚이

집채보다 높아졌다     


그해 여름

폭염주의보가 경보로 바뀐 날

양짓말 늙은 삼촌은

비닐하우스에서 나오자마자

제초제를 병째 들이켰다고 한다

벌컥벌컥 들이마셨다고 한다


원문은 農者天下之大本也, 民所恃以生也而民惑不務本而事未故生不遂이다. 한나라 고조 유방의 아들 효문제라는 친구가 농민에게 농사를 권하기 위한 조서의 첫마디이다. 농자천하지대본 뒷말을 잘 새겨보면 협박문과 다르지 않다.     


 사·농·공·상 : 관리(士)·농민(農)·기술자(工)·상인(商)을 뜻한다. 최초의 의미는 이 네 종류의 직업을 가진 사람들이 국가의 기초가 된다는 것으로 절대 하는 일의 서열을 매긴 것은 아니다. (士農工商四民國之礎-『管子』) 요걸 서열로 해석한 집단은 틀림없이 좋지 않은 생각을 가진 종자들이었다. 자고이래로 편 가르기 하는 놈들 중에 착한 사람은 없었다.     


김학주 역주 『논어 論語』 서울대학교출판문화원. 서울. 2009. pp216-217. 원문은 아래와 같다.

樊遲請學稼, 子曰: 吾不如老農. 請學爲圃, 曰吾不如老農:.


 ibid. 원문은 아래와 같다.

樊遲出, 子曰: 小人哉, 樊須也! 上好禮, 則民莫敢不敬, 上好義, 則民莫경不服, 上好信, 則民莫敢不用情. 夫如是, 則四方之民, 襁負其子而至矣, 焉用稼?


진채 절량(陳蔡絶糧)이라고 한다. 공자와 제자들이 진나라와 채 나라 사이에서 오도 가도 못하는 데다 양식이 떨어지는 사태를 만났다. 그래서 배가 고팠다. 배고프면 화가 나는데 그때도 그랬다. 공자는 화 안 난 척했다.


이문재 지음 『혼자의 넓이』 ㈜창비. 경기, 파주. 2021. pp.118-119. 시제는 「농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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