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녀가 만나 사랑에 빠지는 상황을 영어로는 '매직'이라고 하고 우리말로는 '콩깍지'라고 한다. 과학적으로는 '세로토닌'이라는 호르몬이 분비되는 상황이다.
이 세로토닌의 마술은, 사람 눈에 콩깍지를 씌워 상대방의 결점을 못 보게 한다는 점이다. 그러니 사랑에 빠진 커플은 외줄기 길을 걸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문제는 세로토닌의 농도가 유지되는 기간이다. 즉 콩깍지도 영원히 씌워 있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세로토닌의 농도가 높게 유지되는 기간은 2년 정도이고 길어야 3~4 년이라고 한다. 그 후에는 상대방의 결점이 보이기 시작한다. 콩깍지가 벗겨지는 것이다. 물론 서로 노력하면 그 매직은 늘 갱신된다.①
말이 쉬워 노력이지, 뭘 어떻게 하라는 이야기인가? 거듭나기 위해 커피를 내리고 웍을 돌려보지 않은 사람은 상상하기 어려운 질문이다.
아무생각없이 함께 산지 여러 십 년이 넘은 커플들에게 있어 ‘사랑’은 민망하고 어색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한때 그토록 간절했던 그분(또는 그놈)을 ‘가족’의 범주에 넣어 자기화시키게 된다. 결국 서로 아무렇지도 않고 무심해지다가, 자칫하면 outsourcing 하는 사단에 이르게 된다.
사람의 마음은 옛날이나 지금이라 다를 바 없어, 사랑의 단물이 다했으나 아직은 서로 말할 용기가 없는 상태를 노래한 시를 『논어』에서도 만날 수 있다.
산 이스랏 꽃이 팔랑팔랑 나부끼네! 어찌 그대가 그립지 않으랴만 집이 너무 멀구나!②
야생 앵두나무 꽃잎이 팔랑팔랑 떨어지는 좋은 계절에 님을 그리는 것 같다. 그런데 결론은, 너무 멀어서 못 간다는 이야기다. 다분히 속이 보이고 배반의 감정을 느끼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다.
정말 좋다면 거리가 뭐가 문제가 될까? 이 시(詩)에 대한 공자의 반응도 다르지 않다.
그(녀)를 그리워하지 않는 것이지 멀 것이 뭐 있느냐?③
남자가 여자를 그리운 척하는 것인지, 여자가 그런 것인지는 확실치 않지만, 내가 볼 때는 여자가 남자를 그리워하는 척하는 것이 틀림없다. 그 이유는 산 앵두나무 꽃을 보고 누군가를 떠올릴 남자는 그렇게 많지 않을 것 같다. 나의 경우는 산 앵두나무가 어떻게 생겼는지도 모른다.
대부분의 잘난 사람들이 쓴 책은 이 구절을 인(仁)과 연관시켜 설명하고 있다. 즉 인(仁)은 멀리 있지 않은데 사람들이 노력하지 않는다는 것(仁遠乎哉)이다.
나는 그런 상상력이 매우 신기하다. 그리고 더 신기한 것은 그것을 믿고 외우며 따라 하려고 했던 사람들이다.
이 구절은 사랑에 소극적이거나 또는 썸만 타는 누군가를 책망하는 공자의 준엄한 질책이라고 보는 것이 옳다. 아니면 이미 잡아 논 고기라고, 뺀질뺀질 핑계 대며 등을 보이며 돌아눕는 가증스러운 행위에 대한 비판으로 해석하는 것이 맞다.
틀림없이 공자도 다 해본 일이다.
논의가 이쯤 진행되었다면 '세로토닌 농도 유지 기간에 맞춘 임기제 부부 제도'를 검토해 봐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좋은 생각인 것은 맞지만 우리나라 국회 형편상 그다지 현실적인 생각은 아닌 것 같다. 그렇다고 outsourcing 잘못하다가는 경을 치기 십상이다. (물론 잘하면 일없다)
따라서 피차간에 ‘낙장불입’④의 마음으로 항상 긍정적인 변화를 추구해야 할 일이다. 그것이 상대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이며 생존 조건이다.
어느 시인의 눈에 띈 식당 화장실의 명언은, 이를 잘 표현하고 있다.
후회하기 싫으면 그렇게 살지 말고 그렇게 살 거라면 후회하지를 말아라④
① 최병광 지음 『혹시 여행 간다면 사진 찍고 책도 내고』 한국평생교육원. 대전. 2021. p.155.
② 류종목 지음 『논어의 문법적 이해』 ㈜문학과지성사. 서울. 2020. pp. 319-320. 원문은 다음과 같다. “唐棣之華, 偏其反而! 豈不爾思? 室是遠而!”
③ ibid. 원문은 다음과 같다. “未之思也, 夫何遠之有?”
④ 설령 실수라도 한번 꺼낸 패는 다시 되돌릴 수 없다는 도박 용어. 원어는 ‘落張不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