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지 않은 감정 (슬프거나 화가 나는 등)을 추스르는 것은 매우 힘들다. 하지만 너무 좋아 up 된 감정을 다스리는 것은 더 힘들다. 그런데 여기에 아주 좋은 방법이 있다. 정치면 뉴스를 보면 된다. 그렇게 하고도 30분 이상 좋은 감정을 유지할 수 있다면 한국 사람이 아니거나, 또는 이미 도통한 도사가 틀림없다.
술자리가 산만해질 때도 정치를 화제로 하면 갑자기 모두가 집중하며 취기가 싹 가신 눈빛들이 된다. 아무리 좋은 사이라고 하더라도 한국 정치 이야기 10분만 하면 싸움 나기 딱 좋다.
한국 정치는 도대체 뭐가 문제인가? 편 가르기? 내로남불? 또는 나대기? 당연히 이 질문에도 답은 없고, 갑자기 기분이 상하는 효과만 존재한다.
그런데 평생을 정치 한번 해보려고 기웃거리던 공자는 정치에 대해 어떤 신념을 가지고 있었을까?
“덕으로 정치를 하는 것을 비유하자면 마치 북극성이 제자리에 가만히 있는데 뭇별들이 그것을 에워싸고 도는 것과 같다.”①
쉽게 이야기하면 왕은 딱 중심만 잘 잡으면 된다. 편 가르지 말고, 치우치지 말고, 북극성처럼 한자리에 한결같이 존재하면 된다는 것이다. 7080의 언어로 "왕이 큐대 잡고 시내루 주려고 하지 말고 게임돌이만 잘 보면 된다 “는 뜻이다.
이는 노자의 생각과도 다르지 않다. (나는 유교와 도교는 다르다고 생각하지만, 공자와 노자의 생각은 다르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삼십 개 바큇살이 하나의 곡에 모이는데, 그 텅 빈 공간이 있어서 수레의 기능이 있게 된다.②
다만 문제는, 항상 자신과 자신의 주변을 깨끗이 관리하며, 오직 백성의 안위를 걱정하며 정국의 무게 중심을 잡아가는 역할을 해야 하는데 하지 못했던(안 했던) 최고 통치자들에게 있었다.
그래서 공자는 십 년 넘는 세월, 그렇게 여러 군데 원서를 냈어도 취직하지 못했다. 노자는 도서관에서 책 정리하다가 소 타고 출국했고, 삼봉은 뭔가 해보려던 이방원(훗날 태종)에게 맞아 죽었다.
내가 생각하기에, 현대 민주사회에서 우리가 정치를 이야기할 때 만나는 불쾌함은 '왜 그들은 우리와 다르냐?'는데 있다. 그래서 나타나는 "지들이 뭔데 지들은 그래도 돼?" 란 반감이, 서로 확대 재생산되며 악순환되는 것이다. 결국 뱀 두 마리가 서로 꼬리를 물고 뱅글뱅글 돌기만 하는 것이다. 북극성을 중심으로 돌아야 하는데......
그런데 그거야 그 잘난 놈들 이야기고, 우리는 어떤가? 집에서 나는 다른 가족에게 어떤 존재일지를 매일 살펴 가며, 반성하고 보완하며 살아가고 있는가? 직장에서 내 위치에 맞는 합리적이고 타당한 언행에 노력하며, 다른 동료의 입장에서 생각하려고 매일 노력하는가?
만일 그렇지 않다면 우리가 그놈들하고 뭐가 다른가? 그놈들과 다르지 않다면 쓸데없이 비분강개해 정치인을 욕할 것이 아니라, 심심하면 그냥 자기 뺨을 후려치는 게 보다 합리적일 것 같다. 그래도 up 됐던 기분 가라앉는 효과나 술 깨는 효과는 동일하되, 쓸데없이 다투는 부작용은 피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