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짓말하는 것은 나쁜 짓이다. 거짓말의 구체적인 퍼포먼스( performance)의 대표적인 것은 꾀병이다. 꾀병은 외부적 이득을 얻기 위한 것이 목적이다. 외부적 이익이란 병역의무 회피, 업무 회피, 경제 보상, 형사 처벌 모면, 약물 획득 등이 있다.
이 꾀병 퍼포먼스의 시조는 공자이며 이를 계승 발전시킨 이는 공자의 도를 이었다고 스스로 떠들던 맹자(孟子)이다.
유비가 공자를 뵈려 하였으나, 공자는 병을 핑계로 거절하였다. 말을 전해 온 사람이 문을 나가자마자, 슬을 타면서 노래를 하여 그로 하여금 듣도록 하였다.①
딱 봐도 공자가 꾀병을 핑계로 보기 싫은 놈 안 보려고 한 거고, 여기에 더해 아프다는 사람이 반주를 곁들인 노래까지 하면서 심통 부린 게 명료하게 드러난다.
맹자는 이런 공자의 가르침을 받들어 왕이 부르는데 꾀병 핑계 대고 쌩 깠다. (不幸而有疾, 不能造朝) 맹자는 다음날 일 보러 나갔는데, 왕은 의사까지 보내 문병을 했다.(王使人問疾, 醫來) 그러자 맹자의 제자는 “맹자는 왕께 조회 참석하러 갔을 것이다(趨造於朝)”라고 뻥을 치고, 한편으론 지름길로 사람을 맹자에게 보내, “집으로 오지 말고 얼른 왕에게 가라”라고 기별을 한다.(請必無歸, 而造於朝!) 그러나 한번 삐진 맹자는 왕에게 가지 않고, 그렇다고 집에도 못 가고 남의 집에 가서 외박한다. (不得已而之景丑氏宿焉.) ②
공자는 꾀병 부리고 노래하며 심통 부리고 말았지만, 맹자에 이르러서는 꾀병 부리고, 거짓말하고, 외박까지 하는 사태로 발전했다. 옳지 못한 일 아닌가?
여기에 대해 『토정비결』을 쓴 이지함(李之菡)은 율곡 이이 선생 앞에서 다음과 같이 쿨 하게 정리했다.
“ 공자께서 병을 핑계하고 유비(孺悲)를 보지 않았고, 맹자가 병을 핑계하여 제왕(齊王)이 부르는데도 가지 않았기 때문에, 후세의 선비들이 없는 병도 있다 하니,병을 핑계로 사람을 속이는 것은 남의 집의 게으른 종과 머슴들이 하는 짓인데,선비로서 차마 이런 짓을 하면서 공자·맹자가 하던 일이라 하니, 어찌 성현이 하신 일이 후폐가 되지 않았는가?”③
여기서 후폐(後弊)란 ‘훗날의 민폐’ 정도의 의미이다. 결국 종과 머슴들이 일 좀 면해 보려고 하는 것이 꾀병인데, 공자·맹자부터 선비들까지 꾀병을 부려대니 그 피해가 더 크다는 뉘앙스이다.
낙타처럼 무거운 짐을 지고 하염없이 매여 사는 사람들이 어쩌다 꾀병이 성공해 하루 쉴 때 그 달콤함은 말로 형용하기 어렵다. 하지만 동시에 은근히 불안해 이틀을 넘기지 못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러나 사자의 경지에 이른, 나름대로 폼 좀 잡는 사람들이 꾀병을 부린다면, 그 폐해는 우리 같은 사람의 꾀병과는 비할 바가 아니다. 그런데 불행히도 우리나라는, 꾀병이 사회지도층의 보신 대책의 일환이며 날로 발전해, 공자·맹자를 넘어서는 K-꾀병의 경지를 구현하고 있다.
재벌이 한 번 환자복을 입고 휠체어를 타면, 우리가 평생 일해도 근처에도 못 갈 금액의 사고를 친 경우가 많다. 과거 한보그룹이라는 회사를 경영하던 회장님은 일부 언론에서 경제계 꾀병의 중시조(中始祖)로 추앙받기까지 했다.
정 전 회장은 같은 해 특정경제가중처벌법상 횡령 혐의로 징역 15년을 선고받았다. 재판 과정에서 환자복 차림에 휠체어를 타고 법정을 드나들던 정 전 회장의 모습은 이후 여러 재벌총수 등에 의해 ‘패러디’됐다. 그는 이후 수감 생활 6년 만인 2002년 병보석으로 특별사면됐다.④
K-꾀병은 경제계는 물론 정계의 여·야를 막론하고 일반화돼 있다. 따라서 지금은 진짜 아파도 꾀병처럼 보이는 것도 사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