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누두교주 Sep 09. 2023

정리 - 지금의 나를 인정하기 위한 작업

Dustbusters

  정리와 청소는 다르다!

      

  청소는 더러움을 대상으로 하는 전투 행위이다. 그래서 빠르고 강하고 날카롭고 엄격하다. 그래서 청소를 마친 공간은 고요하고 말갛지만 차분하고 준엄하기까지 하다.     


  하지만 정리는 물건들 대상으로 한다. 모두 내가 데려와 내가 쓰는 물건이니 나와 마주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녀석들에게 있어야 할 자리를 정해 정해주는 작업이다.     




  현실에서 정리의 문제는 대부분 ‘초과’에 있다. 물건이 부족해 정리하지 못하는 경우는 없다. 공간은 정해져 있는데 물건이 그 공간보다 많아지는, 그래서 있어야 할 자리가 아닌 곳에 놓이는 녀석들이 늘어난다. 그러다 끝내는 공간의 경계가 허물어져 마구 뒤섞이는 상태가 되는 것이다.     


  나는 정리가 필요한 집에 가면 찬찬히 생활공간을 만져본다. 열이면 열 그 공간의 주인은 어느 순간까지 최선을 다해 분투했던 흔적을 발견할 수 있다. 하지만 어느 순간, 감당할 수 없는 엔트로피의 증가는 모든 것을 놓아 버리게 하고 ‘내 집’이 ‘그 집’으로 얼굴을 바꾸어 나타나게 되는 것이다.     




  정리에 도움을 요청한 집에서 공통적으로 많이 발견할 수 있는 것은 종량제 쓰레기봉투이다. 뭔가를 버리려고 샀다가, 그만두어버린 흔적이 항상 짠하게 느껴진다.     


  이런 집에서 거의 볼 수 없는 물건은 책이다. 책을 읽을 환경이 안 될뿐더러, 어쩌면 가장 쉽게 포기하고 내다 버릴 수 있는 물건이 책인지도 모르겠다.     


 고양이는 정리 반대편의 동물이다. 스스로는 가장 깨끗하고 깔끔하게 자신을 관리하지만 정리된 환경을 싫어한다. 생각지도 못했던 구석에서 만나는 말똥 한 고양이의 눈빛은, 정리되지 않은 환경의 불편함을 잊게 하기에 충분하다. 하지만 그렇게 비정상적으로 증가한 엔트로피는 궁극적으로 고양이를 떠나게 하거나, 또는 고양이가 떠난 후 내가 감당할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서게 한다. 고양이의 늘어나는 물건만큼 내 물건을 줄일 수 없다면 행복한 고양이와의 동행은 불가능하다.


  옷은 반드시 허용 공간보다 감당할 수 없을 만큼 많다. 그런데 찬찬히 들여다보면 많은 것이 많은 것이 아니다. 같은 옷이 여러 벌 나오는 경우도 적지 않고, 행택도 떼지 않고 처박힌 옷도 적지 않다. 적어도 내가 어떤 옷이 있는지는 아는 게 중요하다. 옷들은 오직 나의 선택만을 바라고 있는데 나는 있는 줄도 모른다면 얼마나 섭섭할까? 옷을 손으로 만져 설레지 않으면 보내라는 의견에 동의한다.      


  신발은 영물(靈物)이다. 신발 관리를 잘하는 사람 중에 불행하거나 가난한 사람을 찾기는 대단히 어렵다. 옷이 현재를 표현한다면 신발은 미래를 향한 물건이다.


  무거운 신발은 신발장 아래, 가벼운 신발은 신발장 위에 수납해야 한다. 기(氣)는 날아야(飛) 퍼진다.


  신발은 가급적 신발 코가 잘 보이게 수납하는 것이 좋다. 후면 주차된 차보다 전면 주차된 차와 눈을 맞추고 오르는 것이 좀 더 기분이 좋은 것과 같은 이치다.     


  주방에 유통기한이 지난 식자재가 하나도 없다면 크게 걱정할 필요 없다. 그렇지 않다면 이미 문제는 시작되었다. 아마 기름때가 여러 곳에 자리를 잡았을 테고 조미료, 식자재, 음료, 보관 용기, 조리도구 등이 여기저기 쌓여있으나 찾으면 없는 경우가 많다.      




 길을 잃은 경험은 누구에게나 있다. 그때의 당황스러움과 두려움 그리고 외로움의 감정은 쉽게 잊기 어렵다.


  길을 잃었다는 사건은, 지금의 위치가 내가 있어야 할 자리가 아니라는 점과, 내가 있어야 할 자리를 알지 못한다는 것과 다르지 않다. 누군가 내 손목을 잡아 내가 있어야 할 곳으로 데리고 가준다면, 그는 나를 정리해 준 존재이다.      


  정리를 연구한 일본 여자, 곤도 마리에의 말을 이글의 닫음 말로 삼고자 한다.     


정리는 과거의 자신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의 자신을 인정하기 위해서 해야 한다



대문 그림 ; 출처; 구글 검색 (https://zrr.kr/3UGV) 검색일, 2023. 07.25.

     

① 곤도 마리에(MARIE KONDO) 지음. 홍성민 옮김 『정리의 기술』 ㈜웅진씽크빅. 경기, 파주. 2020.      

작가의 이전글 귀(貴)함에 대하여 - 傷人乎不, 問馬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