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淸掃)의 중요성을 최초로 주장했던 사람은 2,500년 전 중원 사람 노자(老子)였다. 노자는 그가 출국하며 출입국 사무소 직원에게 하룻밤 사이에 써줬다는 『도덕경(道德經)』에서 청소의 정의를 명쾌하게 밝혀 놓고 있다.
....... 성인의 다스림은 그 마음을 비우게 해서 그 배를 채워주고......①
노자는 출국할 때 소에 탑승해 서쪽으로 갔다고 한다. 노자는 서쪽으로 갔고 달마는 동쪽으로 왔다. (출처; baidu.com, 검색일, 2023. 07.08.)
이 구절이 청소의 정의라고? 노자가 청소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믿어지지 않는가? 그렇다면 아래 해석에서 마음에 드는 것을 고르시던지! 이 구절에 대해 좀 안다는 사람들의 해석이다.
‘인간 욕망에 기초한 자본주의에 대한 정의이며, (노자가) 자본주의를 어떻게 제어할 수 있을 것인가 하는 고민을 하는 것’②
아니면
성인의 가르침은 ‘눈보다 배가 중요하다’라는 것이다.③
요것도 아니라면 이건 어떤가?
‘마음은 꾀를 품고 배는 먹을 것을 찾는다. 그러므로 (영악 스런) 꾀를 비우고 (순박한) 무지를 채운다’④
지금까지 『도덕경』에서 ‘인류 최초로 청소에 대한 정의와, 인간의 삶에서 청소의 중요성을 언급했다’라는 것을 아무도 발견하지 못한 이유는 간단하다. 청소를 아는 사람 중에 『도덕경』을 읽은 사람이 많지 않았고, 『도덕경』을 읽은 사람 중에 청소를 제대로 해 본 사람이 많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 세월이 2,500년이 지나다 보니 ‘청소에 대한 도’를 말하고 싶었던 노자의 뜻은 완전히 상실된 것이다. 이제 그 뜻을 정확히 하고자 한다.
‘허기심 실기복(虛其心, 實其腹)’ 이 여섯 글자는 청소의 의미를 정확히 설명하고 있다. 청소는 비우는 작업을 통해 채워가는 작업이다. 비워야 하는 대상은 내가 함께하고 싶지 않은 것들이고, 채워야 하는 것은 함께 하면 행복한 것들이다.
청소를 해 본 사람들은 알겠지만, 청소는 버리고, 털고, 뿌리고, 닦고, 쓰는 과정을 거쳐 말갛게 해 가는 과정이다. 천장을, 벽을, 바닥을, 그래서 끝내 마음까지 비워가는 도(道)를 특정해, 우리는 청소라고 부른다.
허(虛)랄지, 공(空)이랄지, 또는, 무(無)라고 하는 개념들은 ‘청소하고 난 결과’를 설명하는 다른 이름들이다. 여기에 다른 거창한 의미를 부여하는 사람들은 청소해 본 적이 없다고 보면 틀림없다.
청소라는 수고로운 노동 후에 채운 배는 행복하고 감사하고 그래서 아무것도 바랄 것이 없는 상태가 된다. 그 상태를 전문용어로 욕망이 없는 상태, 즉 무욕(無欲) 한 상태라고 부른다. 말갛게 치운 공간에서 정갈한 밥상을 마주한 상상을 해보라!
노자는 ‘허기심 실기복(虛其心, 實其腹)’여섯 글자로 청소의 정의와 청소의 목적을 정확히 간파한 것이다. 따라서 노자는 청소 좀 해 본 사람이라는 추론도 매우 당연하게 가능해지는 것이다.
그래서 길을 가다 누군가 “도를 아십니까”라고 묻는다면, “청소를 아십니까”라고 되물어야 한다. 그가 청소를 안다면 대화를 이어가도 좋지만, 그렇지 않다면 시간 낭비하지 않는 것이 좋다.
대문 사진 : 청소의 다양한 모습이다. 나는등 청소 한다고 사다리 올라가다 떨어진 사람을 알고 있다. (출처; https://zrr.kr/SYbZ, 검색일 2023. 07.08.)
① 김충열 지음. 『김충열 교수의 노자강의』 ㈜예문서원. 서울. 2004. pp.149 – 154. 노자 『도덕경』 제3장이다. 전체 원문은 다음과 같다. (밑줄 친 부분이 이 글에 인용한 부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