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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누두교주 Feb 26. 2024

프롤로그 - 걸레를 빨면서①

  청소가 시작되면 나는 항상 걸레를 빤다.항상 하는 일이건만, 빨고 헹궈서 탈수하는 사이에 걸레는 어느덧 또다시 쌓이는 것이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새집(또는 큰돈 들여 온통 새로 인테리어를 마친 집)은 온통 ‘먼지 세계’이다. 바닥이나 틈새는 물론, 천장, 벽은 물론 서랍 깊숙한 곳에도 먼지가 빼곡하다. 그중 씨알이 아주 굵은 놈은 빗질이나 스쿼지로 몰아내고, 그다음 굵은 놈은 청소기로 처리한다. 하지만 제일 귀찮은 것이 밀가루보다 고운 놈들이다.     


  걸레는 면을 바꾸어 가며 녀석들을 양껏 품어 안는다. 그리곤 세차게 흐르는 물을 맞은 걸레는 머금었던 먼지들을 물감처럼 풀어놓는다. 나는 그 걸레들의 시중을 들고 탈수기에 넣었다가 탈수가 끝나면 탈탈 털어 다시 곱게 접는다. 걸레는 잠시 숨을 고르고 다시 먼지 위를 달린다.     


  걸레에게 제일 고약한 일은 매우 더러운 창틀과 기름때 가득한 부엌이다. 흙과 나뭇잎 그리고 곰팡이까지 어우러진 창틀을 파내고 나면, 걸레는 제 색을 잃는다. 양잿물과 수세미로는 떨어지지 않는 오래 묵은 주방의 기름때는 넓적한 칼로 긁어낸다. 그리고 걸레로 수습하는데, 그러고 나면 걸레는 다시는 제 모습이 돌아오지 않는다. 그런 녀석들은 오래 담가놓고 여러 번 헹군다. 그러면 지친 모습이 말개지기는 하지만 파리한 그 빛은 어쩔 수 없다.     




  어느 날 문득 ‘청소가 아름답다’는 생각을 했다.      


  벽면 가득한 선반을 가지런히 들어내고 두 줄에 한 장씩 걸래를 바꿔가며 그 안을 말끔히 닦는다. 그다음 들어낸 선반을 안팎으로 닦아 다시 제자리에 얹는다. 그렇게 맑아진 공간에 담길 무엇이던, 아름답지 않고 행복하지 않은 것은 없을 것이다.     



  여러 해 묵은 창과 창틀은 이미 본래의 그 반짝이고 투명이던 색을 잃었다. 아무리 닦고 닦아도 깊숙한 틈 안의 오래 묵은 더러움은 손댈 수 없다. 안쪽의 유리는 맑게 할 수 있지만, 손이 닿지 않는 바깥쪽 유리의 탁함은 어쩔 것인가?


  창을 통째로 들어내면 될 일이다. 먼지의 입장에서는 세상 어디 숨을 곳이 없어지게 되고, 걸레의 입장에서는 가지 못할 곳이 없어졌다. 마침내 그 창은 집의 가장 맑은 눈이 되었다.     



  시나브로 시간이 흐르다 보면 어느덧 무겁던 집안 공기가 움직이는 것이 느껴진다. 눅진하던 느낌은 보송해지고 수직으로 내리누르던 심술은 풀리고 오른쪽, 왼쪽으로 흐르기 시작한다. 그리고 다른 소음에 묻혀 잘 들리지 않던 물소리가 크게 세차게 들려온다.      


  마지막 걸레를 빨고 뒤돌아 청소를 마친 공간을 마주하면,  맑은 동화의 세계가 펼쳐지고, 작지만 깊이 있는 감동이 이랑을 이루며 다가온다. 같은 공간이지만 다른 공간, 이제는 사람이 살 수 있는 공간을 본 것이다.     


  나는 색깔별로 소임이 다른 걸레를 차곡차곡 개어 담으며, 내가 한 일을 다시 추억한다. 나는 걸레를 빨았다. 단지 걸레를 빨았을 뿐이다.     



**  대문 그림 : 새로 설치한 서랍 안에도 먼지는 그득하다.


① 청소를 하는 사람들은 다 맑은 정신을 가진 줄 알았다. 그런데 구전을 먹고 청소를 중개하는 사람들은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다. 속도 상하고 마음이 고르지 않은 차에 문득 『낙엽을 태우면서』라는 글을 만났다. 효석은 낙엽을 통해 뭔가를 구시렁거렸고, 나는 걸래를 가지고 잠시 그를 흉내 내 보았다. 속상한 마음이 느긋해지고 커피 생각이 스멀스멀 피어나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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