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북 영동군에는 지금도 5일장이 서는데 4자와 9자가 들어가는 날에 선다. 장날에는 평소와는 달리 많은 노점이 들어선다. 텃밭에서 정성껏 가꾼 푸성귀나 직접 캔 산나물 얼마간을 늘어놓고 손님을 기다리시는 어르신도 계시고 집에서 고양이나 개가 새끼를 낳게 되면 가져와 주인을 기다리는 분도 계시다.
시골집에는 들쥐와 두더지가 자주 출몰해 처부모님께서 고양이를 들이기로 하시고 장날을 기다려 새끼 고양이를 사러 가셨다. 마침 ‘대야(1)’에 한 배인 새끼 고양이를 팔러 나오신 분이 계셔서 한 마리 오천 원을 흥정 끝에 두 마리 팔천 원에 사셔서 한 마리는 동네 목사님 드리고 한 마리는 시골집으로 데리고 오셨다.
노란빛이 예쁘게 도는 이 녀석은 그날로 ‘사천이(사천 원주고 사온 애)’로 이름 지어졌다. 이날 이후 사천이는 살고 싶은 데서 살았다. 자기 집이 있지만 집에는 밥 먹으러만 오고 온종일 어디 있는지 잘 보이지 않았다. 특히 아버님과 관계가 좋았는데 아버님이 부르시면 어디선가 쏜살같이 튀어나오곤 했다. 우리 집 고양이에 비하면 크기가 반도 안 되는 것 같은데 그 약동하는 야생성은 비할 바가 아니었다. 사천이가 조금 크면서 그렇게 많던 들쥐와 두더지는 자취를 감추었다. 다른 동물들에게는 지나칠 정도로 패악을 부리는 보름이 도 사천이는 타박하지 않았다. 아마도 성가신 들쥐를 잡아낸 공로를 인정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사천이와 개털이는 사이가 그다지 좋지 못했다. 처음 잘못한 것은 사천이었다. 마당 정자에서 바비큐를 즐길 때 개털이나 보름이는 처음 냄새가 날 때 다소 흥분하기는 하지만 대체로 얌전히 기다리는 편이다. 이미 여러 번 경험이 있어 잠시 기다리면 자기 몫이 있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리라. 그런데 배식하는 순간, 집게에 들린 삼겹살 조각을 사천이가 순식간에 채어 갔다. 마침 그때가 개털이 차례였는지라 개털이가 안달이 날 수밖에 없었다.
그다음엔 개털이가 사천이에게 결례를 했다. 사천이가 창고 장작더미에 새끼를 낳아 예민한 시기에 개털이가 아무 생각 없이 접근하자 사천이는 등에 털을 세우고 ‘하악질(2)’을 하며 위협했다. 나는 사태 파악을 못하고 우두커니 서있는 개털 이를 얼른 안아 옮겼다.
이날 이후 개털이 와 사천이가 직접 마주칠 일은 없었다. 바비큐를 할 때는 개털이, 보름이, 사천이 순으로 주었고 사천이는 개털이, 보름이 와는 달리 저만큼 떨어져 있었고 던져주면 냉큼 받아먹는 태도를 취했다.
(1) ‘함지박’이라는 뜻으로 たらい(다라이)로 쓰는 일본어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고려초 손목의 계림유사 등을 근 거로 ‘대야’에서 비롯된 우리말이라는 주장도 있음. 내가 볼 때 ‘대야’는 한반도에서 일본으로 간 것이 맞고 고무 ‘다라이’는 일본에서 한반도로 온 게 맞는 거 갖다.
(2) 고양이가 잔뜩 화난 표정으로 입을 크게 벌리고 날카롭게 하악~~! 소리를 내며 위협하는 것.
윗 사진설명 : 사천이 새끼들.
아빠가 누군지는 모른다. 시골집 주변엔 산 냥이들이 많다. 사천이가 발정이 나면 온 동네 산 냥이가 집으로 몰리지만 보름이 가 있어 잘못하단 경을 치게 된다. 그럼에도 보름 이를 따돌린 누군가는 대를 잇는 데 성공했다는 증거이다.
사천이.
마침 ‘다라이에 한배인 새끼 고양이를 팔러 나오신 분이 계셔서 한 마리 오천 원을 흥정 끝에 두 마리 팔천 원에 사셔서 한 마리는 동네 목사님 드리고 한 마리는 시골집으로 데리고 오셨다. 노란빛이 예쁘게 도는 이 녀석은 그날로 ‘사천이(사천 원주고 사온 애)’로 이름 지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