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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그 아이를 보듬다.

'상처', '화' 그리고 '내면 아이

by 개양이 CATOG
11jjl2018,the reconciliation of the two.jpg 제시 지현, The reconciliation of the two 화해, 53 cm x 45.5 cm, 2018

생각지 못한 지점에서 울컥 화가 올라오는 지점이 있다. 분명 이렇게까지 화가 날 일이 아닌데 울컥 화가 난다.

'도대체 나는 왜 화가 나는 거야!'라고 자책도 해보지만 도대체 스스로를 이해할 수가 없다.


오랜 우울증의 근원을 찾아 여행을 떠난 나는, 어느 날 나의 내면 아이를 만났다. 3살 무렵의 그 아이는, 누구보다 돌봄이 필요한 존재였지만, 울음을 꾹꾹 삼킨 채 누군가를 돌보느라 발가락에 꼭 힘을 주고 아등바등 버티고 있었다. '도와주세요!' '살려주세요!' '무섭단 말이야~!' 소리치고 싶었지만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스스로 소리를 내는 순간 내가 지켜야 할 그 사람이 상처를 입을까 봐 울분과 화를 우걱우걱 욱여넣고 말이다.


누구에게나 내면에 아이가 있다.

영원히 나이 들지 않는, 떼 묻지 않은 순수한 마음이기도, 상처를 잔뜩 입고 너무 고통스러워 살려달라고 소리치지도 못하는 그런 모습이기도 하다.


누구나 크고 작은 이유에서 마음에 상처를 받은 일이 있지 않는가?

세상에는 다양한 상처가 있지만 스스로를 지킬 힘이 충분하지 않았던 어린 시절 상처를 입은 아이는 아직도 그 자리에 멈춰서 울고 있다.


상처를 덮고, 괜찮겠지 하고 지나갔던, 어느덧 어른이 된 나는, 아직도 그때 그 아이가 그 장소에서 울고 있을 거라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그때 나한테 왜 그랬어?"

"나 두고 가지 마!!'

"무섭단 말이야!!"

"너무 버거워!"


누구보다 돌봄을 바라고 있었던 그 사람과, 바다를 보며 마침내 목소리를 내며 울분을 토했다.


진짜 화해라는 것은, 일방적으로 누군가 한 사람이 꾹꾹 감정을 눌러 삼 겼을 때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참고 있던 한쪽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이란 걸 왜 그때는 몰랐을까?


"많이 울어도 좋아."

"마음껏 화를 내보렴."


"나 잊어버리고 있는 줄 알았단 말이야."

"나 버리지 마."

"나 이제 나와도 돼?"


마음껏 화를 내고 운 그 아이는 이제 방끗 고개를 내밀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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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마주하는 것’은 그때의 내 모습을 만난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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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력 있는 마음’이란 상처 받은 아이에 대해 충분히 애도한 후 그를 온전히 껴안으며 일으켜 세우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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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과 춤추는 것’은 그때의 상처 받은 그 마음에 딱쟁이가 돋고 세 살이 돋아서 함께 춤추는 마음이다. 비로소 마음과 춤을 시작했다면, 상처의 흔적은 더 이상 내 삶을 결정짓지 않는다. 오늘의 나는 미래의 나를 결정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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