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한 순간이 내 인생의 큰 힘

가장 빛난 순간도 결국 가족과 함께한 작은 행복이다.

by 윈플즈

2014년 여름, 큰아들이 처음으로 포켓몬 카드 게임(TCG) 국가대표로 선발되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나는 잠시 말을 잃었다. 평소 즐기던 취미가 세계 무대라는 커다란 문을 열어줄 줄은 몰랐다. 캐리어 안에 옷가지와 카드를 챙기던 아이의 눈빛은 유난히 반짝였다. 아직 어린 나이였지만, 자신이 준비해 온 것을 마음껏 펼칠 수 있다는 기대감이 가득 담겨 있었다. 나 역시 가슴이 벅찼다. 워싱턴이라는 도시 이름조차 낯설었지만, 아들과 함께한다는 사실 하나로 그 길은 설레는 여정이 되었다.


공항의 소음, 보딩 게이트 앞의 긴 줄, 낯선 이국의 공기. 모두가 새로운 경험이었다. 워싱턴에 도착했을 때, 넓은 거리와 강렬한 햇빛, 그리고 영어 간판들 사이에서 아이의 표정은 조금 긴장되었지만 동시에 자랑스러웠다. 대회장 앞에는 이미 전 세계에서 모인 참가자들과 가족들이 모여 있었다. 국기를 두른 아이들, 포켓몬 티셔츠를 입은 참가자들, 다양한 언어로 들려오는 목소리들. 그곳은 작은 올림픽 같았다. 큰아이는 당당히 한국 대표로 자리했다. 나는 속으로 말했다. ‘결과가 어떻든, 이 자리에 선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2018년 내슈빌에서는 더 특별한 순간이 찾아왔다. 큰아들은 다시 TCG 국가대표로, 작은아들은 VGC 국가대표로 함께 선발된 것이다. 형제가 같은 무대에 서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내 마음은 벅찼다. 형은 카드 덱을 조정하며 집중했고, 동생은 게임기 화면 속 전략을 다듬었다. 저녁이 되면 두 형제가 서로의 이야기를 나누었다. 형은 카드 전략의 중요성을, 동생은 게임 속의 심리전을 이야기하며 웃음을 나누었다. 나는 그 모습을 지켜보며 생각했다. ‘이제 두 아이는 단순한 형제가 아니라, 같은 길을 걷는 동료이기도 하구나.’



2019년 워싱턴에서 작은아들이 VGC 국가대표로 다시 나섰다. 같은 도시였지만 이번에는 주인공이 달랐다. 경기장 안에서 작은아이가 외국 선수와 악수하고 자리에 앉는 순간, 나는 심장이 뛰는 것을 느꼈다. 승패를 떠나 그 자리에 앉아 있다는 사실, 세계 각국의 친구들과 경쟁한다는 경험 자체가 소중했다. 경기를 마친 작은아이가 웃으며 외국 선수와 악수하는 모습을 보는 순간, 나는 자랑스러움에 목이 메었다. 그 웃음 하나에 지난 시간의 노력과 긴장이 모두 보상받는 것 같았다.


2023년 요코하마에서는 두 아들이 나란히 VGC 무대에 섰다. 일본이라는 친근하면서도 낯선 공간에서 열린 대회였다. 작은아이는 첫 경기를 앞두고 긴장으로 얼굴이 굳어 있었다. 나는 조용히 말했다. “이미 충분히 연습했어. 이제부터는 운의 영역이야. 긴장하지 말고 해온 대로만 하면 된다.” 그 말은 아이의 표정을 조금 풀어주었다. 첫 경기를 승리로 끝낸 뒤 아이의 웃음을 보았을 때, 나는 큰 안도감을 느꼈다. 그 순간의 환호와 아이의 웃음은 내 마음속에 오래 남았다. 패배를 두려워하지 않고 자신을 믿을 수 있게 된 표정이었기에 더 값졌다.


2024년 하와이에서도 작은아이는 VGC 국가대표로 무대에 섰다. 파란 하늘, 뜨거운 태양, 야자수 사이로 펼쳐진 대회장은 또 다른 풍경을 만들어냈다. 기후와 환경이 달랐지만 아이는 차분하게 경기를 이어갔다. 요코하마에서 배운 경험이 도움이 된 듯, 스스로 긴장을 다스리는 법을 조금은 더 익힌 모습이었다. 나는 다시 마음속으로 되뇌었다. ‘이 무대에 서 있다는 것 자체가 자랑스럽다.’


2025년 애너하임. 작은아이가 다시 VGC 대표로 선발되었다. 큰아이는 이제 22살, 작은아이는 18살. 더 이상 어린아이가 아니지만 내 눈에는 여전히 어린아이로만 보이던 아이들의 모습이 겹쳐 보였다. 대회장 안에서 외국 선수들과 악수하고, 짧은 영어로 대화를 나누며 웃는 모습을 보았다.



그 장면 하나로 모든 노력이 보상받는 듯했다. 비행기 안에서 아이들이 졸거나 영화를 보는 모습을 보며 지난 세월이 떠올랐다. 어린 시절 해맑게 뛰놀던 두 아들이 이제 세계 무대에서 경쟁하는 선수로 성장했다. 아버지로서 나는 그 과정을 함께 지켜봤다. 그것만으로도 삶은 충분히 풍요로웠다.


포켓몬은 우리 가족에게 단순한 게임이 아니었다. 그것은 추억이고, 연결이고, 성장의 기록이었다. 아이들이 언젠가 이 시절을 돌아보며 “그때 아빠와 함께한 순간이 내 인생의 큰 힘이었다”라고 말해주길 바란다. 그리고 나는 오늘도 속으로 중얼거린다. ‘아이들아, 고맙다. 너희 덕분에 아빠의 삶은 더 풍요로워졌다.’


― 가장 빛난 순간도 결국 가족과 함께한 작은 행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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