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래는 시간을 거슬러 온다

노래는 시간이 흘러도 감정을 다시 데려오는 타임머신이다.

by 윈플즈

청소년 시절, 나는 자주 외로웠다. 학교에서 친구들과 어울려 지내긴 했지만, 마음 깊은 곳의 빈자리는 쉽게 채워지지 않았다. 이유를 정확히 설명할 수는 없었다. 누군가와 크게 다투지도 않았고, 특별히 큰 결핍이 있었던 것도 아니었다. 다만 저녁이 되어 혼자 방 안에 앉아 있을 때면, 세상에서 나만 따로 떨어져 있는 듯한 공허함이 몰려왔다. 그때 나를 붙잡아 준 것이 노래였다. 작은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던 멜로디와 가사는 내 심장을 울리는 유일한 친구였다.


특히 잊을 수 없는 세 곡이 있다. 박혜성의 「도시의 삐에로」, 조하문의 「이 밤을 다시 한 번」, 그리고 조정현의 「그 아픔까지 사랑한 거야」. 이 세 곡은 단순한 음악이 아니라 내 성장기의 한 장면을 새긴 각인 같은 존재다.


「도시의 삐에로」를 처음 들었을 때, 나는 마치 내 마음을 그대로 비춰 주는 거울을 마주한 것 같았다. 그 노래 속의 가사처럼, 생각없이 길을 걸어도 울적한 마음을 달래던 나와 겹쳐졌다. 왜 그렇게 깊이 공감했는지는 지금도 정확히 모르겠다. 아마도 그때 내가 생각보다 많이 외로웠던 탓일 것이다. 친구들 사이에서도 웃고 떠들었지만, 집에 돌아오면 방 안에서 혼자가 되었고, 음악만이 그 허전함을 메워주었다.


조하문의 「이 밤을 다시 한 번」은 달랐다. 그 곡은 첫 소절이 흘러나오자마자 ‘이건 내 노래다’라는 확신이 들었다. 가사 하나하나가 내 마음속에 쌓여 있던 감정을 두드렸고, 멜로디는 그 감정을 끌어올려 터뜨리게 했다. 나는 이 노래를 수도 없이 반복해 들었다. 카세트테이프에 녹음해 두고, 헤드폰을 귀에 꽂은 채 밤새 따라 부르기도 했다. 내 목소리가 원곡과 어긋나도 상관없었다. 부르는 행위 자체가 나를 치유했다. 노래는 단순히 귀로 듣는 음악이 아니라, 내 마음을 해방시켜 주는 통로였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조정현의 「그 아픔까지 사랑한 거야」. 이 노래는 단순한 공감이나 해방을 넘어, 내 감성 그 자체를 새로 만들어 준 곡이었다. 가사와 멜로디가 어쩌면 그렇게 완벽하게 맞아떨어졌을까. 슬프면서도 아름다웠고, 아프면서도 위로가 되었다. 나는 이 노래에 완전히 빠져들어, 실제로 라디오 공개방송에 참가해 부르고 싶다는 꿈까지 꾸었다.



그때는 당대 인기 라디오 프로그램인 '별이 빛나는 밤에'는 일반인 참가 코너가 있었고, 노래를 잘하면 공개 무대에서 부를 수 있었다. 나는 떨리는 마음으로 지원했고, 참가할 날을 기다렸다. 그런데 하필 그날, 폭설이 내려 길이 막혀 버렸다. 집을 나섰다가 눈 속에서 한참 헤매고, 결국 너무 늦어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무대에 서 보지도 못하고 집으로 돌아와야 했던 그 밤의 허탈감은 아직도 생생하다. 하지만 동시에, 그 정도로 한 곡에 몰입했던 내 열정이 지금은 오히려 소중한 추억으로 남아 있다.


이 세 곡과 함께 흘러간 청소년 시절은, 내겐 고독과 동시에 성장의 시간이기도 했다. 음악을 통해 나는 내 마음을 표현하는 법을 배웠다. 외로움 속에서도 가사를 따라 부르며 스스로를 달랠 수 있었다. 그때는 그저 공허함을 달래기 위해 노래를 불렀지만, 지금 돌아보니 그 시간들이 나를 단단하게 만들어 주었다는 것을 안다. 외로움을 피하지 않고 그대로 마주하면서도, 그 속에서 길을 찾을 수 있었던 건 음악 덕분이었다.


세월이 흘러 이제 나는 중년이 되었다. 아이들이 자라고, 가족과 함께하는 시간이 늘었지만, 가끔은 여전히 혼자가 된 듯한 기분이 찾아온다. 그럴 때면 나는 다시 그 시절의 노래들을 꺼내 듣는다. 예전처럼 눈물을 흘리며 듣지는 않는다. 대신 그때의 외로움과 지금의 추억이 겹쳐지며 묘한 감정이 생긴다. 마치 그 시절의 나와 지금의 내가 시간 너머에서 악수를 나누는 듯하다. 노래는 그렇게 나를 과거로 데려가 주고, 동시에 현재를 위로해 준다.


특히 드라마 응답하라 시리즈를 볼 때면, 그 시절의 공기와 감정이 그대로 되살아난다. 화면 속에 흐르는 배경음악, 골목길의 풍경, 친구들끼리 장난치던 모습은 내가 살아온 청소년기의 한 장면과 맞닿아 있다. 드라마가 단순한 오락이 아니라, 세대를 관통하는 공감의 매개체가 된 이유도 여기에 있다. 나는 그 드라마를 보며 “그래, 나만 그런 게 아니었구나”라는 안도감을 느꼈다. 그 시대를 살아낸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비슷한 감정을 겪었을 것이다.


음악과 드라마는 내게 단순한 취미가 아니다. 그것들은 내 삶의 한 조각이며, 감정을 보관하는 창고다. 노래 한 곡, 드라마 한 장면이 내 마음속 깊은 곳에 잠들어 있던 기억을 흔들어 깨운다. 그래서 나는 여전히 그 시절의 음악을 듣고, 드라마를 본다. 그것은 단순한 향수가 아니라, 내 과거의 나를 꺼내어 현재와 대화하게 만드는 시간여행이다.


그때는 외로움 속에서 노래를 붙잡았다면, 지금은 그 노래를 통해 추억 속의 나를 다독인다. 노래가 나를 버티게 했던 시절이 있었기에, 지금의 내가 있다. 세월이 흐른 지금, 나는 더 이상 혼자가 아니다. 가족이 있고, 함께 나눌 기억이 있지만, 여전히 나는 노래 속에서 내 자신을 찾는다.


― 노래는 시간이 흘러도 감정을 다시 데려오는 타임머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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