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춰질 수는 있어도 멈출 수는 없다

작은 도전이 쌓여서 나의 평범한 하루가 만들어진다

by 윈플즈

나는 원래부터 몸으로 버티는 걸 잘했다. 초등학교 5학년 때 학교에서 열린 조선일보 걷기대회에 나가 38km를 완주해 금상을 받은 경험은 지금도 선명하다. 아침에 출발해 오후 늦게까지 이어진 긴 여정이었다. 발바닥은 물집이 잡히고, 종아리는 딱딱하게 굳어졌지만, 포기하지 않았다.


고개를 들면 저 멀리 깃발이 보였고, 그게 나를 당겨 주었다. 완주 후에 받은 상장은 종이에 불과했지만, 그때 느낀 자부심은 오래 남았다. ‘나는 버틸 수 있는 사람이다.’ 그 믿음이 이후 내 삶의 기초 체력 같은 것이 되어 주었다.


중학교와 고등학교 시절에는 운동장이 놀이터였다. 전교 체력장 오래달리기 기록에서 늘 다섯 손가락 안에 들었다. 오래달리기에서는 호흡이 끊어지려 할 때 오히려 속도를 높였다. 농구공을 잡으면 몇 시간이고 코트를 뛰었다. 땀 냄새가 옷에 밴 채 집으로 돌아와도 지치지 않았다. 10층 계단을 단숨에 뛰어오르는 건 그때 내게는 별일도 아니었다. 몸은 빠르고 단단했고, 피곤이 쌓이는 걸 느끼기 전에 회복이 찾아왔다. 지금 돌아보면 그 시절의 나는, 마치 끝없이 충전되는 배터리 같았다.


대학 때 농구 동아리 활동은 내 젊음의 절정이었다. ‘슬램덩크’ 같은 만화와 ‘마지막 승부’ 드라마, 그리고 당시 5명의 독수리가 이끄는 농구대잔치의 연세대 팀, NBA의 마이클 조던이 내 세대의 공기를 채우고 있었다. 그 흐름 속에서 나는 매일 야외에서 코트를 찾았다.


점프 슛이 림을 통과할 때의 ‘슉’ 소리, 농구공이 바닥에 튕기며 만드는 ‘쿵쿵’ 울림. 그 리듬에 맞춰 뛰다 보면 시간은 금방 사라졌다. 몸이 움직이는 동안만큼은 세상 근심이 끼어들 틈이 없었다. 나는 그 순간을 사랑했다. 지치지 않는 몸과 멈추지 않는 열정, 그것이 내 젊음을 정의하는 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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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이 흐르자 몸은 다른 신호를 보내기 시작했다. 머리카락에 흰빛이 섞여들고, 예전에는 하루 만에 회복되던 근육통이 며칠을 따라왔다. 달리기를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숨이 차오르고, 무릎에서 미세한 통증이 올라왔다. 체육관 거울 속 내 모습은 여전히 익숙했지만, 몸의 속도는 달라져 있었다. 농구공을 잡으면 아직도 조금은 감각은 살아 있었지만, 예전처럼 코트를 끝까지 달리는 건 어려웠다.


나이가 들어간다는 건 단순히 숫자가 쌓이는 일이 아니었다. 몸의 작은 징후들이 일상의 구석구석에서 신호를 보냈다. 잠을 줄여도 거뜬했던 시절과 달리, 이제는 수면이 부족하면 다음 날 하루 종일 무겁게 눌렸다. 계단을 오르던 발걸음은 한숨과 함께 쉬어 가야 했다. 젊을 때는 보이지 않던 장벽이 하나둘 나타나는 느낌이었다. 체력은 서서히 물러났고, 나는 그 자리에 낯선 공백을 마주해야 했다.


몸이 보내는 신호는 때로는 두려움을 불러왔다. ‘이제 나는 예전 같지 않구나.’ 인정하기 싫었지만, 거울 속 내 얼굴이 그 사실을 말해 주었다. 어깨와 허리에 쌓이는 통증, 가끔씩 찾아오는 알 수 없는 피로. 병원에 가면 의사는 대수롭지 않게 말했지만, 나는 그 작은 이상에도 민감해졌다. ‘이게 노화라는 건가.’ 젊을 때는 몰랐다. 멈추지 않고 달릴 수 있을 거라고 믿었다. 그러나 지금은 달리기 전에 숨을 고르고, 계단 앞에서 잠깐 멈추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멈추지 못했다. 아니, 멈추고 싶지 않았다. 몸은 예전 같지 않지만, 마음은 여전히 달리고 있었다. 하고 싶은 것이 많았다. 배우고 싶은 것도, 해보고 싶은 것도, 가보고 싶은 것도 남아 있었다. ‘나이 들었으니 이제 그만해야지’라는 말은 내 사전에 없었다. 오히려 ‘지금이 아니면 못 한다’는 생각이 더 강해졌다.


나는 여전히 공부를 이어 갔다. 온라인 강의, 책, AI 관련 자료, 영어 공부까지. 체력이 줄어들어도 새로운 것을 배우는 즐거움은 줄지 않았다. 배우는 순간만큼은 다시 젊어진 듯한 에너지가 몸 안에서 솟았다. 피곤한 몸을 끌고 책상 앞에 앉으면, 뇌 속에 작은 불이 켜졌다. 그 불빛이 사라지지 않도록 매일 기름을 부었다.

여행에 대한 갈망도 여전하다. 가족과 함께 새로운 곳을 보고, 낯선 문화와 마주하는 일은 나를 계속 살아 있게 한다. 해외에서는 가족이 서로에게 더 의지하게 된다. 낯선 나라에서 아이들이 긴장하다가도, 함께 웃고 즐기는 순간을 보면 ‘이게 내가 살아가는 이유구나’라는 확신이 든다. 체력이 예전 같지 않아도, 그 순간을 위해서라면 나는 또다시 걸어 나설 수 있다.


나는 가끔 상상한다. 아이들이 독립하고, 와이프와 단둘이 캠핑카를 몰고 전국을 여행하는 모습을. 그 상상은 내게 새로운 동기를 준다. 운전면허도 따야 하고, 몸도 더 관리해야 한다. 하지만 그런 준비조차 설레는 과제다. ‘아직 하고 싶은 게 남아 있다’는 사실이 나를 일으켜 세운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말이 진부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내게는 진짜다. 숫자는 늘어도, 하고 싶은 일은 줄지 않는다.


나는 가끔 이런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진다. ‘왜 이렇게까지 애쓰며 멈추지 않으려 할까?’ 답은 의외로 단순하다. 평범한 하루를 지키기 위해서다. 평범한 하루는 그냥 주어지지 않는다. 몸을 움직이고, 마음을 다잡고, 새로운 걸 배우고, 사랑하는 사람들과 시간을 쌓을 때 비로소 평범함이 채워진다. 그래서 나는 멈출 수 없다. 멈추는 순간, 평범함은 허물어지고 만다.

하루하루가 작은 도전의 연속이다. 예전에는 장거리 달리기가 도전이었다면, 지금은 아픈 무릎을 달래며 계단을 오르는 게 도전이다. 예전에는 농구장에서 하루 종일 뛰는 게 도전이었다면, 지금은 영어 앱에서 매일 짧은 문제를 푸는 것이 도전이다. 크고 작은 도전이 쌓여서 나의 평범한 하루가 만들어진다. 그 평범함이야말로 가장 큰 선물이다.


나는 여전히 걷고 싶다. 배우고 싶다. 사랑하고 싶다. 내 아이들과 와이프와 함께 웃고 싶다. 몸은 변해도 마음이 이끌리는 방향은 변하지 않았다. 언젠가 더 느려질 날이 오겠지만, 그날이 오기 전까지 나는 오늘의 하루를 움직인다.


― “늦춰질 수는 있어도 멈출 수는 없다, 평범한 하루를 지켜내기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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