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의 서러움과 짧은 기쁨이 모여, 더욱 소중히 빛나게 한다.
나는 일곱 살 어느무렵, 갑자기 어른이 되어야 했다. 부모님이 이혼을 하면서, 집안의 공기는 하루아침에 달라졌다. 그 나이에 유치원을 다니며 친구들과 웃고 떠드는 것이 자연스러웠겠지만, 나는 가방을 내려놓아야 했다. 대신 네 살 어린 동생이 내 앞에 있었다. 동생은 또래보다 발달이 느려 걷는 것도 서툴렀고, 늘 내 등에 업혀 다니곤 했다. 어린 내 어깨와 허리는 금세 뻐근해졌지만, 그 작은 몸을 놓아버릴 수 없었다. 그게 내 책임이었으니까.
마포 아파트 단지는 늘 활기가 가득했다. 봄이면 벚꽃잎이 바람에 날렸고, 여름이면 아이들 웃음소리가 놀이터를 가득 채웠다. 나는 그 웃음소리를 베란다 창문 너머로 들으며 서 있었다. 그때마다 가슴은 쿵쿵 뛰었고, 발은 뛰쳐나가고 싶어 근질거렸지만, 나는 열쇠가 없는 아이였다. 문을 열고 나가려면 엄마가 돌아오기 전에는 불가능했다. 동생을 업고 나가야 한다는 부담도 컸다. 그 작은 아이를 업은 채로 다른 아이들과 어울리는 건 상상조차 힘들었다. 그래서 나는 늘 베란다에 매달려 있었다. 바깥에서 들려오는 아이들 웃음이 내게는 꿈같은 음악이었다.
하지만 어린 마음에도 한 번쯤은 하고 싶었다. 나도 뛰고 싶었다. 나도 모래사장에 발을 묻고 싶었다. 그날, 나는 결국 용기를 냈다. 아니, 용기라기보다 충동에 가까웠다. 열쇠가 없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그냥 문을 안 잠그고 밖으로 나가버렸다. 동생을 등에 업은 채, 나는 아파트 놀이터로 향했다. 마치 금지된 세계로 들어가는 것처럼 심장이 두근거렸다. 그날 놀이터의 햇볕은 유난히 밝았다. 아이들의 웃음은 내 귀를 파고들었다. 나는 순간만큼은 그들과 같은 아이였다. 짧지만 분명히 행복했다.
그러나 그 시간은 길지 않았다. 그날따라 다른날과 다르게 엄마가 예상보다 일찍 집으로 돌아왔다. 문이 잠기지 않은 것을 보고, 나와 동생이 보이지 않자 놀란 엄마는 곧장 놀이터로 내려왔다. 엄마의 얼굴에는 분노와 안도의 감정이 뒤섞여 있었다.
나는 크게 혼이 났다. 어린 마음에 도둑이 들 수도 있다는 생각조차 못했던 내가, 동생을 업은 채 밖으로 나간 사실이 얼마나 위험한 일이었는지를 그제야 깨달았다. 엄마의 목소리가 커질수록 내 눈에서는 눈물이 터져 나왔다. 서럽게 울었다. 그날 놀이터에서 흘린 눈물은, 단순히 혼난 데서 비롯된 게 아니었다. 나도 다른 아이들처럼 뛰고 싶었던 그 마음이, 도망치듯 끊겨버린 데서 온 울음이었다.
그렇게 나는 어린 시절을 동생과 함께, 그러나 바깥 세상과는 조금 떨어진 채 살아갔다. 매번 동생을 업고 다니던 기억, 숟가락으로 밥을 떠먹여 주던 기억, 베란다 너머로 들리던 아이들의 웃음소리. 그 모든 것이 내 안에 쌓였다. 그 나이에 느끼기에는 버거웠지만, 지금 돌이켜보면 그것이 내 삶을 단단히 붙잡아 준 기초 체력이었다.
시간이 흘러 중학생이 되었을 때, 나는 오랜만에 아버지를 만났다. 아버지와의 추억은 많지 않다. 하지만 그 몇 안 되는 기억 중 하나가 지금도 내 마음을 따뜻하게 채운다. 그날 아버지는 나와 여동생을 데리고 동대문 시장으로 향했다. 좁은 골목마다 사람들로 붐볐고, 좌판에서는 옷가지와 장난감, 그리고 수많은 카세트 테이프가 팔리고 있었다. 진품은 아니었을지 모른다. 하지만 아버지는 우리에게 여러 개를 집어주셨다. 내 손에 카세트 테이프 몇 개가 쥐어지는 순간, 묘한 기쁨이 올라왔다. 아버지와 함께 있다는 사실, 동생과 나란히 서 있다는 순간이 나를 벅차게 했다.
그날 집으로 돌아오는 길, 나는 카세트 테이프를 가슴에 꼭 안았다. 테이프 안에 어떤 노래가 들어있는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그것은 단순한 음악의 매개체가 아니라, 아버지가 우리와 함께한 증거였다. 아버지의 손길이 닿은 물건, 아버지와 함께 걷던 시장의 냄새, 여동생이 내 손을 잡던 감각. 그것이 내게는 무엇보다 소중했다. 부모의 부재로 인한 빈틈이 잠시라도 메워진 것 같은 순간이었다.
돌이켜보면 내 어린 시절은 외로움과 기쁨이 교차하는 연속이었다. 베란다에 서서 부러움에 젖었던 순간도, 문을 열고 나갔다가 혼나며 울었던 순간도, 아버지와 동생과 함께 동대문을 걸으며 테이프를 고르던 순간도. 그 모든 것이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 그때의 서러움이 있었기에 나는 가족을 지키려는 마음을 더 굳게 다질 수 있었고, 그때의 짧은 기쁨이 있었기에 지금도 평범한 하루가 주는 작은 위로에 감사할 수 있다.
나는 이제 안다. 인생은 찬란한 순간만으로 이어지지 않는다. 서럽고 무거운 기억이 있어야 기쁨의 순간이 더욱 빛난다. 그리고 그 모든 조각들이 모여 오늘을 만든다. 지금 내가 아이들과 아내와 함께 보내는 평범한 하루, 그 안에 어린 시절의 눈물과 웃음이 고스란히 녹아 있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오늘이 더욱 귀하다. 그때의 무게가 있었기에, 지금 나는 하루하루를 사랑할 수 있다.
― "어린 시절의 서러움과 짧은 기쁨이 모여, 오늘의 평범한 하루를 더욱 소중히 빛나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