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은 모양이 아니라, 마음이 드러나는 또 다른 얼굴이다
그때 내 손에는 도시락이 없었다. 대신 엄마가 아침에 건네준 작은 봉투가 있었다. 봉투 안에는 삼천 원이 들어 있었다. 당시로서는 결코 작은 돈은 아니었지만, 도시락을 대신하기에는 어쩐지 너무 가볍고 얇았다. 종이의 바스락거림이 자꾸만 내 손끝을 자극했다. 혹시 누가 볼까 봐, 혹시 누가 물어볼까 봐, 나는 봉투를 주머니 깊숙이 찔러 넣었다. 다른 아이들이 도시락을 꺼내 들 때, 나만 괜히 손을 허공에 두며 시선을 피했다.
압구정동 아파트 단지에 살던 나는 가난한 아이가 아니었다. 오히려 그 동네는 집집마다 사정이 넉넉했고, 친구들 도시락도 화려했다. 우리 집도 다르지 않았다. 엄마는 부동산을 여기저기 사 모으며 살림을 넉넉히 꾸려가고 있었다. 하지만 엄마는 늘 바빴다. 아침 일찍 나가 밤늦게 들어오는 일이 많았다. 엄마가 할 수 있는 건, 소풍 날 도시락 대신 봉투를 내 손에 쥐여주는 것뿐이었다. 사랑이 없어서가 아니라, 엄마가 그만큼 시간을 쓸 수 없었던 것이다.
버스 안에서 김밥 냄새가 가득 퍼질 때, 나는 창밖을 바라봤다. 푸른 하늘과 빽빽한 가로수, 봄날의 들판이 스쳐 지나갔다. 하지만 내 마음은 들판처럼 탁 트이지 않았다. 도시락을 손에 쥐지 못했다는 사실이 괜히 어깨를 무겁게 했다. 다른 아이들이 도시락을 열어 나누어 먹을 때, 나는 속으로만 삼켰다. ‘괜찮아. 도착하면 매점에서 뭔가 살 수 있어.’ 스스로를 다독였지만, 작은 위안일 뿐이었다.
소풍 장소에 도착하자, 아이들은 돗자리를 깔고 둘러앉아 도시락을 펼쳤다. 도시락 속 김밥은 단정하게 잘려 있었고, 반찬은 알록달록 빛났다. 그 고소한 냄새가 바람에 흘러왔다. 나는 그 옆에서 봉투를 꺼내 매점으로 향했다. 부드러운 빵에 안에 크림이 발라진 보름달 빵과 음료를 샀다.
손에 들린 빵 봉지는 허전했고, 콜라 캔은 차가웠다. 빵을 한입 베어 물었지만, 다른 친구들처럼 웃으며 나누어 먹을 수는 없었다. 음료를 벌컥벌컥 들이켜며 목을 축였지만, 마음속 허전함까지 채울 수는 없었다. 나는 친구들의 도시락 무리에 섞이지 못한 채, 조금 떨어진 자리에서 빵을 씹었다. 어린 마음에는 그 장면이 서러움으로 각인되었다.
그날 이후로 소풍을 떠올리면 늘 두 가지 감정이 함께 밀려온다. 하나는 분명 서러움이다. ‘왜 우리 집은 도시락을 못 싸왔을까.’ 친구들의 도시락을 볼 때마다 가슴이 움츠러들었다. 하지만 세월이 흘러 어른이 된 지금, 그 기억은 다른 얼굴을 하고 다가온다. 엄마는 도시락을 싸줄 수 없을 만큼 바빴다. 돈을 모으고, 집을 지키고, 두 아이를 키우느라 시간을 다 써야 했다. 그 바쁜 와중에도 내 손에 삼천 원을 꼭 쥐여주었다. 그 작은 봉투는 엄마가 건넬 수 있었던 최선의 도시락이었다. 서툴지만 분명 사랑이 담겨 있었다.
어린 시절 나는 몰랐다. 도시락이라는 모양새가 중요했던 나이에, 봉투 하나로 버텨야 했던 순간은 부끄러움으로만 남았다. 그러나 지금은 안다. 그때 엄마가 건넨 봉투 안에는 단순한 돈이 아니라 엄마가 싸준 김밥은 없었지만, 엄마의 마음은 분명 내 곁에 있었다.
돌이켜보면 소풍날의 봉투는 내게 중요한 깨달음을 주었다. 사랑은 늘 화려한 모양으로만 드러나지 않는다는 것. 어떤 사랑은 김밥처럼 눈에 보이게 드러나지만, 또 어떤 사랑은 작은 봉투 속에 숨어 있기도 하다는 것. 어린 시절의 나는 그것을 몰랐고, 그래서 서러워했다. 그러나 지금은 알게 되었다. 사랑은 모양이 다를 뿐, 마음만은 분명히 존재한다는 사실을.
지금 나는 아이들이 학교에서 소풍을 간다고 할 때마다 그날을 떠올린다. 반찬이 소박해도 좋고, 때로는 배달 음식으로 끼니를 대신해도 상관없다. 중요한 건 함께 앉아 먹는 그 순간이다. 그때의 삼천 원 봉투가 내게 가르쳐준 건 바로 이것이다. 밥상의 모양보다 중요한 건, 그 자리에 함께하는 마음이라는 것. 그 사실을 깨달았기에 나는 오늘의 평범한 하루를 더 소중히 여긴다.
― “사랑은 모양이 아니라, 서로를 지키려는 마음이 드러나는 또 다른 얼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