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정은 세월과 거리를 넘어, 변치 않는 편안함으로 이어지는 힘이다.
우리가 처음 만난 건 대학 시절, 사진학과 강의실이었다. 사진을 전공한다는 공통점 덕에 우리는 자연스럽게 붙어 다녔다. 수업이 끝나면 우리는 종종 고궁으로 향했다. 조용히 걸으며 담벼락 위의 그림자, 기와에 내려앉은 햇살, 고궁 안의 나무들이 만들어내는 빛의 결을 카메라에 담았다. 말이 많지 않아도 통했다. 셔터 소리 사이사이로 서로의 시선이 겹쳤고, 같은 피사체를 바라보면서도 각자 다른 시선으로 담아내는 것이 즐거웠다. 그 시간은 단순한 과제가 아니라 우리만의 대화였다.
재중이와의 인연이 깊어졌던 건 내 인생의 가장 힘든 시기 덕분이었다. 내가 수술을 받고 며칠을 병원에 누워 있을 때였다. 많은 사람이 안부를 묻긴 했지만, 매일같이 내 병실로 찾아온 사람은 재중이가 유일했다. 그는 보조침대에 누워 밤을 함께 보내주었고, 때로는 병실 의자에 앉아 나와 이야기를 나누며 시간을 견뎠다. 단순한 위로가 아니라 행동이었다. 그 며칠간의 동행이 내게는 큰 힘이 되었다. 친구라는 말이 이렇게 무겁고도 따뜻할 수 있다는 걸 그때 처음 알았다.
그 후로도 우리는 서로의 곁을 지켰다. 하지만 어느 순간, 그는 세상 반대편으로 떠났다. 아프리카에 가겠다고 했을 때 나는 놀랐지만, 그의 선택을 말릴 수 없었다. 사진에 대한 열정이 그를 이끌었다. 잠시 머물다 돌아올 줄 알았던 그는 결국 프랑스에 정착했다.
처음에는 계속 사진을 할 거라 생각했지만, 나중에 들려온 소식은 의외였다. 그는 개목걸이를 만들고 있었다. 조금 낯설었지만, 그 일을 대하는 그의 태도를 떠올리니 고개가 끄덕여졌다. 늘 손재주가 좋고, 섬세하고, 작은 것 하나에도 정성을 쏟던 그였으니, 어떤 일을 하든 잘할 수 있을 거라는 확신이 있었다.
멀리 떨어져 있어도 가끔 연락은 이어졌다. 보이스톡으로 안부를 묻고, 사진을 주고받으며 서로의 삶을 나누었다. 하지만 화면 속 얼굴은 화면일 뿐, 진짜는 아니었다. 사람과 사람이 마주 앉아 눈을 맞추고 숨결을 나누는 시간과는 달랐다. 그래서일까, 10년 만에 그가 내 동네로 찾아온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마음속에 묘한 설렘이 일었다. 반가움과 긴장감이 뒤섞였다. 오랜만에 만나면 어색하지 않을까, 서로의 삶이 너무 달라져 대화가 이어지지 않으면 어쩌나 하는 걱정도 스쳤다.
그러나 그 모든 걱정은 그를 본 순간 사라졌다. 내 동네 골목에서 마주친 그는 세월이 남긴 흔적을 얼굴에 담고 있었다. 눈가의 주름, 조금은 느릿해진 걸음. 하지만 그가 웃으며 건넨 한마디, “야, 진짜 오랜만이다.” 그 말에 나는 대학 시절로 단숨에 돌아갔다. 목소리도, 말투도, 손짓도 그대로였다. 우리 사이에는 긴 공백이 없었다. 마치 잠시 떨어졌다가 다시 이어진 대화 같았다.
우리는 오랜만에 식당에 마주 앉아 밥을 먹으며 대학 시절 이야기를 꺼냈다. 고궁을 함께 다니며 사진을 찍던 순간, 강의실에서 서로의 필름을 바꿔 끼워주던 장난, 교수님의 농담에 웃던 기억, 그리고 무엇보다 내가 병원에 누워 있을 때 보조침대에서 함께 밤을 지새우던 이야기. “야, 그때 너 없었으면 진짜 심심했을 거다.” 내가 말하자 그는 웃으며 “심심해서 간 게 아니고, 내가 아니면 누가 있냐”라고 답했다. 그 대답에 괜히 가슴이 뭉클해졌다. 우리는 서로 다른 길을 걸었지만, 그 마음만큼은 여전히 같았다.
시간은 우리를 멀리 떨어뜨려 놓았지만, 마음의 끈은 여전히 단단히 이어져 있었다. 오랜만에 만나도 서먹하지 않고, 오히려 더 깊어진 편안함이 우리 사이에 있었다. 말하지 않아도 통하는 믿음, 긴 설명이 필요 없는 우정. 그것은 세월이 남긴 선물이자, 앞으로도 변치 않을 나의 버팀목이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나는 마음속으로 되뇌었다. 인생에 이런 친구 하나 있다는 건 얼마나 큰 축복인가. 언제든 연락하면 달려와 줄 것 같고, 아무리 시간이 흘러도 어제 만난 듯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친구. 그런 인연은 흔치 않다. 그리고 나는 그 흔치 않은 인연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에 감사했다.
― “우정은 세월과 거리를 넘어, 변치 않는 편안함으로 이어지는 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