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위치 파악하고 선택하기
면담을 하다 보면 자신과 맞지 않는 위치에 있으면서 그리하여 발생하는 힘든 상황들로 인해 괴로워하는 사람들을 종종 본다. 그래서 더 이야기를 해 보면 그 사람은 자신의 적성은 고려하지 않은 채 그저 시간의 흐름에 자신을 맡겨서 직업이나 현재 위치에 도달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세상에는 많은 자리가 있다. 그것은 단순히 직업에만 국한되지 않고, 삶의 많은 영역에서 특정 시간 동안 존재한다. 예를 들어 엄마라는 위치도 아이를 낳은 순간부터 적어도 아이가 다 자랄 때까지는 자신이 있는 위치이며, 하다 못해 당신이 일일 아르바이트를 한다고 하더라도 그 하루 동안은 그것이 당신의 자리인 것이다. 물론 하루 이틀쯤은 자신과 맞지 않는 자리를 경험해 보는 것은 크게 삶에 영향을 주지는 않지만, 하루하루가 쌓여서 인생이 되기 때문에 우리는 우리와 맞는 삶의 여러 자리를 찾아야만 한다.
그렇다면 지금 내가 있는 자리가 나와 맞지 않는다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을까?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내가 삶에 어떤 곳에 있는지 인지하는 것이 필요하다. 나는 이런 직업이 있고, 여기서는 부회장을 맡고 있으며, 누군가의 자녀이고, 누군가의 아버지이며, 이런 협회에서 봉사하고 있고, 이 사람의 사랑하는 사람이다.
이렇게 삶에서의 나의 위치를 파악했다면, 그중에서 나에게 행복을 주는 위치, 만족을 주는 자리와 그렇지 않은 자리를 찾아서 서로의 공통점을 찾아본다. 그리고 꼭 필요한 자리가 아니라면, 거기서 과감하게 벗어나도록 한다. 물론 경제적 위치나 혈연관계 같은 주요 위치들은 단숨에 벗어나기 힘들다. 하지만 이 또한 시간과 노력을 들인다면 조금씩 떼어놓을 수 있다.
예를 들어 힘들게 하는 배우자와는 이혼해야 하는가? 힘들게 하는 부모와 연을 끊어야 하는가? 정신과적 가족 상담에서는 가족을 이어주는 쪽으로 항상 결론이 나지는 않는다. 최우선적으로 고려되어야 하는 것은 모두의 행복이다. 개인이 행복하지 못한 채 가족이 행복한 것은 망상에 불과할 것이다.
삶에서 자신이 어디쯤 왔는지 파악하는 것은 정말 중요하다. 그리고 삶의 그 위치가 자신을 힘들게 한다면 움직이자. 그것은 마치 물이 위에서 아래로 흐르는 것과 같이 자연스러운 현상이고 그 결과 또한 유려할 것이다.
지금 이 순간이 없다면
해의 뜨고 짐은 느낄 수 있는지
지속할 수 있는 루틴은
분명히 필요하지만
옆길로 샐 필요성은
그곳에 또한 인생의 행복이 있음이다.
때는 2014년 7월 말, 본과 4학년 여름 한창 국시 준비를 앞둔 시점이었다. 9월에 치러지는 실기 시험이 코앞이었기 때문에 다소 바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었지만 대학시절 다른 대학 사람들을 만날 수 있는 기회였던 동아리 수련회에 짬을 내어 참여하게 되었고, 그 수련회가 끝나고 집으로 향해가던 때 든 생각이다.
당시 나에게는 분명 주어진 길이 있었다. 한데 그 평온한 길 앞에 갈림길이 나타났다. 하나는 원래 내가 가던 길, 다른 하나는 그 옆으로 난 새로운 길. 그때 나는 그 기로에 있었고 그 순간 나는 나에게 비치는 햇볕을 받으며 내 앞에 나타난 새로운 길에 행복이 있을 것임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실로 그 길에는 행복이 있었으나 다른 길을 생각한 순간부터 나의 원래의 길은 이지러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길을 가는 동안 나는 원래 일상이 무너지는 것을 목도하고 다시 원래의 길로 돌아왔다. 그 과정에는 많은 에너지가 소모되었고 그곳에는 행복도 있었지만, 마냥 행복만 있지는 않았다.
지금 되돌아보면 그렇다. 하지만 나는 그 선택을 후회하지는 않는다. 기존의 정해져 있던 일상에서 벗어나 새로운 길을 개척해 나가는 것에는 행복도, 또한 그에 응당한 시련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제 그 시간은 나의 인생에 있어서 하나의 추억이 되었다. 하지만 그 순간순간 나는 충실하게 살았고 그때의 모든 것을 느꼈으며 그 기억이 내 안에 있기에 나는 만족한다.
옆길로 새기를 원하는가? 그럼 그때의 기억이 다시 떠오를 것이다. 글쎄, 이젠 그렇게 쉬운 선택은 아닐 것 같기는 하다. 하나 그 순간을 오롯이 맛보고 싶다면 선택해 보라. 그곳에 또 다른 길이 있을 것이니….
물을 시원하게 만드는데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냉장고? 액화질소? 그것보다 가장 필요한 것이 시간이다. 시간이 없으면 우리는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 사랑도, 만남도, 하다못해 물을 차갑게 만드는 것도…. 이처럼 시간은 인간이 쓸 수 있는 가장 핵심적인 재화이며 개인에게 명백한 한정재다.
하지만 시간은 마치 끝없이 쓸 수 있는 마이너스 통장처럼 한정재가 아닌 것 같은 느낌을 준다. 그러다가 통장의 한도에 다다랐을 때 인간은 위기심을 느끼는 순간이 온다.
그런 느낌의 순간이 어쩌면 군입대 전 가족을 떠나 혼자 독립하기 전 같은 순간일 테고, 어쩌면 누군가 가까운 존재의 죽음을 경험하는 순간일 수 있다. 하지만 가장 심하게 느껴지는 순간이 어떤 이유에서건 시한부 인생이나 사형선고를 받을 때 일 것이다.
이런 순간에 인간은 평소에 소홀히 했던 것을 돌아본다. 사랑하는 사람을 찾는다. 하지만 이런 시기일수록 시간은 기다려주지 않는다. 한도에 다다른 순간 인간은 후회를 뒤로하고 생을 마감한다.
그러기에 시간이 무한정한 것처럼 보이는 젊음의 시기에 길을 선택하고 이루어라. 낭비하기엔 당신의 시간 통장의 한도가 언제 찾아올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