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닥터 온실 Sep 20. 2024

1990년생 남자 허씨

Prologue

 올해 30대 중반 남자 허씨의 삶은 다소 무료하다. 허씨에게도 삶의 무료함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허씨의 마음이 뜨거웠던 적은 두 번 있었다. 첫 번째는 20대의 연애, 하지만 그것은 여성의 일방적인 이별 통보로 끝이 났다. 그 이후로 여성 사귀기가 무서워졌다. 두 번째는 지난 코로나 불장에서의 코인 투자. 허씨는 이때 그간 일하면서 열심히 모았던 3000만 원을 코인에 올인했다. 비트코인으로는 쉽게 돈을 벌 수 없을 것 같아서 아직 덜 오른 것 같았던 잡 코인을 고른 것이 화근이었다. 

 3천만 원이 10배가 되어 3억 원을 마련해서 구축이라도 내가 사는 곳에 아파트 한 채 정도는 갭투 할 목표였는데, 돌아온 것은 10분의 1인 300만 원 남짓. 자그마치 일 년치 수입이 날아갔고, 모으는 속도로 따지면 3년이 걸리는 돈이 불과 3개월도 안 되는 시간 동안 거덜 났다. 

 친구한테는 할 말이 없었다. 그때 친구가 갭투 같이 하자고 했을 때 종잣돈이 모자라다는 사실이 어찌나 부끄럽던지 그런 것에 관심이 없다고 했다. 실은 속으로 같이 너무 하고 싶었다. 자란 동네는 같은데, 이곳에 계속 살고 싶은데, 그럴 미래가 현재 수입으로는 그려지지 않는 것이 화가 났다. 그때 코인이라는 돈 복사 기계를 만난 것이다. 너무도 짧은 시간 내에 2배, 3배, 심지어 10배 버는 사람들을 많이 봤다. 유튜브나 블로그에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내 사수였던 사람도, 친구 중에 게임만 하기로 유명하던 별로 친하지 않은 녀석도 서너 배의 수익을 자랑했다. 나도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예전에 해봤던 주식이랑 다르게 별 공부도 필요하지 않았다. 그냥 차트만 보고 오를 것 같을 때 넣으면 되었다. 처음에는 20만 원으로 시작해 봤던 코인이 어느새 100배 넘게 들어갔을 때, 그때가 코로나가 정점일 무렵이었다. 그리고 그 코인은 이제 검색해도 잘 나오지도 않는다.      

 그래도 괜찮았다. 젊었을 때 투자 손실은 수업료라고들 했다. 친구들도 다 비슷하게 잃었다고 한다. 누구는 천만 원, 누구는 오백 만원. 코인 장에서 돈을 딴 친구들은 있지만 친한 친구들 가운데는 없는 것이 그나마 다행이었다. 다들 소소하게나마 손해를 봤다. 그중 가장 부러운 친구는 심약해서 몇십만 원으로만 코인을 하다가 몇 만 원 잃은 친구다. 그때는 그 친구를 그렇게 놀려댔는데, 지금 와서는 부러워하니 좀 부끄러웠다. 아무튼 이제 더 이상 친구들과의 대화에서 코인은 잘 나오지 않는다. 요즘 대화는 또다시 부동산으로 옮겨갔다. 


 친구들 중 결혼한 친구가 있다. 친구는 결혼을 일찍 했다. 친구는 결혼할 때 갭투로 집을 사면서 자신은 월세 원룸에서 시작했다. 친구들이 무슨 원룸에서 신혼을 시작하냐고 했을 때도 이 친구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렇게 갭투한 집이 지난 코로나 불장에서 좋은 가격에 팔렸고, 그 집을 판돈으로 신혼특공으로 서울의 아파트를 청약했다고 했다. 원래는 경쟁률이 높아서 그냥 서울 구축이나 살까 했었는데, 금리가 오르면서 하락장이 지속되자 경쟁률이 낮아져서 청약에도 당첨되었다고 한다. 그렇게 친구는 빚 하나 없이 서울 요지에 신축 아파트를 손에 넣었다. 허씨가 보기에는 친구도 자신과 다름없는 월급쟁이로 시작했는데, 지금 허씨는 모은 돈 한 푼 없는 빈털터리고 친구는 유주택자라는 것이 배 아픈 사실이었다. 허씨는 이 친구와 술자리에서 푸념을 늘어놓았다. 세상이 날 억까하는 것 같다고. 친구가 허씨에게 물었다. 그럼 어떻게 살고 싶은데? 꿈이 뭐냐고 말이야.


-계속-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