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사회, 우회적 배제>
현대사회는 여성에 대한 차별을 교묘하게 우회하고 있다. 차별이 아닌 듯 차별을 하는 형태라 하겠다. 우회적이라는 것은 하고자 하는 일을 직접 하지 않고 돌려서 간접적으로 표현하거나 실행하는 것이다.
현대사회는 법적으로도 차별은 금지되어 있기 때문에 직접적인 차별을 하지 않고 우회적으로 차별을 시행한다. 이는 너무 간극이 작아서 잘 보이지 않는다. 잘 들여다보아야 알아볼 수 있으며 볼 수 있는 눈이 있어야 볼 수 있다. 또한, 이는 공공연하고 당연한 것을 가장하여 이루어지고 있다.
심지어 차별인지 조차 구분할 수 없는 경우가 많다. 이왕이면 남성을 뽑는 회사들은 물론, 여성을 상관으로 세웠을 경우 많은 것이 불합리하다는 막연한 인식을 갖고 있다. 이는 여성에 대한 막연한 판단의 결과다. 또한, 남성들이 여성의 지시를 받지 않으려는 가부장적 의식이다. 여성은 대체로 꼼꼼하고 정확하며 섬세한 특성이 있어 남성 직원은 이를 힘들어하기에 기피하는 현상이 나타나기도 한다. 이는 명백히 우회적인 배제이며 차별에 해당한다.
대학에서 교수를 선발하는 경우에도 이왕이면 여성보다 남성을 선호한다. 또한 승진의 기회가 있을 때도 남성을 선호하는 경향이 뚜렷하다. 이 역시 우회적 배제에 해당한다. 아직도 가정에서는 여성이 집안일을 도맡아 하고 있는 경우가 많으며, 육아는 심지어 여성의 몫인 경우가 허다하다.
또한 설거지를 하거나 세탁기를 돌리고는 도와줬다는 표현을 한다. 도와주었다는 것은 여성에 국한된 일을 도와주었다는 표현으로 남성은 객체가 되어 도움을 주는 존재로 설정되는 부적합한 형태다. 굳이 따진다면 자신에 관련된 일은 자신이 해야 하는 것이다. 이를 여성이 도맡아 하는 일로 착각한 표현이라 할 것이다.
이는 회사로 까지 연장된다. 회사나 모임에서는 지금도 커피를 타거나 사무실 청소를 담당하는 일은 당연히 여성의 몫이 되는 것들이 그것이다. 은행에 가면 창구에 대부분 여성이 앉아 있다.
상담전화에 폭언을 하는 예가 흔한데 이때 응대자를 남성으로 바꾸면 그 정도가 반 이하로 준다는 통계가 있다. 우리 사회가 여성에게 얼마나 폭력적이며 차별적인지를 증명해 준다.
또한 그 여성들은 끊임없이 성적인 폭언에 시달린다. 게임을 하면서도 여성 유저들은 성적인 폭언을 들어야 한다. 여성이라는 이유로 사회는 아직도 수많은 폭언과 폭력과 차별을 하는 것이다.
소설 <82년생 김지영>을 통해서 살펴보면 시댁에서 여성은 하나의 잡부에 불과하다. 여성의 인격은 없다. 하대는 물론 파출부 취급을 한다. 소설은 82년생 뿐만 아리라 여성이 겪을 법한 일을 펼쳐놓았다. 학교, 직장, 결혼 이후의 경험을 가감 없이 담담하게 그려 놓았다. 친구, 언니, 선배, 엄마, 할머니 등의 입장이 세대별로 나타난다. 심지어 82년생이 그렇게 느끼는 정도니 그 이전 세대는 말할 수도 없는 차별이 횡행하였다.
남편의 설거지에 대한 시어머니의 반응, 시어머니는 당연한 듯이 며느리에게 명령을 하면서 이것저것 시킨다. 약자가 약자를 억압하는 형태는 오래전부터 있어왔다. 영화 <기생충>에서도 갑과 을의 전쟁이 아니라 을과 병의 전쟁이 그려지고 있다. 을과 병은 생존권이 달려 있어 서로 물러날 구석이 없는 사람들이다. 그래서 상대를 기를 쓰고 제압하려 하는 모습은 아이러니하면서 씁쓸한 장면이다.
즉, 반 지하에 사는 사람들보다 더 지하에 사는, 아예 햇빛 보는 것을 포기하고 사는, 사람들과의 대결은 안쓰럽기 짝이 없다. 마찬가지로 여성이 여성을 억압하도록 교묘하게 만들어 놓은 이 사회현상은 이제 멈추어야 하지 않겠는가?
사실 을과 병의 위치에 서게 되면 선택지가 없는 경우가 많다. 자신의 삶을 영위하기 위해 다른 사람을 억압하거나 위해를 가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 되는 상황이 나타나고 마는 것이다. 시어머니와 며느리의 역할은 을과 병의 관계도 아니다. 그렇다고 갑과 을의 관계는 더욱 아니다. 그러나 이 억압은 시대가 변했는데도 조선시대처럼 며느리를 대하고 있어 문제인 것이다.
여성의 문제는 여성끼리 더 적극적으로 해결해야 한다. 남성들은 자신의 문제가 아니라고 대부분 외면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며, 아예 관심조차 없다. 이미 무임승차를 했는데 대가를 지불해야 할 이유가 없다고 당연하게 생각하며 신경을 꺼 버린다. 심지어 대가를 지불해야 하는 상황이 올까봐 아내를 단속한다.
남성이 해결해 주는 여성의 문제는 그야말로 장님이 코끼리 만지는 격이다.
그러므로 여성들은 주체적인 행동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 가장 쉬운 예로 자신만의 노트북을 켜는 것이라 하겠다. 그것은 타자가 아닌 주체적인 행동이며, 더 나아가 사회와 자신을 우선시하는 것이다. 더 나아가 사회와 연대하게 된다면 이는 자신과 후대를 위한 시간이 될 것이다.
아직도 겪고 있는 많은 차별 중에 경리가 여성이어야 한다거나. 은행 창구에는 여성이 있어야 한다거나 하는 약자의 위치에 항상 노출되어 있기에 살면서 성희롱, 성추행을 안 당해 본 사람이 없을 정도다.
내가 중학생 때는 비가 오다가 그친 날이었는데 지나가던 중년 남성이 우산대로 나의 다리사이를 찌르고 갔다. 극장에 가면 손과 허벅지를 더듬는 남성이 있으며, 지하철을 타면 스커트 밑으로 들어가는 손을 목격해야 했다.
그뿐이 아니다. 그 지긋지긋한 추행이 싫어서 지하철의 출입문 쪽에 서 있는데 재빨리 가슴을 만지고 내리던 파렴치한도 있었다. 필자가 이런 말을 하면 메갈인가? 너도 메갈하지 그래? 하면서 메갈 프레임을 씌운다. 잘못된 행동에 대한 호소를 메갈로 몰아, 입을 틀어막으려는 의도다. 듣기 싫다는 의사표현이며 그런 말을 하지 말라는 강력한 입막음이다. 따라서 이는 일종의 억압이다. 잘못을 지적하는 데 이를 억압으로 해결할 수 있는가?
게임 유저들이 여성인 것을 알았을 때 욕설과 여혐이나 극단적 차별과 성적모욕이 만연한다. 여성으로 겪는 차별은 뿌리깊고 너무나 심하다. 여성들이 극단적으로 갈 수밖에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사방에서 부당한 상황을 만나니 페미니즘이 안 될 수가 없다. 본래 페미니즘은 여성의 불평등을 고치려는 이데올로기다. 페미니즘을 잘 실천하면 남성들도 자신들이 겪는 불평등을 해소할 수 있다. 그러나 남성들은 자신들이 누리는 것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여성주의를 내세우면 무조건 무시하고 하대하며 저지하고 혐오하려 든다.
모든 것이 개방되고 어디든 갈 수 있으며 무엇이든 할 수 있는 21세기, 2023년의 여성들은 어떤 차별적 위치에 있는가? 차별이 없는데 괜히 문제를 제기한다는 랩을 들은 적이 있다. <82년생 김지영>이란 소설에 무수하게 달리는 여혐과 여폄하의 악플을 만난다. 치명적 악플에 시달리다 자살하는 여성 연예인도 기억한다.
특히 한국 여성의 자살률은 2003년 이후 부동의 1위를 차지하며 세계에서 가장 높기로 유명하다. 2위 국가의 2배를 넘는 숫자를 만난다. 젊은 여성들의 자살률이 특징적으로 높다. 이는 우울증과 소통의 부재, 엄청난 성적모독과 악플 등이 원인이다. 최근에 불거진 초등학교 교사 자살 사건은 여성교사를 보육, 헌신, 희생의 종래의 차별적이며 잘못된 사회적 코드로 읽고 이를 요구한 데서 의미가 크다고 할 것이다.
우리나라의 2018년은 역대 최대의 자살률을 보이고 있다. 13,670명이 자살하였고 하루 평균 37.5명의 숫자다. 또한 10대~30대의 사망원인으로 1위가 자살일 만큼 사회문제화 되고 있다.
다른 나라에 비해 우리나라의 젊은 여성들은 왜 자살을 많이 하는 것일까? 이는 여성이 느끼는 부당함과도 관련이 있으며 여혐 내지는 폄하와 악질적으로 매도하는 패들이 있기 때문이다.
여성이 사회 활동에서 느끼는 무기력감, 단절감, 심각한 우울감 등과 더불어 상상을 초월하는 폄하적 댓글은 치명적 상처로 여성을 몰고 가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