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사 반란 >
어머니는 제사를 몹시 싫어했다. 실속 없이 차릴 것은 다 차려야 하고, 자신은 아무 의미도 없이 제사 때마다 찌그러져 있어야 했다. 아버지는 누구의 복을 비는지 유교적 습속으로 허투루해도 되는 여자인 아내는 안중에도 없었을 것이며 줄줄이 딸들은 관심밖이었다. 그들은 출가외인이니까. 우리 집은 아들이 하나이고 딸이 넷이다. 막내가 아들이다. 아들을 낳기 위해 줄줄이 딸을 낳았다. 대를 잇는 것이 무엇보다 소중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아들이 일찍 유명을 달리했다. 젊은 나이에 암에 걸렸기 때문이다. 딸 밖에 남지 않았는데 아버지는 여전히 대를 잇는 걱정에 한숨을 쉬었다. 딸도 대를 잇는 것이라 말해도 이빨도 안들어갔다.
한국유교학회장(조남국)은 유교의 근본정신은 양성평등에 있으며, <주자가례>에도 제사 과정에 여성이 동참해 같이 절할 것을 명시한 대목이 있다고 지적한다. 그런데 조선 중기 이후 여성을 제사에서 배제하는 잘못된 풍속이 지속되었다.
제사 형식만 놓고 따진다면 유교는 상당히 합리적이었다. ‘시중지도(時中之道, 시대 변화에 맞추어 가는 도)’라는 유교의 기본 정신은 제도나 형식이 불변하는 것이 아님을 가르치고 있기 때문이다.
고려 시대에만 해도 딸이 친정 제사를 지냈다. ‘윤회 봉사’라 하여 형제자매가 돌아가며 제사를 주관하였다. 당시에는 집이 아닌 절에서 제사를 지냈으므로, 승려가 의식을 주관하고 자식들은 불공을 드리는 비용만 부담하면 되었다. 이 같은 제사 풍속에서는 아들이 없어도 별 문제가 없다. 딸이 죽은 뒤에는 외손자가 제사를 계승했다(<우리나라 여성들은 어떻게 살았을까>, 청년사).
그러나 조선 중기 이후 성리학이 확고한 지배 이념으로 자리 잡으면서 제사는 철저하게 남성, 그중에서도 장남 손으로 넘어간다. 특히 임진왜란·병자호란 이후 신분 질서가 문란해지면서 제사가 더욱 폐쇄적인 형태로 굳어 갔다는 것이 학자들의 지적이다.
또한, 조선후기로 갈수록 돈으로 벼슬을 사려는 사람이 늘면서 너도나도 족보를 정비하고, 문집을 간행하고, 제례를 성대하게 치러 명망 있는 집안의 자손임을 과시하려 했다. 이 과정에서 부계적인 문중 조직이 더욱 강화되어 장남에게 재산·가계를 물려주는 제도가 정착했던 것이다.
즉, 시대 변화에 따라 제사 문화 또한 개선해야 한다는 것은 당연 지사다. 아들딸이 똑같이 재산을 상속받게 2005년 가족법이 개정되어 2008년에 시행되었다. 2023년 1월에는 제사에 전을 부치지 않아도 되는 말많던 제사상을 간소화하여 내놓은 것은 이러한 사회변화를 받아들이는 것이기도 한다.
유교문화진흥원은 지난 1월에 설날 제사상에 대해 성균관의례정립위원회와 성균관유도회총본부와 더불어 의견을 발표한 바 있다. '함께하는 설 차례 간소화' 방안으로 차례상 간소화 방안을 공개하면서 명절 스트레스 중 하나로 꼽히는 차례상에 전을 올리지 않아도 된다고 설명했다. (2023. 1. 16)
“4∼5년 전만 해도 명절을 며칠 앞두면 요통·복통·두통, 신경·안면 마비, 급작스런 몸살·하혈 따위를 호소하는 여성이 병원 응급실에 무더기로 실려 오곤 했다. 그들은 명절에 저항하는 자신의 억압된 심리가 이런 정신 신체장애로 나타났다는 것을 꿈에도 상상하지 못했다”라고 신경정신과의사는 조언한다.
그리고 지금
시대는 바뀌었다. 명절과 제사 문화가 여성에게 부당하다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현실적으로 이를 따라갈 수밖에 없는 상황은 갈등을 증폭시킬 뿐이다. 이제 한국 사회는 ‘제사가 싫다’는 반란 부대를 대량 목도하게 된 것이다.
제사가 싫다.
명절도 싫다.
여성을 보조자, 조력자인 제이의 인간으로 여기지 말라.
이제 누구에게 기대거나 바라는 것이 아니라 주체적 인간으로 성장하는 여성이 대거 등장하고 있다. 사실 요즘에는 여성에 기대어 사는 남성도 많은 세상이다.
그러나 아직도
단오제나 종묘제 서원제 등 공식적인 제례문화에 남성들의 독무대가 연출되고 있다. 아직도 조선시대처럼 여성은 음식을 차리고 남성은 제사를 주제 하는 마을 축제들이 허다하다. 이것부터 개선해야 한다. 같이 음식을 만들고 같이 제례를 올려야 한다.
2017. 종묘제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