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여성배제의 원칙>
우리는 이제 AI시대를 맞이하고 있다. 첨단 과학이 지배하는 현시대이지만 아직도 차별은 암묵적으로 여성을 왜곡하고 억압하는 기제로 암암리에 작용하고 있다. 암흑기를 지난 지 오래되었으나 아직도 여성은 차별을 당하며 그것이 차별인 줄도 모르고 있는 경우도 많다.
차별은 점점 더 내면화하고 심화되어 생활 깊숙이 뿌리를 내렸기에 미세한 그 부분을 짚어내면 왜 혼란을 부추기느냐고 오히려 반문을 하는 사람을 만난다. 한꺼번에 고칠 수는 없지만 하나하나 고쳐서 평등한 세상을 만들어가야 할 것이다.
한국의 여성에게 가장 암흑기에 해당하는 조선시대는 성종 때 제정된 경국대전으로부터 비롯되는 가부장제의 그늘에 철저히 지배당한다. 조선시대를 지나면서 여성배제의 원칙은 보편화하여 그것을 진실로 착각하게 하였다. 특히 수많은 남성은 가부장제에 편승하여 무임승차의 이익을 누린다. 이에 여성들이여, 이 문제는 여성들이 해결하려는 의지를 가질 필요가 있다. 일부의 남성들은 혐오론을 내세우며 오히려 여성을 더 혐오할 것이기 때문이다.
조선시대에는 어떻게 여성을 배제하였는가? 유교적인 관습이 더욱 천착되는 시기인 17세기 이후 여성들을 배제하는 것은 극에 달한다.
그 이전 시대의 이이의 집안 재산을 나눈 ‘분재기’를 살펴보면 여성이건 남성이건 모두 재산을 물려받았음을 알 수 있다. 여남의 차별은 있으나 혹시 아들에게 재산이 많이 분배되면 딸이 소송을 제기해 이기기도 하였다. 땅과 노비를 상속받았고 이를 처분하여 재산권을 행사하였다. 호주도 아들만이 아니라 부인, 딸이 되기도 하였다.
조선시대 중 후기에 들어서면서 남성 중심의 가부장제가 다져지는데 특히 17세기 이후에는 장자가 제사를 독점하고 재산도 장자중심으로 배분되기에 이른다. 또한 이 시기 이후에 여성들은 유산분배에서 배제되며, 이혼 재혼의 경우에 차별을 받는 등 가부장제가 굳어지는 현상으로 나타난다. 이에 17세기에 활동하던 여성 성리학자 임윤지당은 이를 폐덕이라 말한 바 있다.
결국 여남 차별은 조선 후기에 들어 더욱 공고해진다. 특히 장남에 대한 집착이 시작되고 난 후에는 족보에 아들을 중심으로 올리기 시작하고 대를 이을 남자에 집착하였으며 여성을 신분 상승 욕구에 이용하며 여성을 억압하였다.
그리하여 사대부가 중요시하는 지극한 예를 차리기 시작한 유교는, 정작 허례허식으로 흐르고 군자의 도리는 남성위주로 왜곡되어 굳어지고 만다. 사설에 의하면 공자는 인육장조림 없이는 밥을 먹지 않았으며 여성을 차별하는 일인자였다. 조선시대에 그를 존경하는 유교는 당연히 여성을 무시하는 비 인권적인 행태를 강행하였다.
또한, 여성이 똑똑해질 것을 염려하여 양반가에서는 여성을 교육하지 않았고 삼종지도를 어거지로 실천할 수밖에 없는 환경까지 조성하였다. 이를 모르고 여성들은 순종을 미덕으로 여기며 집안에서 생활하며 가정을 이끌었다. 남성들은 바람을 피우고 관기와 어울리면서도 여성들의 외출을 막고 인권을 탄압하였다.
17세기 이후의 여성차별을 대략 정리하여 보면 ①여성에게 제사를 주관할 권한이 없어진다. 이전에는 아들 없이 죽은 부모의 제사를 딸이 상속했다. 즉, 양자로 대를 잇는 것이 제도화하지 않았다. ② 제주(부모 제사를 주관할 아들)가 아들 없이 죽었거나 그 아들이 매우 어릴 경우 제주의 아내, 곧 죽은 부모의 며느리가 제사를 주관했으나 이후에는 배제되었다.
이는 16세기에 성종이 편찬한 『경국대전』과도 다르게 변한 것이다. 경국대전에는 제사주관자를 아들-손자로 명시하였지만 관습은 아니었다. 이는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의 양란을 거치는 17세기 중반 이후부터 관습화되기 시작하였다. 전쟁에서 국가와 여성과 약자를 지키지 못한 사대부들은 여성과 약자를 집안에 가두어 지키고자 하는 이상한 제도를 만들어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