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시

최초의 인간, 최초의 인류

by 휘루 김신영

남성이 여성에 대해 쓴 것은 그대로 믿을 수 없다.

남성은 재판관이고 당사자이기 때문이다 -풀랭 드 라 바르


최초의 인간으로 '거룩한 어머니'라는 이름을 가진 ‘루시(Lucy)’는 인류의 시조다. 즉 인류가 루시에게서 비롯되었다는 것이다. 이는 여성이 없다면 자신의 존재가 없다는 의미와 같다. 루시를 무시하고 부정하는 것은 자신을 무시하고 부정하는 것이다.


그는 320만년전 아프리카 사람으로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아파렌시스, AL 288-1, 호모사피엔스로 불리며, 아파르 유적에서 발견되었다. 직립보행을 하고 1400cc의 뇌 용량을 가졌다. 1970년에 발견되었다. 그의 골반은 현생인류처럼 돌아가서 둥글게 왕관형태를 하여 두발로 걷기에 도움을 주고 있다.


모계사회는 흔히 원시시대의 소산으로 여겨지며 미개사회를 지칭하기도 한다. 그러나 모계사회를 유지하면서 평등을 실천하는 소수민족은 아직도 여럿 존재하고 있다. 나름대로 체계를 갖추었으며 성평등을 이루며 차별이 없는 세상이 대부분이다. 이들의 사회를 잘 살펴보면 대단히 미래적이라는 평가를 하는 사람이 많다. 우리의 사회가 지향해야 할 몇몇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


현대나 고대사회에서나 여성의 존재는 시대를 막론하고 신성하다. 인간 생명 하나하나에 소중한 의미가 담겨야 하는 이유다. 따라서 여성이 존중의 대상이 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지난 세월 동안 여성에 대한 차별이 세계와 우리 사회를 지배하였다. 이는 동양과 서양을 막론하고 벌어진 현상이다. 심지어 여성을 배려하는 순간, 오히려 배제가 되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발생하기도 한다. 더 정확히 말하면 배려한다고 하는 많은 것들은 여성을 배제하려는 의도를 숨기고 있는 경우가 많이 있다는 것이다.

수천 년 동안 여성은 존중은커녕 홀대를 받아왔으며 차별적인 수많은 상황을 감내해 왔다. 당연한 존중이 이제부터 시작될 수 있을지 지나간 차별의 흑역사를 살핀다. 이 사회의 근간을 짊어질 여성들에 대한 배려는 너무나 당연한 것이며 최고의 예의와 존중을 갖춰야 한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당연한 것이 오히려 배제가 되어 버리는 불평등과 불공정한 많은 제도와 사회구조와 언어불평등이 존재한다. 이는 반드시 개선되어야 한다.


대한민국은 2022년에 이르자 합계출산율이 0.78명으로 떨어져 세계 최저의 출산율을 경신하였다. 여성에 대한 배려를 최대의 존중으로 끌어올리지 않는 한 이 상황은 변하지 않을 것이다. 예를 들어 여성이 임신과 출산 또는 육아로 휴직을 하면 승급한다든가, 직급을 올린다든가 하는 것, 경력단절이 아니라 계승이며 후한 대접을 해줘야 한다.


이렇게 파격적인 대우가 아닌 한 여성은 경력단절을 불러오며 오히려 배제되는 현실을 직시하여 더욱 출산율은 떨어지고야 말 것이다. 이제 이 사회는 여성에 대한 최대의 존중과 예의를 갖추어야 한다. 사회가 여성을 무시하고 많은 불평등이 존재하는데 온갖 희생과 헌신이 필요한 임신과 출산과 육아가 어떻게 가능하며 어떻게 출산율이 높아지겠는가?


어머니의 이름은 헌신과 희생만 있는 것이 아니다. 지극한 사랑과 행복의 보급처요 안정된 생활의 기본이 된다. 어머니는 사람을 잉태한다. 생태적인 이 특성은 무시가 아니라 지극한 존중이 따라와야 한다. 따라서 여성은 그가 태어나는 순간부터 이미 어머니라는 거룩한 이름을 갖는 것이다. 사람을 낳는 것, 한 사람의 탄생이 여성으로 비롯되기 때문이다.


모계사회로 돌아가자는 말이 아니다. 모계사회처럼 어머니를 숭배하는 사회가 되는 것도 의미가 있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여성에 대한 차별이 아닌 존중의 태도를 갖추어야 한다는 의미다. 여성의 자주성은 물론 여성의 인간됨을 존중해야 하는 것이다.


‘존중(尊重)’이란 말은 높이어 귀중하게 대한 다는 뜻을 지닌다. 높이 여기고 귀하게 대하는 것, 그것은 함부로 하지 않는 것을 말한다. 우리의 경우 특히 조선시대에 여성의 의견은 무시되었다. 흔히 말하는 남존여비나 삼종지도 같은 것이 그 사회의 근간이었다.


<외모 왜뭐>(여성환경연대 기획, 2019)에서는 여성성 중에 가장 많이 소비되는 ‘소녀다움’에 대해 언급한다. 여성에게 기대되는 사회적 요구는 어리고 예쁘고 착하고, 적당히 성애화 되어 있으나 순종적이고 유아적이며 그래서 남성에게 위협이 되지 않는 존재로서의 여성을 가장 좋아한다고 말한다. 이러한 왜곡된 여성성은 여성이 스스로 자신의 모습을 끊임없이 타인의 시선으로 바라보게 하는 경향을 가진다.


미셀 푸코는 각 사람이 자신을 ‘하나의 예술 작품처럼 아름답게 꾸며야 한다’고 하면서 여성뿐만 아니라 남성에게도 요구된다 하였다. 이 존재의 미학은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를 스스로 살피고 그에 맞게 쾌락의 활용과 배분, 각자의 존재론적 질서를 만들어가는 인생을 말한다. 여성이나 남성이나 상관없이 사람이라면 자신의 존재에 대해 스스로 아름답게 꾸며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외모가 아닌 내면, 즉 존재를 가꾸어야 한다는 말로 자신과 세상에 대한 진정한 이해와 사랑이 싹트게 되는 기본이 된다.


어머니의 거룩한 수고는 인류사회를 이루는 근간이 되었다. 이를 간과해서는 안 된다. 여성을 약자로 보고 무시하거나 왜곡 내지 폄하하는 것은 구시대적 산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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