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녀사냥으로 본 인권

by 휘루 김신영

<마녀사냥으로 본 인권>


중세사회에서 알려진 바로 마녀사냥으로 화형 시킨 사람은 양성을 모두 합하여 6만여 명에 이르는데, 대부분 여성이 희생당하였다. 중세와 근대 초에 당시의 유래 없이 혹독하고 긴 겨울이 왔고, 그 겨울은 6월이 되어도 끝나지 않았다.


이에 사회는 혼란스럽고 흑사병, 전염병, 기아, 농민의 반란, 경제 위기, 그리고 전쟁까지 겹쳐 지도자들은 누군가에게 책임을 물어 사회와 경제를 안정시키고자 하였다. 이에 악마를 조작하여 그에게 모든 것을 뒤집어씌운다. 이른바 마녀칙령(Witch hunt)이다.


마녀들은 마귀의 주문을 이용해 겨울을 더 길게 했다고 자백하였다. 재판관은 이를 근거로 여성들에게 사형을 언도하고 화형을 집행한다. 고문은 혹독하여 거짓 자백이라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잠시라도 고문을 멈추게 하는 것이 소원일 정도였다.


자백에 의하면, 이들은 마귀의 언어로 선서를 하고, 추하고 꺼림칙한 마녀의 기예를 행하며, 아이들을 동물의 새끼처럼 죽이고, 농장의 씨앗과 나무의 열매를 망쳐버린다고 하였다.


종교재판관인 하인리히 크라머가 1487년 출간한 『마녀 망치』 에서는 타락한 신앙인이나 신심이 약한 사람을 찾아다니는데 그 때문에 마귀는 여성을 더 선호한다고 하며, 수많은 여성을 지목하였다.


1532년에는 카롤리나 형법이 독일에서 제정이 되는데 이는 누군가가 마술로 해를 끼쳤다는 것으로 그 사람이 이웃에 해를 입혔다면 사형에 처해야 하며 불로 태워버려야 한다고 했다.


1602년 앙리 보게는 불태워야 하는 여자 마녀가 1800만 명이라고 주장하였다. 심지어 마녀는 어느 곳에나 수천 명씩 존재한다고 하여 마구잡이식 체포가 가능하게 하였다.


이에 유럽 사회는 마녀를 제거하기 시작하였는데 의사 요한 바이어(Johann Wiyer)는 제거된 자들은 대부분 과부이며 혼자 사는 여성이었다고 밝혔다. 또한 돈 많은 과부가 주 표적이 되기도 하였는데 이는 그의 재산을 가로채기 위한 것이었다. 처형당한 자들은 늙고 가난하고 무식하며 힘없는 여성들이 대부분이었다.


16-17세기의 종교개혁의 시기에 일어난 이 같은 학살은 경제와 정치에 밀접하게 관련되어 돈 뜯어내려고 전 재산 몰수 형에 처하기 위한 방편으로 사용되기도 하였다. 유명한 백년전쟁을 승리로 이끈 프랑스의 영웅 잔 다르크도 마녀로 지목되어 처형당하였다.


프랑스에서는 국왕보다 인기가 높은 잔 다르크가 못마땅하였고 영국은 자신들을 실패자로 만든 잔 다르크를 제거하기를 원했다. 이에 이단의 죄목을 씌워 프랑스 국왕의 뒷돈을 받으며 영국의 부르고뉴 파가 잔 다르크의 신병을 인도받았다. 잔 다르크가 자신이 서명한 자백서에는 ‘이단 행위를 회개하며 다시는 정통된 신앙에 도전하지 않겠다.’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또한, 이 같은 일이 발생 시 ‘어떠한 벌도 달게 받겠다’고 하였다. 이때 문맹이었던 잔 다르크는 자신이 어떤 문서에 서명했는지도 전혀 알지 못했다고 한다. 결국 잔 다르크는 화형대에 올라갔다.


빅톨 위고의 소설『노트르담의 꼽추』는 마녀사냥과 관련하여 주교의 횡포를 그리고 있다. 에스메랄다와 콰지모도를 통해 ‘누가 괴물이고 누가 사람인가?’를 되묻는다.


단지 여성이라는 이유로, 힘없고 가난한 자들이라서 인권 탄압을 당한 예는 인류사에 수도 없이 등장한다. 그중 여성의 고통이 가장 크다 할 것이다. 세계의 마지막 식민지라 일컫는 여성의 인권은 아직도 갈길이 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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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로 화형 당하는 잔 다르크

“우리 교회는 유태인 차별, 과학 탄압, 이단 심문, 이민족 탄압, 그리고 마녀사냥 같은 인류에게 저지른 죄악에 수치심을 갖고 반성해야 합니다. 또한 마녀사냥 희생자들은 악마의 종이 아닌 무고한 피해자임을 인정합니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2000. 3. 5. <기억과 화해>)*



2000. 3. 5. 용서의 날(The day of Pardon Mass) 미사에 이어 3월 12일 국제신학위원회의 보고서 <기억과 화해:교회의 과거범죄>로 가톨릭교회가 저지른 과오를 발표한다. 대(對) 인류 사과의 이론적 바탕. 십자군 원정으로 인한 이교도의 학살과 각종 유물약탈, 종교재판과 마녀사냥, 여성에 대한 억압, 신대륙학살, 히틀러에 대한 동조와 유태인 학살묵인 등을 공식적으로 사과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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