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산사 구곡간장/김신영
낙산사 순례길을 걸으며
소리에 놀라지 않는 사자를 만나고 있었다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이 많은 곳에서
내내 울음을 멈추고
이 세상에 다녀간다는 것
그 물음에 답하기 위해
그렇게 걸어 낙산사 끝 구곡간장
심장이 참외 씨인 영혼을 헤집는 파도에 놀라
집이라도 집어삼킬 파도에 놀라
파도 끝에 몰린 포말에 정신을 팔았다
산다는 것, 그것은 어쩌면 포말처럼 내몰려
생에 거친 연민과 공포를 느끼는 것일까
인생은 수많은 두려움에 정신 팔리는 것일까
홍련암 바닥에 주저앉아 작은 창으로
깊고 거친 바다를, 손바닥만 한 바다를 본다
그 아래 낭떠러지 하늘에 맞닿아 한길 까마득
낙산사에 가면, 아직도 화마가 거친 바람에 울어
선겁게 파도를 타며 식어가고
연민과 두려움이 섞여 울부짖는 파도가
거친 파도를 타며 아직도 정신 팔린 채
낙산사 파도를 보고 이제 나를 잊는다
파도마다 거칠게 울부짖는 울음을 이제는 멈출 수 있을듯하다
바람처럼 그물에 걸리지 않고 걸을 수 있을 듯하다
소리에 놀라지 않고 잠들 수 있을 듯하다
문학청춘 2024 겨울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