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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이에스 Dec 08. 2021

영어가 뭐길래?

아이는 걷는 것도, 말하는 것도 빠른 편이었다. 특별히 푸시하지 않아도 아기 때부터 문자에 관심이 많았고 그래서 벽에 붙여놓은 알파벳도 두돌 쯤엔 손가락으로 짚으며 "이게 뭐야?"라고 묻곤 했다.

그러고 나면 알파벳을 보고 외운건지 읽고, 단어를 말하거나 노래를 부르기도 했다.

조금씩 말이 늘어갈 쯤 영어를 많이 노출하지는 않았지만 가끔 영어 원서를 읽어주고, 꼭 미디어를 봐야 한다면 영어를 보여줄까 하는 생각에 쉬운 영어 미디어를 활용하기도 했다.




두 돌이 지나고 세 살이 되어 어린이집에 처음 등원을 했고, 아기들이지만 재미 위주의 영어 활동을 하는데 다른 아이들은 아직 말도 못하는 시기에 어렵지 않게 컬러, 동물, 각종 사물들을 한글과 영어로 동시에 말하기에 "천재인가?"싶었다.

아마 모든 엄마들의 공통점이자 오류이겠지만 '내 아이가 정말 똑똑하고 천재같다는 생각은 한번씩 하지 않을까?' 생각하니 그리 부끄럽거나 민망하지는 않았다.



시키지 않아도 벽 그림을 보며 "green! yellow! red! blue~" 하며 엄마에게 가르쳐주듯 실력을 뽐내더니 세 돌 되기 조금 전부터는 "How do you feel?" 하며 조금은 어설프지만 책에서 본대로 엄마에게 묻곤 했다. 나는 속으로 '정말 책 읽어주는 보람이 있구나' 싶어 기뻐서 입이 씰룩거렸다. 나는 "I feel happy" 하며 아주 원초적인 답을 날렸다. 그러면 아이는 눈을 반짝이며 그 다음에 무언가 또 가르쳐 주기를 원했고 "영알못"엄마는 영어 그림책을 펴놓고 보면서 아이와 대화를 나누었다. 아무리 쉬운 영어라도 거의 말하고 살 일이 없었기에 3살 아이를 앉혀놓고 이야기를 하는데도 긴장이 될 때가 많았다. 내가 정말 제대로 말한 것이 맞는지 네이버에 검색을 하기도 했다.



4살이 되던 올해, 아이의 말하기는 거의 6-7살이 하는 듯한 "말대꾸" 가능할 만큼 우리말은 유창해졌다.  무렵 가정 어린이집을 다니던 아이를 어디를 보내야 하나 고민 하다가 영어유치원도 알아보기도 했고, 놀이학교를 알아보기도 했다. 하지만 '가정 어린이집에서 조차 한시도 가만히 있지 못하는 아이를 책상에 앉혀두고 영어만 사용하는 환경에 보낼  있을까? 하는 고민과 '놀이학교 같은 자유분방한 곳에서 놀이로 학습을 하다가 나중에 학교에 적응할  있을까?' 고민 하다가 자연을 느끼며   있는 규모가  있는 어린이집에 보내자는 생각으로 민간어린이집을 보내게 되었다.



사실, 우리집의 경제적 여유도 감안한 결과이긴 했다. 150-200만원을 들여 4 어린아이를 교육시킨다는 것이  부담이 되기도 했고 진짜"영알못"엄마의 자신감 부재 때문이기도 했다.

내가 과연 큰 돈을 들여 영유에 보냈는데 숙제도 못봐주고 알아듣지도 못하면 어쩌지? 하는 마음도 컸다.

그래서 아이 엄마들과 대화할때면 "영유는 무슨~ 아이는 놀아야지~"하며 내 속의 욕망을 억누른 채 마치 아이의 정서만을 생각하는 엄마처럼 쿨한 척 했다. 사실 아이가 영어를 잘하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에 이런 발언을 할 때 나는 더 과장되게 말하며 내 감정을 숨기곤 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어린이집 옮긴 것에 만족하게 되었는데 아이는 정말 자연 속에서 뛰놀며 생각보다 많은 것을 느끼고 배우며 커나갔고 엄마인 내가 노력하는 부분도 있지만 스스로 확장을 많이 해나갔다. 봄에는 화분에 씨를 뿌리고 어린이집 밭에는 모종을 심으며 텃밭 체험을 하고, 여름에는 무럭무럭 자란 옥수수나 블루베리를 직접 수확해서 먹어보고, 초 가을에는 직접 심었던 고구마나 감자, 땅콩을 캐보고 집에도 가져오곤 했다. 아이는 점점 자연과 함께 커나갔다. 마침 어린이집에서 하는 영어 특별 활동이 꽤나 유명한 출판사의 책으로 이루어졌고 그 때부터 아이가 하는 영어 한마디나 노래를 듣다보면 활동 후 책을 보내주는데 책의 내용과 아이가 나에게 말하던 영어 문장과 너무 일치했기에 아이가 확실히 즐겁게 배우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물들어올 때 노라도 저어보자'며 뭐라도 해주고 싶은 마음에 "영어키즈카페"를 보내게 되었다.



영어키카?그런 곳도 있더군요

영어유치원 만큼은 아니더라도 일시불로 결재하기 꽤나 큰 금액을 들여 월, 수, 금 일주일에 3번 영어 키즈 카페에 보냈다. 체험 수업 후 부담스러워 그냥 돌아 왔는데 아이가 계속해서 그 키즈카페에 또 가고 싶다고 떼를 써서 남편에게 컨펌을 받고 카드를 긁었다. 하지만 하루하루 보낼수록 '왜 등록했을까?'생각하는 날들이 늘어갔다.

아이를 들여보내고 나면 한 시간 후 아이를 데리러 가는데 늘 돌아오는 피드백은 "잘 놀았어요" 였다.

맞다. 내가 잊고 있었던 한 가지 사실은 영어 학원이 아니라 영어 키즈카페에 보냈다는 것.

사실 아이가 아웃풋이 터지거나 말거나 그저 잘 놀고 오면 책임소재가 불분명한 기관이라는 점을 간과하고 있었던 것이다.



또 한가지 불편했던 사실은 아이가 영어로 말을 하려고 하는지, 알아듣고 활동은 하는지, 아이들과 잘 어울려 노는지 궁금한데 '키즈카페'한 업태는 크게 피드백의 의무가 없다는 사실에 '아 내가 또 호갱이 되었구나' 생각했고, 영.알.못 엄마인 나, 한국인 선생님에게 피드백을 받고 싶은데 그 조차도 뜻대로 잘 되지 않았다. 원어민 선생님이 아이를 내보내며 이야기를 하니 알아들을 수가 없어서 "ok~thankyou"하고는 슬쩍 "서율~ 가자~"하며 주변의 엄마들이 피드백 받는 것을 보며 모기만한 목소리로 "where's your shose?"하며 평소에 쓰지도 않는 유아 영어로 아이에게 신발을 찾아 신고 나오라며 이야기 하곤 재빨리 엘리베이터를 타고 건물을 빠져나왔다.

대부분 영어 유치원에서 하원한 아이들이  시간 정도 놀며 원어민과 대화할 기회의 장을 마련해 주는 곳인  같았고, 아이들 가방을 메고있는 엄마들 사이에서 "어린이집"가방을 메고 있는 엄마를 찾을  없었다



아니, 당신은 뭔데 영어로 말을 걸어!

갈 때마다 마주치는 외국인 남자가 있었다. 그는 엄마들과 유창하게 수다를 떨며 먼저 아는척을 하거나 대화를 주도했다. 나는 이상하게도 눈이 마주칠까 두려웠고 아니나 다를까 하루는 가까이 걸어와 뭐하고 말을 시켰는데 “당신 아이는 몇 살이냐고, 귀엽다.” 정도 였지만 갑자기 심장이 미친듯이 뛰었다.


‘알아듣는게 문제가 아니라 말이 안터지는데 왜 말을 걸어!, 아니 예의 없는 외국인이네!! 여기 한국이라고! 왜 당연하게 영어로 말을 시키니?’(마음의 소리…)

가기 싫은 이유가 그 때문이기도 했다. 매번 만난다는 것.

 ‘한국인과 외국인이 결혼을 해도 한국에 살면 영어는 코스구나.!’ 싶은 생각이 스치며 웃음이 나온다.



 


자존심이 상해!

그 안에서 즐거워만 하고 있을  같았던 아이도 나오면 떼를 쓰거나 화를 내거나 행동이 과격해지는 날들도 많아져서 아이에게 물어보았다.


- 서율아, 혹시 재미없어?

- 응

- 왜 재미가 없을까?

- 몰라

- 혹시 영어로 말을 못해서 불편해?

- ...........

- 엄마한테 왜 자꾸 화를 내는 거야?

- 아니야!!! (버럭)


어느 날, 아가씨에게 전화를 걸었다. 아가씨는 유학파 출신이고 현재 유아 창의 미술을 가르치는 아뜰리에를 운영중인데 국제학교 주변에 있어 영어로 수업을 하는 경우도 있다고 했다. 아가씨는 서율이가 영어를  하는 아이들 사이에서 혼자만 영어를 사용하지 못하는 것이 "자존심" 상할텐데, 아직 어리기에 자존심 상하는 감정이 정확이 무엇인지 모르고 엄마에개 표현할 길이 없어 "화를 내는 " 같다는 말을 들었다.

갑자기 눈물이 핑 돌았다. '내가 뭐한다고 어린 아이를 그 곳에 보내서 스스로도 캐치하지 못하는 "감정"을 느끼게 했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 앞으로 어찌하면 좋을지 생각을 했다.

아직도 바우처가 50시간이나 남아있는 상태였기에 50번은 더 갈 수 있는 정도의 금액이 남아있었고, 환불도 이용권 승계도 되지 않았다.



아이에게 다시 가고싶은지 물었더니 "아니"라고 대답했다. 그래서 당분간은 데려가지 않았고, 하원하면 놀이터에 가거나 집으로 돌아와 함께 놀았다. 나 역시 크게 집에서도 영어를 푸시하지 않았다.

사실 내가 영어를 잘 하지 못하기에 매일 아이랑 꾸준하게 영어로 대화하거나 책을 읽어주는 대신 그저 한글 그림책을 읽어주며 놀았다. 몇 주가 흐르니 아이가 먼저 "영어학원 가고 싶어요"라고 말했다.

아이는 그 곳을 영어학원이라고 불렀다.



- 저번에 기분이 나쁘다고 해서 안가고 싶어할 것 같았는데.. 다시 가보고 싶어?

- 네, 심심해요 엄마

- 그럼 한번 더 가볼래?

- 네 오늘 갈래요~


나는 생각하다가 한국인 선생님을 호출 해 이야기를 나누어 봤다.


- 저.. 서율이가 사실은 아이들 속에서 영어를 하지 못해 자존심이 상했나봐요~


- 네 그럴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리고 서율이 같은 경우 단체 수업이 사실은 좀 어려워요~  튜터링(1:1 수업) 해보시는 건 어떨까요?


- 진작에 말씀해주시지 그러셨어요 그러면 그 때부터 튜터링으로 했을텐데…


- 대부분의 어머님들이 아이가 어릴 경우나 규칙 지키기 어려워하는 경우 먼저 1:1로 보내셔요~


- 네 그럼 그렇게 하겠습니다


결론은 여기에서도 우리 아이가 그룹으로 수업하는데 어려움이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고, 일단은 내 기분 상하는 것은 둘째 치고 아이가 그 속에서 얼마나 불편하고 마음이 복잡했을까 생각하니 마음이 아팠다. 그래서 남은 바우처를 소진할 때까지는 1:1로 수업을 하기로 했고, 아이는 선생님과 둘이서 하니 너무 재미있어하며 매일 하원하면 가고 싶어했다.



시간이 흐르고 어느덧 유치원 등록 시기가 다 되어가니 또 고민이 시작되었다. 또 영어 유치원이냐 일반 유치원이냐를 고민하다가 일반유치원에 등록을 했다. 다니던 어린이집을 그만 두는것이 자연 친화적 환경 면에서 많이 아쉬웠지만 과감하게 포기하고 유치원을 등록했는데 내가 심사숙고해 선택한 유치원에서 폭력 문제가 터져 많은 이들이 등록을 취소하는 일이 벌어졌다. 나 역시 그 소식을 듣고 문제가 있는 곳을 보낼 수는 없어 또 다시 영어 유치원에 전화를 돌리기 시작했다. 경제적 능력은 둘째 치고 영어유치원에 자리가 없었다. 사실 이 유치원에 다니면 연계된 영어 학원에 보낼 수 있어서 등록하려 했던건데, 나는 왜 영어에 집착하는가? 나는 왜 또 영유에 전화를 돌렸을까?


결국은 고민 끝에 현재 다니는 어린이집에 부탁해서 재원을 하기로 결정했다.



나는 생각에 빠졌다.

내가 왜 "영어"에 과하게 신경을 쓰고 있는가? 나는 왜 아이가 어릴 때는 노는거라고 말하면서 뒤로는 영어를 가르치고 싶어서 안달일까?



그것은 바로 "결핍"이었다.

자랑은 아니지만 나는 영어를 잘 못한다. 아니, 못한다는 말이 맞겠다. 내 아이는 언어를 타고난 것 같다고 생각했고 조금만 시키면 유창하게 잘 할 것 같다는 기대를 하고 있었고, 영어를 잘하면 빠르게 변하는 세상 속에서 더욱 폭 넓게 정보를 얻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나는 아이에게 기대를 걸어보려고 했던 것 같다. 아이는 그저 아직은 "재미"있어서 영어 키즈카페에 가고 싶어 하고 영어를 말하는게 "재미"있어서 엄마에게 자랑하려고 말하는 것인데 그것을 확대 해석하고 나에게 있는 결핍을 아이를 통해 채우려고 했던 것은 아닐까.



물론 아이가 정말 영어 유치원에 다니고 영어 학원에 다닌다면 단순 재미가 아니라 영어를 "잘"하는 아이가 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내 자신이 "교육관"에 대해서 주관이 없는 상태로 남들이 다 한다고 해서 따라가려다가 아이만 잡는건 아닌지 걱정이 되기 시작했고, 그렇다면 아직은 푸시하지 않는게 맞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를 임신했을 때 생각한 교육관은?

유아기에는 오감이 열려있기에 그 감각이 무뎌지기 전 뭐듬 몸으로 놀면서 알아가고 나뭇잎을 만지며, 밞으며 “바스락”거리는 소리를 느끼고, 사계절 변해가는 색을 탐색하며 엄마와 손잡고 거닐며 하늘을 보고 대화를 많이 나누는 것.

심플하게 ‘아이는 놀면서 배우는 것' 이었다.

아이와 함께 만들었던 나뭇잎 글씨
집콕하며 아이랑 했던 놀이



뭐든 할 아이라면 다 한다

조금 더 놀게 한다고 해서 큰일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알기에 조금 더 편하게 기관에 다니게 해도 되겠다는 생각으로 마무리 되었다.

아이는 5살이 채 되지 않았는데 한글을 제법 읽는다

처음에는 장난을 치나 했는데 뉴스를 보는데 자막을 읽고, 가끔은 영단어도 읽는다. 그리고 상황에 맞는 말도 잘 해서 가끔 엄마아빠 뒷목을 잡게 만든다.


우리는 그저 아이가 배우고 싶어하고, 궁금해 할 만한 것을 제공하고, 많이 보고 느끼게 해주고 오래도록 매일 밤 자기 전 끼고 앉아 책을 읽어줄 것이다.

그러다 보면 아이는 자연스럽게 세상을 알아갈 것이다. 나는 더불어 아이가 뭐든 궁금해할 때 잘 알려줄 수 있는 친구이자, 엄마이자, 선생님이 되어줄 것이다.



“우리 영어 유치원 보낼까?”

6살이 되는 해에는  말을 하지 않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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