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말 한마디로 가정의 평화가 산산조각 난 상황도 여러 번, 내가 이 한마디를 목구멍으로 다시 삼키지 못하고 입 밖으로 뱉어낸 날은 남편의 따가운 시선이 나를 향한다. 그냥 따가운 정도가 아니라 “경멸”에 가까운 눈빛이라고 나 스스로 생각할 만큼 남편에게는 엄청난 단어였나 보다. 그런 눈빛으로 나를 응시하며 남편은 나에게 한마디 한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나는 눈물이 차 올라 앞이 보이지 않는다. 그리곤 그냥 입을 닫아버린다.
그러다가 내가 왜 그런지(입을 닫는지) 묻지도 않고 눈치만 보는 남편에게 말을 잇는다.
“그럼 그냥, 그러게~ 좀 산만하긴 해~ 에구 당신 참 고생한다. 걱정되지?” 그 소리가 그렇게 힘드니? 그냥 비난하기보다는 애 안들을 때는 그냥 우리 끼리인데 공감이라도 한번 해주지, 니 자식한테 뭐라 하니 듣기 힘들지?"
내 안의 숨겨온 불만이 터져 나온다. 내가 아이를 두고 한 무시무시한 말의 무게를 나 스스로도 알기에 말을 뱉음과 동시에 후회를 하고 있던 나를 벼랑으로 몰아세운다.
물론 남편도 참다 참다 화를 냈다는 것을 알지만 그럴 때마다 나는 자책으로 나 스스로를 며칠이고 벌을 준다.
육아는 지금까지는 오롯이 내 몫이었기에 아이의 진짜 모습은 엄마인 내가 더 많이 봐왔을 터. 가끔씩 아이의 산만하다 못해 정신없는 행동을 지켜볼 때면 누군가가 심장을 움켜쥐는 것처럼 가슴이 답답해져 온다. 남편이 보는 모습은 그저 집에서, 가족이 함께 외출했을 때의 모습을 보는 게 전부 이기에 그 모습만을 보고 판단하고, 심각하다고 생각하지 않으며 ‘아이는 다 그렇다’ 생각하고 있는 것 같다. 물론 내가 예민하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남편의 생각이 맞을 수도 있겠지만, 내가 주 양육자로서 살펴본 아이의 모습에서는 많은 부분 문제가 발견된다.
여러 선생님들에게 아이의 활동을 두고 피드백을 받는다. 그중 가장 많은 이야기가 나오는 어린이집에서 받는 피드백은 이러하다.
-앉아서 밥을 먹지 못한다
-> 그럼 먹여주지 말고 시간이 지나면 치우라고 응답했다.
-쉼 없이 움직이고 부르거나 질문을 해도 대답을 잘하지 않는다
-> 아이를 직접 터치하거나 눈을 봐주시면서 질문을 하거나 지시를 해주시라고 부탁했다.
-활동할 때 자기 순서까지 기다리지 못한다
-> 집에서 따로 가르쳐보겠다고 응답했다.
-좋아하는 활동을 할 때는 집중을 잘 하지만 그 외 시간에는 하고 싶은 대로 행동한다
-> 그래도 장점이 아니냐고 생각했으나, 잘하고 좋아하는 것을 집중하는 것은 집중력이 아니며, 어렵고 힘든 일을 5-10분 정도 참아내고 수행하는 것을 집중력이라고 한다. 집에서는 한 명이 무조건 아이 곁에서 떨어지지 않고 놀이를 할 때 5분-10분 정도 길게 놀이할 수 있도록 돕는 연습을 하고 있다.
-자는 시간에 아이들이 잠을 잘 수 없게 큰 소리로 떠든다.
-> 집에서 따로 가르쳐보겠다고 응답했다.
더 많지만 언제나 이런 피드백을 받는 건 엄마인 “나”
큰 잘못도 아닌 이런 문제들로 항상 작아진다. 나 역시 지금까지는 '아이들이 다 그렇지 뭐, 크면 나아지겠지.'
생각하며 5살이면 나아지겠지? 6살 되면 나아지겠지? 생각하며 버티고 있는 중이다.
하지만 찾아본 바에 의하면 전문가들은 “전혀 괜찮지 않다”라고 한다. 크면 나아진다는 의견에 "전혀 그렇지 않다"라고 말한다. 네다섯 살이라도 어느 정도의 선에서 규칙이나 생활수칙은 지킬 수 있어야 하며 그것이 주의력, 집중력을 키워주고 결국은 가장 중요한 자기 조절력으로 키워질 수 있다는 것이다.
남편의 생각 역시 '크면 괜찮을거야 너무 걱정하지 말자' 인 것을 잘 알지만, 나는 이제 더 이상 그렇게 생각하지 않으며, 전혀 괜찮지가 않다.
나는 아이가 상담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며 부모가 잡아주지 못하는 부분은 양육 상담도 필요하다고 생각했기에 그렇게도 내가 힘들다는 점을 어필했던 것인데, 남편은 그 마음을 알아주지 못하는 것 같다.
"그럼 내 자식 같이 욕하자는 거야?" 이렇게 나오는 남편과 더 이상 대화가 되지 않아 늘 "그만두자"로 끝나는 우리의 날 선 대화.
아이를 많이 봐온 친구들은 "그래도 서율이는 똑똑하잖아~ 난 부럽던데."라고 말하며 나를 위로하곤 한다.
"차라리 똑똑한 게 낫지~ 행동이 크고 산만한 건 크면 좋아질거야~." 대부분 남편처럼 생각하는 것 같다.
소음이 크거나 사람이 많은 곳에 갔을 때, 아이의 산만함이나 돌발행동은 더욱 심해진다. 아이는 시각적 청각적 자극에 예민한 것으로 보이는데 그래서 탐색하고 많이 움직이는 것이 “호기심 많아서 그런 것”으로 긍정적으로 보이기도 하고 그저 "산만하고 정신없는 아이"로 보이기도 하는 것이다.
며칠 전에도 역시 하원하고 만나면 놀이터든 인도든 기분 내키는 대로 눕거나 엎드려 기어 다니고, 슈퍼에 가면 이것저것 닥치는 대로 만지며 잠시 한눈 판 사이 유리병에 들어있는 음료를 쌓고 있었다. 매일은 아니지만 그럴 때마다 그 자리에서 조용히 주의를 주고는 빨리 그 장소를 빠져나오려 하지만 탐색이 끝나지 않은 상태로 나오기 싫었는지 떼를 쓰고 내 손에 이끌려 나오다가 화가 나니까 매대에 진열되어 있던 바나나를 집어던지며 화풀이를 했다. 일주일에도 한두 번 이런 실랑이를 하거나 아무리 좋게 타이르고 가르쳐보아도 좋아졌다 싶으면 또 되풀이되는 일상에 너무 지쳐버렸다.
이 중에서 8개 이상이면 유아 ADHD 가능성이 높다고 하길래 체크해보니 9-10개는 되는 것 같다. 아이와 함께 하며 가장 힘든 점은 '항상 몸을 움직이며 가만히 있지 못하는 모습을 보고 있어야 할 때'인데, 아이의 아빠를 포함한 대부분의 부모는 '아이들이 다 그렇지 뭐...' 라고 생각하며 덤덤하게 생각하는 것 같다. 나는 '예민하고 불안한 엄마'라서 아이의 어떤 모습이 '문제'로 인식되는 순간 '불안 회로'가 작동해 나를 끝없는 불안의 나락으로 끌고 가는 것 같다.
지금까지 이런 나의 모습을 스스로 자각하게 된 것도 책을 많이 읽어서 그런 것 같은데 그나마 다행이다. 보통 '화가 나는 감정'은 '불안'에서 시작된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아이의 산만한 모습을 본다 -> '쟤가 왜 저러지?' 생각한다 -> '과연 잘 클 수 있을까?' 아이의 미래가 걱정된다 -> 더 문제가 많은 미래를 상상한다 -> "야!!!! 가만히 좀 있어!!!!!" 화를 내고야 만다.
하지만 아이는 엄마가 왜 화가 났는지 모른다. 그저 하고 싶은 대로 느끼는 대로 행동했고, 말했을 뿐인데 엄마는 항상 화가 나있고 '자신' 때문에 행복하지 않아 보인다. 아이는 우울하고 속상하다. 그래서 자기만의 공간으로 들어가 엄마의 기분이 나아지기를 기다리거나 자신의 마음을 숨긴다. 내가 화가 나있거나 표정이 안 좋아지면 자신의 텐트 속으로 들어가 커튼을 내리고 숨죽이고 기다리고 있다.
아이는 일부러 엄마를 힘들게 하고 싶다는 어떤 의도가 있는 것이 아니다. 그저 느끼고 세상을 향한 호기심으로 탐색하고 엄마의 시선을 자신에게, 아빠의 시선을 자신에게 돌리기 위해 더욱더 소란스럽게 집안을 활개 치고 다니는 것이다.
간절하게 원했고 그래서 더 귀하게 얻은 아이를 곁에 두고 항상 나의 시선이 머무는 곳에는 아이가 아닌 다른 것이 있었다.
집안일이 많다는 이유로 늘 주방에 서있었고, 세상에 뒤처지지 않겠다며 핸드폰을 향해 있던 나의 두 눈.
이제 생각해보니 아이는 불안했고 외로웠던 것 같다. 그 누구보다 사랑받기를 더욱더 원하고 관심을 필요로 하는 작고 어린아이.
아이와 내가 단 둘이서 있는 시간이 절대적으로 많은 요즘 시대에서 육아를 한다는 것이, 돌봐주는 이 하나 없이 혼자서 아이를 돌본다는 것이 얼마나 힘들고 외로운 일인지 나는 나 스스로를 인정해주지 않았고 그저 잘 해내야 한다고, 아이를 “잘” 키우는 것은 “내 몫”이라고 생각하며 가르치고->기대하고->평가한 뒤->실망하고->불안해 하다가->자책하거나 화를 냈다.
나의 불안은 어찌보면 너무나 당연했다. 나의 모든 것인 나의 아이가 계속 문제 행동(엄마 기준)을 하거나 주변애서 부정적인 평가를 받는 것은 어쩌면 “나”자신이 평가받는 것과 같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우리 사회의 분위기 상 아직까지도 “아이의 문제”는 곧 “부모의 양육 태도”와 연결되고 평가되기 때문이다.
며칠 전 아이의 행동을 두고 아이 앞에서 한 나의 “말” 때문에 남편에게 한소리를 들었다.
내가 뭐라고 할까 봐 한껏 단어를 고르고 조심하며 참다가 건넨 말이었다.
“애 앞에서 이상하다, 정상 아니다 이런 말 좀 하지 말자, 그럼 우리 애가 그런 애 밖에 더 되겠어?”
여기에서 또 한 번 나는 화를 냈다. 남편의 말이 틀린 게 아니었기 때문에 사실 반박할 말도 없었다.
나는 그런 말을 한 기억이 없었다.
심각한 문제라는 생각에 머리가 하얘졌고, 또 눈물이 줄줄 흘러내렸다. 아마 후회와 자책의 눈물이었겠지.
남편이 퇴근해서 오면 내가 고생한 스토리를 자꾸 아이 앞에서 털어놓게 된다. 그러면 안 되는 줄 알면서 말이다.
“내가 정상이 아니네! 심리상담이라도 받을게 그럼.”
쓸데없는 자존심에 이런 말이 불쑥 튀어나왔다.
남편은 정말 어이가 없다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본다.
나는 그 자리를 피해 아이가 잠든 이불속으로 들어가 아이를 바라보다가 잠이 들었다.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남편이 한 말은 100% 옳은 말이다. 다만 여기에서 나에 대한 “공감”한 줄이 빠졌지만 나 역시 남편의 말에는 청개구리처럼 늘 반대로 이상한 말만 늘어놓기에 나만 요구하기엔 욕심인 것 같다. 그다음 날 또 책을 읽다가 생각을 정리해 본다.
나는 왜 이렇게 성난 고슴도치처럼 가시를 세우고 있을까? 가장 사랑하는 가족과 함께하며 늘 날 선 비난과 말이 오가고 나면 모두가 힘든 시간인데..
이 글을 써 내려간 처음에는 몰랐던 나의 감정과 나의 불안에 대해 정리가 된다. 물론 글 한번 썼다고 모든 게 좋아지지 않겠지만 아이를 위해, 남편을 위해, 그리고 가장 중요한 “나”를 위해 노력해야겠다.
아이의 산만함도, 나의 불안도 결국은 하나의 숙제라는 것을 알았으니 집안일이나 일은 잠시 밀어 두고 아이에게 집중해야겠다. 할 수 있는 것은 이렇게 작고 쉬운 일이었는데 힘들고 지친다는 이유로 늘 아이에게 “기다림”을 요구했다.
아이에게 조금 더 적극적으로 관심과 사랑을 보여주어야 겠다.
“엄마~~ 엄마~~~~!” 부르면
“응~~ 잠깐만~~~ 기다려~~” 하고 잊는 엄마가 아니라
“응 아가, 엄마 불렀어?” 해줘야겠다.
물을 많이 주면 썩거나 병드는 식물도 있지만 물을 매일 줘도 잘 자라고 더 줘야 하는 식물도 있는 것처럼,
지금껏 많은 관심과 사랑을 줬어도 더 많은 관심이 필요할 수 도 있었던 우리 아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