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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이에스 Dec 01. 2021

아이와의 주말은 언제나

“네가 오후 네시에 온다면 나는 세시부터 행복해질 거야”


이런 구절이 떠오른다.

나는 아이가 하원 하기 한 시간 전부터 가슴이 두근거린다. 설렘인지 걱정인지 알 수 없는 그 마음에 살짝 머리가 띵 할 만큼 이따금씩 아득한 느낌이 들기도 한다. 나는 비정상이 아닐까 생각한 적도 있다.

6시간이나 떨어져 있다가 만나는데 왜 설렘이 아니라 걱정이나 두려움 따위가 느껴지는 것일까.

‘나는 과연 엄마 자격이 있는 사람일까?’라는 생각을 한 것이 아이러니하게도 하원 버스에서 내리며 엄마에게 뛰어내려 안기는 아이를 품에 안고 세상 행복한 미소를 짓는다. 나는 이상한 엄마다.


‘왜 아이랑 함께하는 시간이 행복과 불안의 감정이 수시로 섞이는 것일까?’ 내가 이상한 엄마가 아니라는 해명을 위해서 한 번쯤 생각해야 했다.



나와 아이는 기질적으로 완벽한 궁합은 아니다. 물론 궁합이 잘 맞는 엄마와 아이가 드물 것이다. 나는 무엇이든 가만히 앉아서 하길 좋아한다. 당연히 액티브한 활동을 좋아하지 않는다. 나는 책 읽는 것을 좋아하고, 쉴 때는 몇 시간이고 드라마를 보기도 좋아하고, 그런 시간이 꼭 필요한 사람이다. 그다지 여행을 좋아하지도 않지만 막상 여행을 가면 좋긴 해도 한편으로는 ‘아.. 집에 있고 싶다.’ 생각하는 집순이 기질을 타고났다.



하지만 우리 아이는 무척이나 활동적이고 모험가 기질을 타고났다. 호기심이 많고,  말할 때도 먹을 때도 무엇을 하든 아주 좋아하는 활동이 아니라면 대부분은 한시도 가만히 있지 않는 편이며 네 살이라는 나이에 비해 체력 값이 매우 좋고, 어지간하면 지치는 법이 없는 아이다. 그래서 새로운 곳에 가면 흥분하고 익숙한 곳에 가면 지루해 하기도 한다.

어른들이 ‘애들이 가만히 있으면 그건 아픈 거다.’라고 할 만큼 대부분의 아이들은 활동적이다. 하지만 그래도 평균으로 봤을 때 우리 아이는 상위 레벨에 속한다.

그런 활동적인 성향의 아이와 주말을 보낸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금요일이 되면 주말에 무엇을 하며 보내야 할지 미리 생각을 해둔다. SNS에서 핫하다는 곳, 아이랑 갈만한 곳을 늘 검색하며 북마크를 해두고 하나씩 하나씩 가보는 중이다. 주변을 비롯해 내가 사는 충남 지역의 숲 놀이터는 안 가본 곳이 없을 정도. 코로나 때문이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야외에서 실컷 뛰어놀고 에너지를 발산할 수 있는 곳으로 장소를 선택한다. 엄마 아빠의 취향이 반영된 곳은 언제 가보았는지 기억이 희미하다.



지난주 토요일 우리는 숲 놀이터 한 곳을 고르고 이른 점심식사를 집에서 해결한 후 분주하게 준비한 후 출발했다. 세종의 작은 숲 놀이터였는데 UFO 모양의 놀이기구가 인상적이었고 근처에서 볼 수 없는 풍경에 이끌려 가게 되었다기엔 꽤나 먼, 차로 한 시간 이상의 거리였지만 그래도 '우리 아이를 위한 건데 재미있는 곳에 다녀오자.' 하는 마음으로 아점을 먹고 출발했다.



식사를 하느라 우리는 조금 늦었지만 그래도 도착하면 한 시간 반~두 시간은 놀 수 있겠다는 계획으로 기분 좋게 차 안에 흘러나오는 노래를 부르며 출발했다.

출발하자마자 쉬 마렵다, 목마르다, 불편하다 삼종세트로 짜증을 내며 시작부터 삐그덕 거렸고 조금만 참고 가자며 아이를 달랬다. 낮잠시간에 계획적으로 나온 거라 '가면서 잠들면 딱이야!! 굿 컨디션으로 놀겠지?' 하는 기대로 짜증을 삼키며 아이가 잘 수 있도록 곁에서 토닥거렸지만 예상에도 없던 낮잠 패스!



도착할 때쯤 남편이 운전을 하며 길이 이상하다며 온 길을 돌고 또 돌았다. 속으로 짜증이 났지만 운전하느라 애쓰는 남편을 생각해 "네비가 시키는 대로 가면 되지~ 잘 찾아보자." 하며 그저 잘 찾아가려니 하고 아이 케어에 신경을 몰두했지만 점점 시간은 지나고 출발한 지 한 시간 반이 되도록 도착하지 못하는 상태로 아이는 졸려서 짜증이 났는지 "도대체 언제 도착해~ 여기가 어디야 ~" 무한반복을 시작했다.

이제 슬슬 겨울의 시작인지라 3시 반이 넘으면 꽤나 쌀쌀해서 낮잠을 재우고 나서 놀게 할 수도 없는 상황에다가 길은 못 찾고, 아이는 짜증을 내고 나도 슬슬 화가 나려는 그때 남편이 가까스로 길을 찾아 주차를 했다.

아이는 신이 나서 내렸고 바로 엄마 아빠는 오든지 말든지 눈에 보이는 대로 발길이 이끄는 대로 뛰기 시작했다. 시간은 두시 반을 향해 가고 있었고 바깥공기는 제법 차가웠다.


오르막이 나오자 안으라던 아이.


언덕을 올라가 놀이터에 도착하니 꽤 많은 아이들이 놀고 있고 산 아래 위치한 놀이터에는 해도 없이 바람이 쌩 불고 그늘까지 내려앉아 꽤나 추웠다. 신나게 놀다 가면 그만인데 문제는 아이의 눈이 풀렸다는 것.

너무 졸린데 잠을 참아서 그런지 몽롱해 보이고 아이들 특유의 졸릴 때 표정으로 모래놀이를 시작했는데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가슴이 답답했지만 꾹 참아내며 지켜보고 있었다.

누가 있든 말든 아랑곳하지 않고 모래를 손으로 퍼내서 옆으로 휙휙 뿌리며 모래놀이인데 놀이같이 않은 게 마치 퍼포먼스 같아 보였다. 주변의 아이 엄마들이 싫어할까 봐 내심 걱정이 되어 자꾸만 아이를 단속한다.



시작은 나쁘지 않았다


"재미있어서 그러는 건 알겠어, 하지만 다른 사람들한테 뿌리면 안 되는 거야"

"모래가 눈에 들어갈 수도 있으니 조금 살살 하는 건 어때?"

"모래놀이는 뿌리며 노는 게 아니라 여기 틀에 넣어서 모양을 만들고 노는 거야"



예상한 대로 아이는 대답도 하지 않은 채 놀이인지 퍼포먼스인지 구분이 안 가는 행동을 계속했다.

아이가 졸릴 때 나오는 행동이 있는데 밖에서 그러면 진짜 답이 없다. 통제라는 말이 좀 그렇지만 그 행동을 멈추게 하거나 주의를 주어도 절대 듣지 않기 때문이다.




남편도 내가 자꾸 아이에게 잔소리하는 것이 싫은 눈치다. 싸우기 싫어서 결국 나는 멀리 떨어져 남편이 아이를 따라다니는 것을 지켜볼 뿐이다.

그날 따라 아이가 하는 행동을 보니 또 슬슬 걱정스러운 마음과 쓸데없는 생각이 떠올라 잔소리를 했다. 주변의 아이들이 모래놀이를 하는 모습과 달라도 너무 다른 모습에 '진짜 왜 저렇게 노는 거지? 왜 얌전하게 앉아서 사부작 거리고 놀지 않고 왜 저러는 거야!'



사실 작은따옴표 속에 숨겨야 할 말이었는데 근처에 앉아 바라보며 아이가 듣고 있는데도 말을 해버렸다. 아이는 듣지 않고 하던 놀이를 계속하다가 놀이터 쪽으로 뛰어가 미끄럼틀을 무한 반복하며 내려왔고, 누워서 타고 엎드려 타고 그 모습조차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쟨 진짜 왜 저럴까?" 무한 반복하면서...


무한반복

모래놀이, 미끄럼틀, 마구 뛰어다니기 여러 번 반복한 후 아이의 옷이 심하게 지저분해져 도저히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어 이제 가자며 안으려는 순간 아이는 도망치듯 언덕 아래로 뛰어내려 갔다. 그렇게 언제나 밖에서 놀 때면 뭔가를 못하게 하려한다고 생각하는 아이는 손을 잡으려고 하면 도망치곤 했다. 제 나이에 맞지 않는 높은 언덕을 마구 뛰어내려가는 속도가 어찌나 빠른지 잡아주려고 얼른 따라 내려갔지만 이미 아이는 울음이 터졌고 무릎은 깨졌다. 졸려서 정신이 없는지 아니면 혼날까봐 그런건지 상처를 보지 말라며 화를 내고 짜증을 내고 더 크게 울기 시작했다.

참고 아이를 잘 돌봐주던 남편도 아이가 다친것을 보니 화가 나서 아이를 혼내기 시작했다.

"아빠가 조심해야 한다고 했지! 이제 놀러 나오지마!"

아이는 더 대성통곡을 하고 주변의 사람들의 시선이 주목되자 지금껏 화가 났던건 나인데 아이를 안고는 근처 벤치로 가서 앉아 아이 등을 쓸어주며 달랬다.


한참이 지난 후에야 아이는 울음을 그쳤고 그 때까지도 남편은 화가 났는지 얼굴이 굳어져 있고, 아이가 먼저 적막을 깨고 말을 한다.



-너무 신이 나서 그랬어요

-그래 엄마 아빠도 알고 있어, 하지만 너무 신난다고 해서 사람들을 불편하게 해도 안되고 위험한 행동을 해서도 안되는거야. 네가 다쳐서 속상하네..

-........

아이는 말을 하지 않은 채 눈물을 주르륵 흘렸다.

나는 아이를 안고 놀이터를 내려와 차에 탔다. 차에 타자 곧 스르르 카시트에서 잠이든다.





분명히 아이를 즐겁게 해주자고 간 놀이터였다. 톨게이트 요금까지 내고 간 평범하지 않은 놀이터...

언제나 아이를 위해 노력하는 것은 맞는데 마무리가 늘 이렇게 되어서 지치는 일이 잦다.

아이는 울고 엄마 아빠는 화가 나있고... 집에 돌아가는 차 안에서 우리 부부는 말이 없다.

그러다가 적막을 깨고 분위기 전환을 해보려 한 나의 말 한마디에 돌아돈 대답이 쌀쌀해 나 역시 기분이 좋지 않지만 마음을 좀 가다듬고 아이 이야기를 한다.

왜 이렇게 아이 키우기가 힘들까, 왜 원하는 대로 육아는 되지 않을까 ... 등등 우리 부부의 고충을 나누고 그래도 서로 잘 참았다고 격려하는 것으로 마무리를 한다.



집으로 돌아와 자고 일어난 아이와 또 2차 육아를 시작한다. 운전하느라 지친 남편은 잠이 들었고, 아이와 레고를 하고 그림을 그리고 잠시 아이가 잘 놀때 틈틈이 핸드폰도 들여다보며 쉬기도 한다.

저녁을 먹고 아이를 씻기고 책을 읽어주고 또 다시 저녁 루틴을 모두 한 아이를 재우고 나서야 11시에 우리 부부는 나란히 앉아 티비를 켜둔 채 낮에 아이 노는 모습을 찍은 사진을 공유하며 이야기를 나눈다.


- 고생했어, 힘들었지만 그래도 서율이 표정을 보니 재미있었나봐


- 응 당신도 고생했어. “우리 내일은 어디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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