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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이 보이지 않은 언택트(Untact) 시대를 지나며

by perezoso

"인생에서 중요한 일은 오로지 기억이 나는 일뿐이다. “


"진정한 삶이란 돈과는 멀어진 삶, 야망을 옆으로 제쳐놓는 삶, 어떻게 해서든 아름답게 살아가는 삶이다."

- 제임스 설터「쓰지 않으면 사라지는 것들」中에서

카페 아줄레주


두 달여간의 제주도 여행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왔던 게 7월 중순이었는데 벌써 완연한 가을이 되었다.

사실 여행 이전과 크게 달라진 건 없다. 제주를 막 떠나올 무렵 우리가 머물던 지역에서 확진자가 나왔다는 뉴스가 보도되었고, 그곳에서 자주 가던 마트가 확진자의 동선으로 확인되어 혹시나 하는 불안감으로 부모님들께 가려던 계획을 몇 주 미룬 일이 있었다. 몇몇 지역에 극심한 피해를 가져온 폭우가 지나갔고, 서울과 수도권 지역에서 바이러스의 재유행이 시작되어 다시 집에 콕 박혀서 지내다가 추석이 지난 후 확진자가 두 자릿수 정도로 유지되고 있는 상태이다. 이제 실내든 바깥이든 마스크를 쓰고 있는 건 당연한 매너가 되었다. 며칠 전에는 동네에서 산책을 하는데 지나가는 모든 사람들이 마치 복면을 쓰고 있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tv에서 관중이 가득한 예전의 스포츠 경기 장면이나 대형 공연 장면 같은 것을 보여주면, 언제 저런 때가 있었나 싶어 진다. 예외적인 상황이 길어지다 보니 이게 그냥 원래의 상황이었던 것처럼 생각되는 것이 더 놀랍다.

이 감염병은 정말 이상해서 가끔은 이성적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일종의 미신적인 생각을 갖게 하는 것 같다. 감추어진 것을 드러내고, 가면을 벗겨 민낯을 보도록 만드는 존재 같다고 해야 할까. 우리 시대의 최고의 권력이자 부러움의 대상이었던 미국이 보여주고 있는 행태들, 종교라는 탈을 쓴 이들이 보이는 극도의 이기심, 질병과 그 타격에 있어 사람들이 결코 평등하지 않음을 낱낱이 보여주고 있는 모든 상황들...

답답하고 희망이 없는 것처럼 생각되는 이런 분위기에 젖어갈수록 제주도에서의 시간들이 마치 꿈처럼, 더 아득하고 비현실적으로 느껴진다.


충분한 시간 동안 천천히 둘러보며 만난 제주는 이전과는 분명히 달랐다. 처음 가보는 곳들도 많았고, 예전에 조금씩 부분적으로 경험했던 장소들이 이번에는 서로서로 연결되는 것 같은 느낌이 들기도 했다. 당시에는 잘 몰랐지만 그동안 했던 건 겉핥기식의 여행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전에 알던 것보다도 제주는 훨씬 더 아름다웠고, 우리는 그 아름다움을 발견하고 음미할 수 있을 만큼의 여유가 있었다. 원래의 외국 여행 계획이 무산되어 이렇게 시간이 생기지 않았다면 이런 제주를 경험할 기회가 없었을지도 모르겠다.

앞으로의 시간에 대해 아직 결정한 것은 없다. 사실 여전히 갈팡질팡하고 있지만 제주에서 깊이 경험한 ‘느림’과 ‘아름다움’을 좇으며, 내가 좋아하는 것을 더 소중히 여기고 잘 가꾸며 지내야겠다고 다짐한다. 사진가 故 김영갑 님의 말처럼 ‘아름다움은 발견하는 자의 몫‘이니 말이다.

DSC03943.JPG 절물 자연휴양림

마지막으로 이 기록의 행위에 대해서도 적고 싶다. ‘글쓰기’는 내게, 비밀스럽게 간직하고 있는 오랜 짝사랑의 대상과도 같은 것이었다. 너무 소중하고 간절히 원하기도 하지만 감히 실현 가능성을 생각하기 어려운 것이었달까. 오랫동안 글을 쓰는 일에 대한 욕망을 가져왔고, 이런저런 방식으로 시도를 해보기도 했지만 제대로 끝마쳐본 적은 거의 없었다. 나의 능력치와는 별개로, 사랑하는 주제인 여행에 대한 글쓰기를 이렇게 마쳤다는 것 자체가 내게는 의미 깊은 일이다. 여행이 끝나면 금방 휘발되어 버리는 것 같은 느낌이 늘 아쉬웠다. 휙 낯선 곳으로 떠날 수 없어져버린 지금, 제주도에서의 시간과 그 이전의 여행들을 다시 떠올리고 기록하며 재경험하는 시간들은 꽤나 행복했다. 마치 ‘방구석 여행‘ 같았다고나 할까.


많은 사람들이 예상치 못한 변화와 어려움으로 신음하는 이 시대에 여행 이야기라니 사실 조심스럽다. 누군가에게는 팔자 좋고 철없는 이야기로 들릴 테고, 또 누군가에는 전혀 흥미를 끌지 못할 내용일 수도 있겠지만, 사진을 찍듯 포착하여 계속 간직하고 싶던 귀한 순간들과 그때의 마음을 남겨두고 싶어 이 글을 쓴다. 내가 다른 이들의 이야기에 깊이 영향을 받고 감응되었듯이, 누군가에게 이 글이 의미 있는 자극이 될 수 있다면 참으로 기쁘겠다.


최근에 읽었던 소설집에서 본, 장희원 소설가의 인상적인 글귀를 빌어 이 글을 마칠까 한다.

"모두가 자신의 세계를 의심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당신이 기쁨을 느끼는 곳이 옳다.

옳다.

그것은 누구도 뺏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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