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시간, 그리고 자유의 상관관계

by perezoso

성인이 되고 난 후 시간이 많다고 느꼈던 건 대학을 졸업한 후가 거의 처음이었다. 계속해서 앞으로 나갈 힘이 없는 상태라는 걸 스스로 잘 알고 있었기에 망설임은 없었다. 자발적인 휴식기를 갖기로 결정하고 같은 학과의 친구들과는 다른 길을 갔다. 1년간의 휴식 후 나는 충분히 회복되었다고 느꼈고 원래의 자리로 다시 돌아와 일을 시작했다.

최초의 일탈 이후 근로기(?)와 휴식기의 사이를 왔다 갔다 하면서 30대를 보내왔던 것 같다. 표준국어대사전을 찾아보니 ‘근로’란 ‘부지런히 일함’, ‘휴식’은 ‘하던 일을 멈추고 잠깐 쉼‘이라고 되어있다. 갑자기 조금 민망해진다. ’부지런히‘와 ’ 잠깐‘이라는 단어들 때문이다.

일을 하다가 휴식기로 접어들게 되는 이유는 다양했다. 틀에 박힌 생활이 지루하고 재미없어서, 직장이 돌아가는 방식이 형편없고 못 참겠어서, 여행을 너무 가고 싶어서, 모든 의무에서 벗어나 가볍고 자유로워지고 싶어서 기타 등등. 그렇다면 자발적으로 다시 일을 했던 건? 그게 당연히 돌아올 자리라고 믿었으니까. 돈은 늘 필요하고, 젊은 나이에 계속 노는 건 아무래도 떳떳지 않으니까. 직장생활을 열심히 하고 돈도 모으고 그렇게 지내는 게 정상적이고 바람직한 모습인 것 같으니까.

일을 다시 시작하고 나면 의욕적으로 열심히 해보려 애쓰는 초기 단계를 거쳐, 차츰 스트레스를 받고 겨우 현상 유지를 하다가 나중엔 언제 그만둘까를 고민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되곤 했다. 일 자체에 대한 회의나 스스로에 대한 부족감도 있었지만 가장 주된 것은 시간 사용에 있어 자유롭지 못하고 직장에 매여 있다는 느낌이었다. 돈과 내 시간을 맞바꾸고 있는 상태라는 생각을 자주 했다. 여기에서 ‘시간’을 ‘자유’로 바꾸어도 의미는 같다. 자유롭지 않다고 느끼다 보니 그 상태에서 벗어나고 싶은 생각이 수시로 드는 것이었다. 꾸준히 일을 하는 데에 필수적인 ‘참을성’이란 덕목이 내게 부족하다는 건 분명했지만, 왜 참아야 하는지 모르겠다는 근본적인 의문 또한 해결되지 않은 채 지속되었다.


휴식 기간에는 긴 여행을 자주 다녔고 이 시간들은 매번 나에게 좋은 것들을 주었다. 가보고 싶던 곳에 실제로 당도하여 두 발로 맘껏 걸어 다니며 새로운 세계에 대한 호기심과 기대로 가득한 생기 있는 나. 여행할 때의 그런 내 모습이 나는 가장 맘에 들었다. (누구에게나 당연한 이야기일지도 모르지만 꼭 그런 것 같지는 않다.)

여행을 꼭 가지 않더라도 24시간을 마음대로 쓸 수 있다는 자유의 감각은 나를 풍요롭게 해 주었다. 쉬고 있을 때면 내가 ‘부자’라고 자주 느꼈는데, 물론 사람들이 주로 쓰는 의미의 부자는 아니었다. 시간이 넘친다는 의미의 ‘부자’, 별 것 없이도 마음이 풍족하다는 의미에서의 ‘부자’였다. 날씨가 좋을 때면 언제든 밖으로 튀어나가 걸을 수 있고, 거실 소파에 누워 창문을 통해 햇살에 반짝이는 나뭇잎들을 한참 바라보며 빈둥대는 것만으로도 쉽게 행복감을 느꼈다. 백수 기간에는 소비가 많이 줄어들곤 했는데, 물론 돈을 벌지 않으니 당연한 것일 수도 있지만 그것만으로 설명이 다 되지는 않는 것 같았다. 다른 종류의 만족감이 지속되어 굳이 돈을 들여 뭔가를 사야 하는 필요가 줄어드는, 말하자면 자족적인 상태라고나 할까. 그렇지만 이 기간이 내 계획이나 예상보다 길어지면 슬금슬금 불안이 고개를 쳐드는 게 사실이었다. 놀고 있다는 사실에서 비롯되는 죄책감 비슷한 감정과 떳떳하지 않다는 느낌에서 완전히 자유롭기도 어려웠다. 구직에 성공해서 드디어 일을 시작하게 되면 일종의 안도감이 밀려오기도 했다. (그러나 곧...)

어떤 이는 이런 나의 상태를 부적응으로 간주하며 걱정했고, 다른 이는 팔자 좋다며 부러워했다. 나 스스로도 사실 이랬다 저랬다 했다. (지금도 크게 다르지는 않다.) 허울뿐인 안정감에 연연하지 않고 체제에 순응하지 않으며 스스로의 욕구를 좇는 용감한 사람으로 스스로를 추켜세우기도 했다가, 그저 힘든 걸 참지 못하고 아이처럼 즐거운 것만 하려 드는, 게으르고 부족한 인간으로 스스로에게 선고를 내리고 자신을 비난하기 일쑤였다.


성인의 삶에서 '일'이란 것의 의미는, 또 그 목적은 구체적으로 무엇일까. 삶에 있어 일이 차지하는 비중은 어느 정도가 적당할까. 이것이야말로 각자가 처해있는 상황이나 처지에 따라, 그리고 개인의 가치관에 따라 다를 수밖에 없을 것이다. 정답은 없다.

휴식보다는 노동이, 느긋한 게으름보다는 부지런한 생산성이, 충분한 여유 시간보다는 물질적인 풍족함이, 자유보다는 정착과 안정이 무조건 우선시 되는 사회. 나는 이런 사회에 살고 있는 건 아닐까? 어쨌든 나 자신의 행복을 위해서라도 이런 문화에는 왠지 대항하고 싶어 진다.


코로나 사태로 장기 외국여행의 계획이 무산된 지금, 나는 또 갈림길에 서 있다. 일종의 규율과 자유 사이, 스스로에게 의무로 부과한 것과 마음의 욕구를 따르는 것 사이, 돈 부자와 시간 부자 사이를 오가던 30대의 시간도 나쁘지 않았지만, 이제는 조금 다른 방식이어야 하지 않을까 고민하고 있는데 답이 쉽게 나오지는 않는다.

다만, 불혹의 나이에 맞게 남들 눈치 따위는 보지 말고, 괜한 비교도 하지 말고, 진짜 나의 우선순위와 가치관을 따르는 결정을 할 생각이다. 조금 더 과감하고 주도적인 미니멀리스트(minimalist)가 되어보고 싶다.



“미니멀리즘은 생활 방식의 선택이다. 미니멀리스트는 중요한 것을 위해 불필요한 것을 하나하나 없애기로 선택한다. 하지만 구체적인 적용 방식은 미니멀리즘을 실천하는 사람에게 달려 있다. 미니멀리스트는 물건이 아닌 인생 자체를 통해 행복을 추구한다. 때문에 무엇이 필요하고, 무엇이 불필요한지를 결정하는 것은 오로지 개인의 몫이다.”


“내 삶의 주도권은 내게 있다. 이것은 내 인생이고, 그 책임은 내게 있다. 내게는 원하는 일을 할 자유가 있다.”

“나를 행복하게 만드는 건 내 인생에서 중요한 것들이다. 그래서 될 수 있는 한 적은 일에만 온전히 시간을 들이려고 한다. 한 번에 한 가지 일에만, 시간을 들여 천천히, 과정을 음미하며, 중요한 것에 집중하려고 한다.” - <작은 생활을 권하다> 中에서

금오름
김녕 해수욕장에서 만난 고요한 일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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