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선 세계에 마음을 여는 일

터키에 매혹되었던 시간들에 관하여

by perezoso

여행을 떠올릴 때 가장 마음에 드는 것은 ‘낯설다’는 그 느낌이다. 익숙하고 편해서 자극이 거의 없는 장소 혹은 방식에서 떠난다는 것. 아마도 내가 쉽게 지루함을 느끼는 사람이기 때문일 것이다.

나와 다르게 생긴 얼굴들을 만나고, 모르는 언어들로 가득한 소리를 듣고, 처음 보는 거리와 풍경 앞에 놓이는 일. 그것은 조금 긴장되고 불편하기도 하지만 살아있다는 느낌을 주는, 기분 좋은 자극이다.

올해, 장기간의 외국여행을 계획했을 때 가능하면 더 낯설고 이국적인 곳들, 짧은 휴가로는 가기 어려운 나라들에 실컷 가보려고 했었다. 중동과 중앙아시아의 이슬람 국가들, <나는 걷는다> 시리즈의 그 실크로드, 낙타가 있고 밤이면 수많은 별들이 쏟아진다는 사막, 광활함과 겨울의 오로라가 연상되는 아이슬란드, 러시아, 알래스카 같은 곳들, 닿을 수 없는 곳처럼 느껴지는 갈라파고스와 파타고니아 지역, 미 서부의 국립공원들... (이렇게 적고 있으니 마음이 또 쓰려온다.) 이런 곳들에 가면 나의 좁은 세계가 전부가 아님을, 내가 고심하게 되는 사소한 주제들은 그리 중요하지 않은 것들일 수도 있음을, 세상은 이렇게 넓고 다양하며 아름답다는 사실을 다시 확인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낯설고 새로운 세계를 접했을 때의 반응은 다양할 수 있다. 불편해지거나 경계심이 커질 수도 있고 오히려 재밌게 느껴지거나 더 나아가 매혹될 수도 있겠지. ‘매혹’이란 단어를 떠올리면 늘 터키가 떠오른다. 2013년에 떠난 터키 여행에서 나는 그곳에 정말 푹 빠져서 행복한 시간을 보냈었다. 다녀와서도 터키를 더 알고 싶다는 호기심과 애정으로 오르한 파묵의 책들을 열심히 찾아 읽기도 했었다.

여행 당시에는 한 달여의 시간 동안 이스탄불과 카파도키아, 페티예 이렇게 세 곳만을 천천히 둘러보았다.

모든 것이 신기했다. 제일 먼저 이스탄불에 반해버렸다. 처음 보는 모스크의 화려한 아름다움, 보스포루스 해협과 근사한 야경과 활기가 넘치는 사람들, 우르르 단체로 움직이면서 발을 씻고 사원에 들어가 함께 절을 하며 기도하던 남자들의 모습, 긴 역사를 거치면서 가톨릭 성당과 이슬람 사원으로 존재했고 그 흔적이 혼재되어 남아있던 하기아 소피아의 신비로움. (박물관으로 불렸던 이곳은 얼마 전 다시 이슬람 사원으로의 전환이 결정되었다는 뉴스가 전해져 놀라움을 주기도 했다.) 카파도키아에서 보는 기암괴석들은 내가 무슨 외계에 와 있는 것 같은 느낌을 불러일으켰다. 이슬람 문화의 영향 때문인지 여행자들이 볼 수 있는 터키인들은 남성이 압도적으로 많았는데, 그들은 가는 곳마다 서로 모여 있고 작은 의자에 앉아 서로 차를 마시고 낚시를 하고 처음 보는 여행자들을 자신의 집으로 초대했다. 가끔 과도하게 느껴지는 상황도 있었지만 이들은 외부인을 정말로 환대하는 사람들이었다.


하루는 식당에서 혼자 밥을 먹고 있는데 젊은 여성 두 명이 찾아와 같이 사진을 찍어도 되느냐고 요청을 해왔다. ‘잉? 설마 나를 무슨 연예인과 착각한 건 아니겠지?’

잠시 이런 착각에 빠지기도 했으나 이들은 그냥 한국 드라마를 너무 사랑하는 터키 여성들이었다. 한국 사람을 만났다는 것 자체가 무지 반갑고 기뻤던 모양이다. 이들은 처음 보는 나에게 본인을 위해 산 벽걸이용 그림 액자를 선물해주고 갔다. 한사코 사양해도 방법이 없었다. 나는 정말 어리둥절하고 황송한 심정이 되었다.

사원에 들어가기 전 발을 씻는 사람들
가는 곳마다 들어가 보게 되던, 아름다운 사원들
관광객들이 바글바글.
MyPhoto_1803.jpg 먼저 다가와 말을 걸던 터키 여성들
MyPhoto_2147.jpg 처음 본 내게 한국인이라는 이유로 선물을 주고 간 터키 여성들. 표정이 사랑스럽다.
블루 모스크
눈만 내놓은 채 걸어가는 여성들

계속 이런 친절함에 노출되었기 때문이었을까. 여행을 가도 주로 혼자 책을 읽거나 자신만의 시간을 갖는 편이었던 나는 터키에서 평소의 나답지 않은 행동을 꽤 했던 것 같다. 1주일 이상 머물던 이스탄불의 게스트하우스에서는 다른 여행자들과 같이 관광을 다니거나 테라스에 모여 함께 어울리며 시간을 보냈다. 게스트하우스에서 직원으로 일하는 스무 살의 터키 청년과 언니뻘이었던 일본인 여성과도 가까워져 서툰 영어로 서로 열심히 대화하고, 술을 마시며 개인적인 이야기도 털어놓고, 그들이 열심히 권하는 물담배를 생애 최초로 피워보기도 했다. 게스트하우스의 사장과도 자주 농담을 하며 친하게 지냈다. 숙소를 떠나 다음 여행지로 갈 때에는 오래 알던 사람들과 헤어지는 것처럼 너무 아쉽고 서운한 마음이 들어, 스스로도 놀라웠다.

카파도키아에서 머물던 때였다. 호텔 옥상에 있는 식당에서 조식을 먹고 있는데 옆 자리에 혼자 있던 터키인이 말을 걸어왔다. 어디에서 왔고 어느 곳을 여행하고 있는지, 원래는 무슨 일을 하는지, 터키의 어느 곳이 가장 좋았는지... 나는 처음 본 사람과 한참 동안을 즐겁게 대화하며 멋진 아침 시간을 가졌는데 지금 생각해면 스스로가 좀 낯설게 느껴진다. 우리는 서로의 즐거운 여행을 빌어주고 헤어졌다.

MyPhoto_1943.jpg 작은 의자에 앉아 차를 마시고 이야기하는 사람들
화려하기 그지없는 문양들
내 카메라를 향해 미소를 짓는 듯한 아저씨.
보트를 타고 보스포루스 해협을 건너기
데모하러 거리로 나온 열혈 시민들
머물던 게스트하우스의 루프탑 전경
카파도키아의 기암괴석
친절하고 또 수줍은 사람들
MyPhoto_2905.jpg 꽃을 선물하고는 돈을 요구해서 날 마음 아프게 했던 여자 아이.

지중해 근처의 페티예(Fethiye)에서는 우연히 만난 한국인 자매들과 한 방에서 묵으며 친하게 지냈었다. 생김새도, 스타일도 서로 많이 다른 자매였는데, 동생이 패러글라이딩을 무지하고 싶어 했지만 언니는 전혀 그럴 마음이 없었다. 이곳 페티예는 세계 3대 패러글라이딩 명소로 유명한 곳이었다. 동생이 도저히 혼자는 못하겠다며 나에게도 손을 뻗쳐 오기 시작했는데, 앞서 여러 번 언급했듯 나는 겁이 워낙 많거니와 위험한 액티비티 같은 것에는 조금도 관심이 없는 사람이다. 그런데 어린 대학생 친구가 그리 간절한 것을 보니, ‘까짓 거 같이 한번 해주지, 뭐‘ 이런 마음이 들었던 것이다. 지금 생각해도 신기하다. 어디에서 그런 용기가 나온 걸까?

그리하여 내 인생 처음이자 마지막 패러글라이딩 체험을 터키에서 하게 되었다. 초긴장 끝에 날아오른 하늘 위에서 내려다보이는 풍경은 근사했지만, 그걸 온전히 즐기기에는 나는 역시 너무 겁쟁이였다. 상공은 아무 소리도 나지 않을 정도로 고요했는데 그 때문인지 더 두려운 느낌이 들었고, 아래를 내려다보자 속이 울렁거렸다. 그래도 패러글라이딩을 이렇게 해보았다는 것이, 원래 나의 꿈이었거나 그랬던 건 아니지만 평소의 나와 달리 용감하게 이런 도전을 해봤다는 기분이, 꽤나 괜찮았다.

내 생애 처음이자 마지막 패러글라이딩^^
MyPhoto_2440.jpg 페티예의 어느 이슬람 사원

터키라는 낯선 세계에 대해 나는 경계를 풀고 마음을 온전히 열어젖혔다. 일부러 열어젖힌 것이 아니라 마음이 어느새 스르륵 열린 것이다. 평소 다소 방어적이고 외부와의 거리를 중시하는 나로서는 정말 신기한 경험이었고, 더 오래 있었다가는 그곳에서 연애를 했을지도 모르겠다고 친구들에게 농담을 하곤 했다.

터키에서의 시간은 기존에 가지고 있던 생각에도 영향을 미쳤다. 개인주의와 집단주의는 나의 오랜 관심사였다. 평소 한국의 집단주의적 문화나 분위기는 개인의 행복감이나 만족감을 떨어뜨린다고 굳게 믿는 편이었고, ‘개인’을 더 존중하는 문화가 더 진보된 형태라고 생각해왔다. 터키를 방문하기 전에 나는 아일랜드의 더블린에서 2주 정도 있었는데 두 곳은 잠시 머무는 여행자의 눈에도 정말 대조적이었다. 물론 아일랜드에도 pub 문화가 발달되어 있어 사람들이 함께 춤추고 술을 마시며 흥겹게 노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었지만 기본적으로 각각의 사람들은 독립적인 개인이었다. 낮에 혼자 벤치에 앉아있거나 홀로 식사를 하는 무표정한 사람들이 자주 보였고 여행자인 나에게 관심을 보이거나 신경을 쓰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사실 그런 익명성의 자유를 누리려고 여행을 가는 것 아니겠는가.) 터키는 그와는 완전히 반대였다. 사람들은 늘 무리 지어 있었다. 누구나 가족이나 친구에게 둘러싸여 있는 것 같았다. 함께 먹고 마시고 예배하는, 손님을 환대하고 외부인에 대해 지대한 관심을 보이는 사람들. 내가 만난 터키인들은 고립되어 있거나 차가워 보이지는 않았다. 늘 북적대고 모여 있는 그들은 왠지 더블린에서 보던 사람들보다 즐거워 보였던 것 같다. 물론 어디까지나, 잠시 머문 외부인의 시각이지만. 개인의 고유한 특성과 가치관이 존중받고 인정되는 것이 중요한 만큼이나 우리가 서로 연결되어 있고 혼자가 아니라고 느낄 수 있는 분위기도 행복감에 크게 기여한다는 것. 터키 여행은 내게 이런 통찰을 직접적으로 제공했다.


나는 지금도 이런 여행을 꿈꾼다. 내가 굳게 믿고 있는 고정관념에 균열을 낼 수 있는, 나를 강하게 사로잡고 매혹시킬 낯선 곳으로의 여행.

써놓고 보니 사랑에 대한 이야기의 다른 버전 같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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