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이란 것의 실체에 있어 ‘현실 도피‘의 요소는 꽤 크다는 것을 예전부터 알고 있었다. 회피 성향이 강한 내가 이토록 여행을 좋아하는 것만 봐도 그렇다.
외국으로 떠날 때면 공항에 도착하는 시점부터 현실과의 단절은 벌써 시작되는 것만 같다. 비행기가 이륙하여 굉음을 내며 상공으로 날아오르면 방금 전까지 내가 발 딛고 있던 곳은 점처럼 작아지고, 나는 그곳에서 완벽하게 도망친 것 같은 착각에 빠진다. 날 괴롭히던 그 모든 것들은 정말로 별 것 아닌 것처럼 느껴진다. 다시 돌아올 때쯤이면 어김없이 깨지는 환상이라 해도 이 느낌은 내게 소중했다.
심심할 게 안 봐도 뻔한 휴가를 앞두고, 끝내기도 지속하기도 애매한 미적지근한 관계를 어찌할 수 없을 때, 머리를 쥐어 뜯어봐도 도저히 답이 안 나오는 선택의 문제 앞에서 나는 자주 떠나고 싶었고, 실제로 그렇게 했다. 돌아와 보면 문제는 그대로 남아있을 때도 있었고, 여행 후의 내가 미세하게 달라져있어 고민도 조금 변하게 되는 경우도 있었지만, 어느 쪽이든 ‘정면 돌파’와는 다소 거리가 있는 방식이었다.
그렇다면 이번 제주 여행은, 그리고 원래의 계획이었던 세계여행은 무엇을 위한 것이었을까. 나는 어떤 현실로부터 도망가고 싶었던 걸까.
정해진 시간에 출근하고 또 퇴근하고, 평일에는 직장에 가고 주말에는 쉬면서 틈틈이 tv를 열심히 보는, 안온하지만 틀에 박힌 채 반복적으로 흘러가는 일상으로부터?
통장에 정기적으로 돈이 들어오고 쌓이기도 하지만 자극이나 즐거움은 점점 줄어들고 정체되어 있다는 느낌을 주던 나의 일로부터?
더 이상 아주 젊지도, 너무 늙어버린 것도 아닌 지금에도 여전히 끝나지 않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라는 고민으로부터?
이제 새로운 것은 찾기 어렵고 현재의 상태로 점점 더 고정이 되어버리는 일만 남은 것 같다는 공포로부터?
나는 별로 용감한 편도 아니면서 언젠가부터 다수가 따르는 방식이나 생각에 대해서는 다소 삐딱하고 회의적인 시선을 가져왔던 것 같다.
당연히 특정한 나이가 되면 짝을 만나 결혼을 하고 아이를 가져야 한다는 생각, 20-30대에 준비하고 획득한 지식 혹은 자격을 가지고 그 이후에는 그걸 써먹으면서 돈을 벌고 모으는 것이 성인의 삶이라는 이야기, 서울이나 수도권에 내 소유의 아파트 하나는 있어야 한다는 분위기, 돈은 매우 중요하고 잘 살아가는 일에 있어 필수적이므로 돈을 버는 활동에 시간의 대부분을 사용하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이 당연하다는 생각...
이런 생각들에 동의하지 않으면서 비슷한 모양으로 살아가는 것이 답답하고 싫었다. 아니, 동의하지 않지만 쉽게 영향을 받고 자주 흔들리는 게 싫었다는 말이 더 정확할지도 모르겠다. 인간의 성장이라는 것 자체가 ‘사회화’와 밀접하게 관련이 되는 과정이니, 사회 다수의 규범에 영향을 받고 그로부터 자유롭기 어려운 건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어쨌든 그동안이야 그렇다 쳐도, 마흔 이후에는 좀 다르게 살아야 할 것 같았다. 내 가치관에 맞게 생활을 디자인하고 좀 더 주도적으로 지내고 싶었다. 긴 여행을 그 시작점으로 삼고 싶었던 것 같다.
그러나 늘 현실과 이상의 괴리는 크고 나 같은 겁쟁이·몽상가에게는 특히 더 그렇다. 제주 여행 중에도 종종 상반되는 생각과 욕구들에 이리저리 흔들리고 있는 우스운 상태일 때가 많았다.
일에 대한 생각은 좀 놓고 느긋하게 생각하자고, 일단 여행과 아름다운 제주에만 충분히 집중하자고 다짐하면서 여유 있고 현실에 초연한 나의 모습을 기대했으나, 꿈에서는 전혀 다른 내 모습이 나오곤 했다. 일자리가 없어 직장을 구하지 못하고 동동거리는 꿈을 꾸다가 깨어나면, ‘이게 내 속마음이구나’ 싶어 웃음이 나왔다. 마음 한 편에 자리하고 있는 불안과 초조감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한라산이 잘 보이는 숙소에 묵을 때였다. 테라스에 앉아 산의 긴 윤곽을 오래 바라보며 멍 때리고, 열심히 날아다니는 제비들을 구경하는 일이 당시 나의 주된 일과였다. 참으로 평화로우면서 한가로운 풍경이었다. 쨍하고 내려쬐는 햇볕 때문인지 나른하면서 현실에서 뭔가 유리되어 있는 듯한 느낌을 한껏 즐기고 있는데, 마침 이때 울리는 문자 알림음. 동생에게서 온 연락이었다. 송도에 있는 아파트 청약에 대한 정보를 주면서 아빠가 언니에게도 알려주라고 했다는 그 메시지는 당시의 느긋한 풍경과 무드에는 너무 맞지 않는 내용이었다. 그러나 그날 저녁, 나는 역시 청약 홈 앱과 인터넷 카페를 열심히 뒤지면서 검색을 해보고 있었다. 아파트에 살고 싶어 하지도 않으면서, 마당이 있는 주택에서 사는 게 꿈이라고 늘 이야기하면서도 말이다.
‘이타미 준‘이라는 건축가의 유명한 건축물인 수풍석 박물관.
미리 예약을 해야만 관람이 가능하고 근사한 곳이라는 평이 자자해서 이번 여행에서 한껏 기대를 했던 곳 중 하나였다. 한 차례의 예약 변경 끝에 최고로 쾌청한 날씨에 관람을 할 수 있었다. 직접 가서야 알게 된 사실인데, 수풍석 박물관은 비오토피아 타운하우스가 있는 마을 안에 위치하고 있었다. 그래서 그곳 주민들의 허락 하에 하루에 2회(오전 1번, 오후 1번)만 방문이 가능한 상태였다. 관람시간이 충분히 길지는 않았고, 투어를 신청한 여러 사람들이 한꺼번에 버스를 타고-물론 마스크를 하고- 안내자의 인도를 따라 관람을 하는 방식이다 보니 아무래도 충분히 감상을 하기에는 제약이 있어 좀 아쉬웠다. 솔직히 이타미 준의 건축물보다 더 인상적이었던 건 그곳에 지어져 있는 개인주택들이었다. 산방산이 보이고 확 트여있는 전망, 외부와 분리되어 이렇게 조용하고 방해받지 않는 공간이라니... 정말 놀라웠고 부럽다는 마음이 마구 올라오기 시작했다.
‘돈이 좋긴 좋구나.’
‘얼마면 돼?’(드라마 <가을동화>에서의 원빈 version)
‘이러고 놀고 있을 때가 아니구나. 돈을 벌어야겠다, 아무래도.’
이상이 비오토피아에서 내 머릿속에 자동적으로 돌아가던 생각들이다. 참고로 나는 당시에 제주의 한 독립서점에서 산 ‘미니멀리즘’에 대한 책을 읽고 있던 중이었다. 줄을 열심히 그어가며 저자의 이야기에 깊이 동의하고 있었고, 생활의 규모를 줄이고 제일 중요한 것에만 집중해야겠다는 생각을 꽤나 진지하게 하고 있던 중이었음을 밝혀둔다.
늘 갈팡질팡, 왔다 갔다 하는 나는 ‘인간이 원래 이런 거지.’하며 쉽게 자신을 합리화하고, 이 부분에서 나와 조금 다른 종류의 인간인 남편은 옆에서 좀 힘들어하는 것 같다.
갑자기 이런 생각이 든다. 도피로서의 여행을 즐기는 나는 실은 너무 비겁자인 걸까. 실제로 자신의 인생을 바꿀 용기는 전혀 내지 못한 채, 진짜 위험을 감수하지는 않는 상태로 정해진 기간의 여행을 통해 색다른 기분과 새로운 자극, 변화된 것 같은 느낌만을 취하는 건 아닐까.
다년간의 경험자로서 여행이 주는 기분 전환이나 생기 회복, 당면한 문제로부터 조금 떨어져서 생각할 수 있게 해주는 효과에 대해서는 확실하게 보증할 수 있다. 당장 상황을 바꾸거나 문제로부터 벗어날 수 없는 사람들에게는 늘 강력하게 추천해주고 싶은 방법이 여행이다. 그렇지만 ‘여행을 떠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을 때가 있다. 더 근본적인 용기와 위험 감수가 필요한 때가. 지금 나는 그런 기로에 서 있는 게 아닌가 생각해본다. 어차피 코로나로 인해 익숙한 도피처가 사라져 버린 지금이야말로 적기일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