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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a Oct 18. 2020

양희은의 ‘엄마가 딸에게’

안녕 애들아!     


오늘은 여러분과 함께 노래 하나를 감상하려고 해요. 바로 가수 양희은의 ‘엄마가 딸에게’라는 노래입니다. 여러분들은 코미디언들이 흉내 내는 성대모사의 대상으로만 알 수도 있는데, ‘아침 이슬’, ‘상록수’와 같은 명곡을 부른 소위 국민 가수이지요. 그녀의 삶과 목소리의 깊이가 어떤 노래를 불러도 가슴을 울리는 힘을 주는 것 같아요. 이 노래는 퇴근길 라디오에서 우연히 듣게 되었어요. 그날도 학생들과 크고 작은 감정들을 주고받고 마음이 녹초가 된 상태에서 운전하고 있었는데, 우연히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이 노래를 듣고 완전히 몰입되었어요. 다 들은 후에는 알 수 없는 전율과 가슴 먹먹함에 퇴근길이 평소와 다르게 느껴졌죠. 많이 공감도 하면서요. 샘이랑 가사를 따라가면서 한번 이런저런 얘기를 해볼까요?


 

출처 - <엄마가 딸에게> 앨범 표지


    

크게 두 파트로 구성되어 있는데, 첫 번째 파트는 엄마의 노래로 시작해요.  

    

   난 잠시 눈을 붙인 줄만 알았는데

   벌써 늙어 있었고

   넌 항상 어린아이일 줄만 알았는데

   벌써 어른이 다 되었고

   난 삶에 대해 아직도 잘 모르기에

   너에게 해줄 말이 없지만

   네가 좀 더 행복해지기를 원하는 마음에

   내 가슴속을 뒤져 할 말을 찾지       


여러분이 무럭무럭 자란 만큼 엄마도 세월을 피할 수 없었네요. 점점 어른으로 변해가는 딸에게 해주고 싶은 말을 찾아 헤매고 있어요. 삶에 대해 아직도 잘 모르기에 너에게 해줄 말이 없다는 엄마의 말. 참 공감되는 것 같아요. 이게 모든 부모님들의 솔직한 심정일 거예요. 권위 있게 마치 다 아는 것 마냥 여러분 앞에서 말하지만 실은 확신이 거의 없어요. 삶은 진행될수록 분명하지 않은 것 투성이죠. 샘도 ‘나의 꼰대질이 어느 정도 합당할까’를 늘 고민하죠. 선생(先生)은 한자 그대로 보면 ‘먼저 태어난’ 사람에 불과하죠. 먼저 태어나 여러분보다 경험을 좀 더 많이 한 사람. 하지만 샘의 경험도 일반화할 수 있는 것도 아니기에 선생이라는 말은 가끔 거창하게 들리면서도, 딱 맞는 말이라는 생각을 하곤 해요. 여러분 부모님도 도대체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늘 고민할 게 분명해요. 결국 여러분의 ‘행복’을 바라며 ‘가슴’ 속을 뒤져 할 말을 찾아냅니다. 우리는 이 사실을 너무나도 잘 알죠. 나의 ‘행복’을 위한 말이고 ‘진심’이라는 것을.      


그리고 곡의 메인인 후렴구가 이렇게 진행돼요.      


   공부해라

   아냐 그건 너무 교과서야

   성실해라

   나도 그러지 못했잖아

   사랑해라

   아냐 그건 너무 어려워

   너의 삶을 살아라     


엄마의 첫 번째 잔소리(?)는 바로 ‘공부해라.’ 하지만 엄마도 이 말은 해서는 안 될 대표 잔소리임을 잘 알고 있어요. 이렇게 직접적인 말은 나쁜(?) 엄마의 전형임을 잘 알고 있죠. 대표적인 교과서 같은 말이죠. 그리고 우리나라 교육 현실에서 1등을 제외한 나머지 학생들은 이 말에 결국 좌절감을 느낄 수밖에 없죠. 1등만이 이 말에 부응해 부모님을 행복하게 해 줄 있어요. 부모님도 이런 현실을 잘 알고 있어요. 그래서 꺼낸 두 번째 말, 성실해라. 공부는 못해도 성실해야 한다는 말 참 많이 들었죠? 사실 학교 교육에서는 ‘공부해라’보다도 진리처럼 받드는 말씀인데, 이 말도 이내 넣어두네요. 그리고 어렵게 꺼낸 세 번째 조언, 사랑해라. 이 말은 우리가 흔히 듣는 ‘행복해라’보다 더 격한 감정에 대한 충고네요. 공부와 성공, 그리고 성실도 중요하지만, 결국 너의 행복, 사랑과 같은 ‘감정’에 충실하라는 말이 아닐까 싶어요. 사랑은 결국 인간이 궁극적으로 느끼고 싶은 감정이고, 감정에 충실한 삶에 있어 충분조건이니까요. 홍상수 감독의 영화 <풀잎들> 속 유명한 대사가 생각나네요. “사랑이 최고야. 나머지는 그게 안 돼서 하는 거야.” 샘이 참 좋아하는 대사예요. 그래서 학교에서 열심히 연애하고 있는 학생들을 보면, 샘이 학창 시절에 못해본 것을 하고 있어 부럽기도 하고, 또 기특하기도 해요. 사랑은 분명 인생에 있어 큰 배움의 효과가 있어요. 하지만 이내 사랑의 어려움을 생각하고 이 말도 주저해요. 사실 여기까지만 말해도 꽤 신세대(?) 엄마인데, 엄마는 결국 가장 하고 싶은 말을 찾아내요. “너의 삶을 살아라.” 엄마의 이런저런 잔소리가 마음을 요란하게 하다가 결국 수렴하게 되는 조언. 처음 이 가사 부분을 들었을 때 마음이 쿵하고 내려앉은 느낌을 잊을 수가 없네요. 공감이 많이 됐고, 감사한 마음이 들었어요.      


출처 - <엄마가 딸에게> 뮤직비디오 중에서


2절은 딸의 노래예요.      


   난 한참 세상 살았는 줄만 알았는데

   아직 열다섯이고

   난 항상 예쁜 딸로 머물고 싶었지만

   이미 미운털이 박혔고

   난 삶에 대해 아직도 잘 모르기에

   알고픈 일들 정말 많지만

   엄만 또 늘 같은 말만 되풀이하며

   내 마음의 문을 더 굳게 닫지         


엄마의 잔소리를 일상적으로 듣는 딸의 심정이 잘 느껴지네요. 딸의 나이는 15살. 흔히 중2병이라는 불리는 중2 나이네요. 사춘기를 심하게 겪는 청소년들을 비꼬는 비하하는 용어이죠. 이미 어른인 줄 알고 허세 있게 행동하는 것을 일컫죠. 하지만 어른들이 만든 이런 말은 그냥 무시하세요. 사실 모든 어른들이 사춘기 때 작든 크든 다 경험했던 감정이죠. 마치 올챙이 적이 없었다는 듯 비꼬듯 싸잡아 비하하는 이런 말은 여러분이 겪게 되는 ‘이행’ 과정에 하등 도움이 되지 않죠. 중2병은 어른으로 이행하려는 청소년들이 겪는 당연한 병치레일 뿐이라고 생각해요.      


항상 예쁜 딸이고 싶지만 미운털이 박혔다는 딸의 죄책감. 참 공감되지 않나요? 샘도 이 나이 때는 늘 부모님의 기대에 부응해야 한다는 본능적인 압박감을 느꼈고, 그에 따라 죄책감도 있었던 것 같아요. 하지만 딸은 반복되는 엄마의 잔소리에 오늘도 마음의 문을 닫아요.      


2절의 후렴구는 엄마의 잔소리에 대한 딸의 반응이에요.      


   공부해라

   그게 중요한 건 나도 알아

   성실해라

   나도 애쓰고 있잖아요

   사랑해라

   더는 상처 받고 싶지 않아

   나의 삶을 살게 해 줘     


딸의 반응이 참 재밌네요. 먼저 공부가 중요한 걸 모르는 학생이 어디 있을까요? 중요한 걸 알아서 더 답답할 따름이죠. 그리고 성실하라는 주문에 애쓰고 있다고 말하고 있어요. 여러분은 늘 자신이 처한 환경에서 최선을 다하고 나름 애쓰고 있는데, 가끔 까먹는 사실인 것 같아요. 사랑하라는 엄마에 말에 더는 상처 받고 싶지 않다는 딸의 대답. 사랑마저도 이래라저래라 조언 듣는 건 너무하다고 생각했을까요? 아무튼 엄마의 잔소리에 나름대로 대응을 한 딸은 토하듯 한마디 내뱉어요. “나의 삶을 살게 해 줘.” 1절에서는 엄마의 마지막 조언이었는데, 여기서는 딸의 절규로 바뀌네요. 엄마의 마지막 말은 딸에게 전달된 적이 없었던 것일까요? 딸의 절규 그대로 엄마는 딸에게 말하고 싶은데 딸은 그렇게 느끼지 못했나 봅니다.      


노래는 엄마의 당부로 마무리돼요.      


   내가 좀 더 좋은 엄마가 되지 못했던 걸

   용서해줄 수 있겠니

   넌 나보다는 좋은 엄마가 되겠다고

   약속해주겠니      


엄마도 결국 죄책감을 느끼면서 노래가 끝나네요. 오랜만에 들은 가슴 뭉클해지는 노래였어요.      


사진 - Young샘


노래를 듣고 난 후 우선 엄마와 딸의 관계는 참 특별하다는 생각을 했어요. 한국에서 엄마와 딸은 애증관계 그 자체이죠. ‘엄마처럼 살지 않을 거야’라고 수없이 다짐하지만, 누구보다도 엄마를 걱정하고 친구처럼 다정하게 지켜주는 게 딸인 것 같아요. 방청소 문제부터 남자 친구 선택까지 온갖 사소한 일부터 티격태격 다투지만, 그만큼 엄마의 복잡한 심정이 가장 많이 투영된 존재가 딸이라고 생각해요. 참 일상적이지만 아름다운 관계인 것 같아요.      


이 노래의 백미는 역시 엄마의 잔소리 4단 변화인 것 같아요. 4문장으로 간결하게 함축된 가사 속에 부모님들의 잔소리 흐름이 잘 대표된 것 같아요. 아이들의 행복을 위해서 하는 말이긴 하지만, 오히려 아이들을 억압하는 반행복일 수도 있다는 두려움을 늘 안고 습관적으로 하는 말들이죠. 가슴으로 아이의 행복을 위해 하는 말들이지만, 혹시 부모의 행복이라고 착각하면 어쩌지 하고 돌아보게 하는 말들. 그래도 마지막 조언인 “너의 삶을 살아라”가 궁극적인 진심임을 꼭 알았으면 하죠. 2절의 딸이 절규하는 말인데, 사실 부모님은 직접적이든 간접적이든 결국 이 말을 꼭 하고 싶어 한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당당하게 세상 속에서 자신의 삶을 살아갔으면 하는 바람. 혹시 여러분 중 부모님의 잔소리가 지나치게 힘들다고 느껴지는 사람이 있다면, 찬찬히 살펴보세요. 결국 하고 싶은 말은 별로 다르지 않다는 것을 금방 알 수 있을 거예요.       


 

사진 - Young샘


샘이 인간관계에 있어 좋아하는 은유가 하나 있어요. 영국 작가 D.H. 로렌스 소설 속에 등장하는 ‘행성 간의 평형상태 (Star Equilibrium)’라는 은유예요. 진정으로 아끼고 사랑하는 관계라면, 일정한 거리를 두고 궤적을 그리는 행성들 간의 움직임과 같아야 한다는 주장이에요. 행성들은 서로에게 힘을 작용하지만 결코 부딪히지 않고 항상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면서 평행한 궤적을 그리죠. 더 가까이도 더 멀어지지도 않아요. 마치 각자의 궤적을 존중해주고 발맞춰주는 것처럼 보이죠. 일정한 거리를 둔 채 각자의 존재를 존중하면서도 결코 벌어지지 않는 놀라운 평형상태. 로렌스는 인간관계에서 있어 이러한 행성들의 움직임 같은 것이 꼭 필요하며, 이것이 진정한 인간관계에서의 자유와 존중이라고 말해요. 멋진 비유이지 않나요? 샘도 인간관계에서 이기심이 작동할 때마다 마음속으로 다시금 생각하는 은유예요. 그 사람이 그 사람일 수 있게 일정한 거리를 두고 궤도를 같이 그려주는 사람. 그리고 이러한 행성들의 운동 때문에 밀물과 썰물이 생기듯이, 우리도 가끔 밀물과 썰물과 같은 감정을 주고받죠. 엄마가 딸에게 밀물처럼 잔소리를 쏟아 붓기도 하고, 딸은 엄마에게 썰물처럼 차갑게 대할 때도 있죠. 하지만 밀물과 썰물이 전체 힘의 작용에서 아주 작은 바닷물의 넘나듦에 불과한 것처럼, 사소한 감정의 오르내림도 결국 행성의 평행한 궤적 발맞추기의 일부라고 생각해요. 부모님이 원망스러울 때마다 이러한 은유를 생각해보았으면 해요. 여러분이 여러분만의 궤도를 유지할 수 있게, 그리고 스스로 여러분의 삶을 헤쳐 나갈 수 있게 묵묵히 옆에서 응원해주는 존재. 가끔 밀물과 썰물이 밀려와 짜증이 나도 부모라는 큰 바다의 가장자리 작용에 불과할 뿐이라고. 샘도 여러분의 행복과 미래라는 미명 아래 꼰대력이 높아지는 것은 아닌지 돌아볼게요. 그래도 비록 여러분에게 다양한 작용으로 마음을 들었다 놨다 할지라도, 여러분을 둘러싼 어른들이 진정 여러분의 삶을 살아가기를 바란다는 점은 꼭 기억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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