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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눈시울 Sep 16. 2023

각기 다른 세 황제가 이어간 서로 다른 '현제의 세기'

로마인 이야기 9권 - 시오노 나나미(한길사)  ●●●●●●●●○○


"현제란 과연 무엇이며, 어떤 이유로 로마인들은 그를 현제로 찬양했을까." 



   트라야누스 황제는 '나서고 싶어하는 사람'과 '내세우고 싶은 사람'의 비율이 반반인 타입인 듯하고, 하드리아누스 황제는 분명 백 퍼센트 '나서고 싶어하는 사람'이다. 그리고 지금부터 이야기할 안토니누스 피우스 황제는 백 퍼센트 '내세우고 싶은 사람'이라 해도 좋다. 

                                                                                                                                                  - p. 424. 죽음



   . 이번 이야기의 시작에서 시오노 나나미는 트라야누스의 즉위로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현제의 세기'를 다루면서, 책 첫머리에 "그가 현제라는 데에는 뭇사람의 의견이 일치된 모양인데, 그렇다면 현제란 과연 무엇이며, 어떤 이유로 로마인들은 그를 현제로 찬양했을까"에 대해 쓸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그렇게 이번 권에서는 전쟁을 통해 번영과 확장을 이룩했던 트라야누스, 로마 체제를 총체적으로 재정비하고 재구축한 하드리아누스, 그리고 긴 기간동안 평화와 안정을 이어나간 안토니누스 피우스까지 세 현제의 각기 다른 모습이 다뤄진다. 


   . 다만 역사에서는 보통 5현제 시대라고 얘기되지만, 이 책에는 치세가 너무 짧았던(오죽하면 트라야누스를 지명했기 때문에 5현제에 들어갔다는 얘기까지 듣는) 네르바나, 말년의 통치와 후계구도에 있어서 문제를 드러낸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 포함되어 있지 않다. 네르바야 그렇다치더라도,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를 '현제의 세기'가 아닌 다음 권 '종말의 시작'에 넣은 건 의미심장하다. 비록 직접 최선을 다해 게르만 족과 싸웠고 전장에서 병사했으며 뛰어난 저작인 명상록을 쓴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였지만, 시오노 나나미의 시각은 냉정했다. 


   . 이번 권을 읽으며 재미있었던 건, 시오노 나나미 여사께서 하드리아누스에 대한 글을 쓰면서 꽤나 즐거워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던 일이다. 업적 위주로 쓰여진 트라야누스 편이나 짤막하게 다뤄진 안토니누스 피우스 편에 비해 하드리아누스 편에서는 업적과 순행은 물론 황제 개인의 성격에 대해서도 깊숙하게 다루는데, 하기사 복잡한 성격에 자기애가 극히 강하면서도 책임감을 갖춘 하드리아누스 같은 인물은 글을 쓰는 작가의 입장에선 항상 즐거운 대상이다. 그래서 마르그리트 유르스나르의 '하드리아누스 황제의 회상록'부터 야마자키 마리의 '테르마이 로마이'에 이르기까지 하드리아누스는 - 특히 말년의 - 더없이 매력적인 인물로 묘사되어 있고, 시오노 나나미의 책에서도 그렇다.  




   하드리아누스처럼 복잡한 성격의 소유자는 가까이에 있는 사람들에게는 분명 다루기 어려운 존재다. 하드리아누스의 진심을 이해하지 못하는 한, 그에게 휘둘릴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러면 하늘이라도 쳐다보면서 '변덕스럽다는 점에서는 한결같았다'고 중얼거리고 체념할 수밖에 없다. 사비나 황후도 하드리아누스 곁에 계속 머물러 있기가 얼마나 어려운가를 무의식적으로라도 깨닫고 있었던 게 아닐까. 하지만 계속 옆에 있기가 어렵다는 것을 깨닫고도 하드리아누스 가까이에 줄곧 머물 수 밖에 없는 사람도 있었다. 

                                                                                                                                          - p. 371. 로마 군단 



   . 사실 카이사르 같은 완전체보다는 술라나 하드리아누스 같은 인물이 문학적으로는 훨씬 매력적인데, 술라를 다룬 3권에선 아직 시오노 나나미 여사님의 필력이 좀 부족했는지 술라라는 인물의 복잡한 성격과 매력을 전부 끌어내지는 못했다는 느낌이었다(콜린 맥컬로 여사님의 '풀잎관'과 비교해보면 그 차이가 쉽게 느껴진다). 그에 비해 한껏 원숙해진 이번 권에서는 하드리아누스의 복합적인 성격이나 인간적인 고뇌가 잘 쓰여져 있어서 트라야누스나 안토니누스 피우스 편에 비해 훨씬 수준 높은 한 편의 이야기가 완성되어 있고, 그래서 로마인 이야기 전체 에피소드 중에서 하드리아누스를 다룬 이 200여쪽은 시리즈에서 유일하게 10점 만점을 줄 수 있다고 생각하는 부분이다. :) 



   어찌할 바를 모르는 내 가련한 영혼이여, 

   오랫동안 내 육신의 손님이고 반려였던 내 영혼이여, 

   이제 어둡고, 춥고, 

   과거의 네가 무엇보다 좋아한 농담을 나누는 즐거움도 없는 세계로, 

   내려가지 않으면 안될 때가 온 것 같구나. 

                                                                                                                                             - p. 417~8. 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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