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89년 프랑스 혁명 및 랭커셔에서 근대 최초의 공장제도 건설과 더불어 시작되는 이 역사적 시기는, 최초의 철도망 건설 및 '공산당 선언' 출간과 함께 끝을 맺는다.
프랑스 혁명은 한 실례로서 예술가들에게 영감을 불어넣었고 산업혁명은 그 끔찍스러움으로 그들을 자극하였으며, 이 두 혁명의 산물인 부르주아 사회는 예술가의 존재 그 자체와 창조양식을 변혁시켰다.
- p. 473. 이데올로기 : 현세
. 1789년의 양대혁명으로 시작해 1848년의 철도망 건설과 마르크스-엥겔스의 '공산당 선언'으로 끝나는 50년간을 에릭 홉스봄은 산업혁명과 프랑스혁명의 영향력에 의해 움직여진 '이중혁명'의 시기라고 명명한다. 이 시기에 영국과 프랑스 양대 강국을 중심으로 일어난 이중혁명에 의해 이후 역사는 경제적으로는 자본주의, 정치적으로는 민주주의로 가닥을 잡게 되며, 유럽이 역사의 주도권을 잡게 된다.
. 이중혁명의 중심 국가인 프랑스와 영국 간에는 19세기 초중반 내내 치열한 주도권 다툼이 벌어지는데, 프랑스가 '뛰어난 개인'을 많이 보유하고 있었음에도 시대의 주도권은 결국 더 효율적인 체제를 가지고 있던 영국이 쥐게 된다. 청교도혁명과 명예혁명을 통해 일찍부터 '절대', '전제'라는 족쇄에서 벗어난 영국은 그 출발점에선 학문과 과학 분야에서 프랑스에 뒤쳐져 있었음에도 이념에 얽매이지 않고 이윤과 효율을 추구하는 사회분위기를 앞세워 계속 변화를 이뤄냈고, 여기에 인클로저를 통해 확보된 대규모 노동력과 면화가 기계, 화학, 운송의 복합적인 발달을 가능하게 했다. 물론 이윤과 효율의 추구는 노동자들의 착취를 정당화하는 어두운 측면을 불러오기도 했지만.
. 이에 비해 프랑스는 비옥한 영토와 장기간 축적된 과학과 학문적 성취에도 불구하고 전제주의로 인한 비효율, 혁명으로 인한 경제적 혼란, 나폴레옹 시대의 긴 전쟁까지 겹치며 결국 영국에게 주도권을 빼앗기게 되지만, 그 대신 프랑스 혁명과 나폴레옹 전쟁을 거치며 프랑스의 민주주의와 공화주의가 온 유럽에 전파되어 프랑스의 체제가 민주주의의 표준이 된다. 물론 1789년 혁명의 과실이 부르주아에게 집중된 것은 사실이지만, 그 이전에 일반 민중이 자신들의 힘을 자각하고 언제든 일어날 수 있게 되었다는 점에서 프랑스 혁명은 충분히 의의를 가지는 사건이었다. 실제로 왕정복고 이후 반동 시대의 7월 혁명과 2월 혁명을 통해 프랑스 민중은 이를 실증했으니까.
. 에릭 홉스봄의 이 책은 단순히 혁명과 전쟁의 경과에 초점을 맞추기보다는(물론 어느 정도는 서술되어 있다) 경제에 초점을 맞추어 이 시대를 설명하는데에 집중한다. 1789년 혁명 전야의 프랑스는 숙적이면서도 근대 내내 항상 열세에 몰렸던 숙적 영국을 미국혁명 전쟁을 통해 드디어 격파했지만, 정작 그 전쟁에 쏟아부은 비용이 아니었더라면 프랑스 혁명은 일어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나폴레옹 이후 굳건할 것만 같았던 빈 체제를 무너뜨린 1848년의 혁명 역시 1840년대의 기근과 불황이 아니었다면 그 정도의 파급력을 가지지 않았을 가능성도 크고. 하긴 생각해보면, 우리 역사만 해도 50년대 후반 미국의 원조 축소나 70년대 후반의 2차 오일쇼크가 없었다면 과연 그 서슬퍼렇던 독재정권들이 붕괴되었을까. 이렇듯 홉스봄은 역사의 방향을 바꾼 변혁 뒤에는 언제나 경제적인 배경이 있었다고 주장하며, 이 책의 상당 부분은 그 경제적인 상황들을 분석하는데 할애되어 있다. 그런 기존의 서술과 다른 시각이, 두툼한 두께에도 불구하고 이 책을 완독하게 만드는 힘이다.
. 정치적 위기가 사회적인 파국, 즉 1840년대 중반부터 대륙을 휩쓸었던 대불황과 때를 같이하여 일어났기 때문이다. 농업의 작황 - 특히 감자 - 이 좋지 않았다. 아일랜드의 주민들, 그리고 그보다는 덜했지만 실레지아와 플랑드르의 주민들 대부분이 굶주림에 시달렸다. 식량값은 마구 뛰었다. 산업의 불황 때문에 실업자가 늘어났다. 도시의 노동빈민 대중은 생활비가 마구 치솟는 바로 그 순간에 알량한 밥벌이마저 잃게 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