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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눈시울 Aug 21. 2023

'자본'과 '민족' 앞에 무력화 된 '혁명'

제국의 시대 - 에릭 홉스봄(한길사)  ●●●●●●●●◐○


민족은 국가의 새로운 시민종교였다. 



   일반적으로 제국주의는 대중들, 특히 잠재적으로 불만을 가진 자들로 하여금 스스로 제국 국가 그리고 민족과 동일시하도록 고무했고, 그리하여 그들에게 무의식적으로 자신들이 속한 사회가 정당성과 정통성을 가진 국가에 의해 대표되는 사회적, 정치적 체제라는 점을 주입시켰던 것이다. 

                                                                                                                                     - p. 174. 제국의 시대  




   . '장기 19세기'의 마지막인 1875년부터 1914년까지의 기간은 참 알 수 없는 시대였다. 마르크스가 주창한 사회주의는 '혁명의 시대'를 거치며 온 유럽에 퍼져나갔고, '자본의 시대'를 거치며 투표권이 서서히 확대되면서 이상이 아니라 실제로도 민중이 힘을 가질 수 있는 기반이 조성되었다. 같은 시대에 종교 역시도 메인스트림에서 밀려나면서 더 이상 민주와 진보를 막을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어보였다. 그러나 그런 상황에서 실제로 일어난 것은 다수의 민중들이 통치하는 세상이 아니라 민중들이 총알받이가 된 전례없는 끔찍한 전쟁이었다. 


   . 1차대전의 원인에 대해서는 이 책이 아니더라도 충분히 많은 책에서 다루고 있지만, 그게 시장확장을 위한 대자본가와 국가의 결탁 때문이었든 삼국동맹과 삼국협상으로 블록화된 유럽의 정세 때문이었든, 근본적인 문제는 전쟁을 통해 그다지 이득 볼 게 없는 노동자와 농민, 그리고 학생들까지도 거의 아무런 반항없이 다들 열광하며 죽음의 자리로 뛰어들었다는 것이다. 기껏해야 국제 인터내셔널 정도가 노동자의 참전을 반대했지만 물론 아무 영향도 없었다. 차라리 십자군 전쟁의 시대였다면 순교해서 천국에 간다는 믿음이라도 존재했겠지만, 종교조차 힘을 잃었던 이 시대에 이들은 아무런 보장도 댓가도 없이 전쟁터에 뛰어들었고 차례차례로 죽어갔다. 그리고 에릭 홉스봄은 이 현상에 '민족'이라는 새로운 창조물이 있었음을 지적한다. 



   민주주의가 점차 강화되는 시대에서 권위체들은 전복과 항의에 대항하여 국가의 신민들을 함께 묶어둘 수 있는 방식을 필요로 했다. 이제 권위체들은 사회적 복종을 효율적으로 보장해주었던 전통적인 종교나 전통적인 방식으로, 사람들을 사회적인 지배자에게 즉각적으로 복종시킬 수 있었던 종래의 사회적 질서에 더 이상 의존할 수 없었다. '민족'은 국가의 새로운 시민종교였다. 그것은 민족국가를 직접 각각의 시민들에게 갖다주는 방식으로, 국가에 대한 충성심이 아닌 다른 충성심에 호소하는 자들 - 국가와 동일하지 않은 종교, 민족체, 인종집단들, 무엇보다 계급들의 - 비중을 깎아내리는 방식으로 모든 시민들을 국가에 묶어주게 하는 일종의 접착제였다. 대중들이 입헌국가에서 선거에 의한 정치에 몰두하면 할수록, 그러한 호소가 퍼져나갈 수 있는 영역은 더욱 넓어졌다.

                                                                                                      - p. 293. 휘날리는 깃발 - 민족과 민족주의 



   . 혁명의 시대를 거치며 계급과 종교가 더 이상 민중을 통제할 수 있는 힘을 잃어버리자, 지배층은 '민족'이라는 인위적인 창조물을 통해 영토 내의 구성원을 하나로 묶는다. 그렇다. 대부분의 유럽 국가에 있어 민족이란 아프리카에 그은 식민지의 국경선만큼이나 지극히 인위적인 개념이었다. 몇백년간 수백개의 제후국으로 쪼개져  있던 독일에 대체 무슨 집합체가 존재한다는 것인가. 민족국가라 자칭하는 프랑스 역시도 부르고뉴와 대립하던 기간이 하나로 합쳐져 있는 기간보다 훨씬 더 길지 않은가. 


   . 그랬던 별개의 집단들은 '제국의 시대'동안 초등교육과 국어를 통해 통합되고 학자와 예술가를 통해 공동의 자랑거리를 가지게 되었으며, 그들이 가볼 일도 없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름도 몰랐을 낯선 땅에서 들려오는 승전보가 그들의 것으로 포장되었다. 그렇게 40년이라는 시간이 지나자, 그들은 새롭게 만들어진 '민족'이라는 개념에 기꺼이 목숨을 걸 수 있게 되었다. 아무런 대가없는 국민총력전이 가능해지게 된 것이다. 

   . 장기 19세기가 시작되는 '이중혁명'이 등장했을 때 누구에게든 이 시기가 이런 형태로 끝날 것이라고 이야기했다면 터무니없는 비약이라는 반박을 들었을 것이다. 그러나 소수에게 쥐어졌던 권력이 차츰차츰 다수에게로 이양되고, 절대적인 것처럼 여겨졌던 이념들이 무너지던 희망의 시기가 끝났을 때 소수의 권력자들은 그 어느 때보다도 큰 권력을 - 어마어마한 다수의 목숨을 한손에 쥐고 흔들 수 있는 - 가지게 되었고, 신과 기존의 권위가 사라진 자리를 '민족'이라는 낯선 개념이 그 자리를 차지하게 되었다. 그 시기에서 지금 우리의 시기로 넘어오기 위해서는 또 어떤 변화가 있었는지, 그리고 과연 우리의 시기가 어떤 모습인지 확인하기 위해서는 또다시 그 뒤의 이야기를 찾아 읽어야 한다. 홉스봄의 이야기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언어적 민족주의는 그 말을 할 줄 아는 성원들을 창조해내는 것이 아니라, 그 말을 읽고 쓸 수 있는 성원들을 창조해내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러한 한에서, 그들 민족의 본질적 특성을 발견했던 '민족적 언어'는 가공품이었던 것이다. 왜냐하면 그것들은 실제로 말해지는 것으로서의 비문자적 언어를 구성했던 지방이나 지역적 방언들의 조각그림 맞추기로부터 벗어나, 문자적으로 그리고 현재적으로 활용될 수 있게끔 편찬되고, 표준화되고, 동질화되고 근대화되어야만 했다. 

                                                                                                      - p. 290. 휘날리는 깃발 - 민족과 민족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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