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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눈시울 Aug 27. 2023

개별 국가를 넘어 전체 역사의 흐름을 조망한 역작

기원 전후 천년사 - 마이클 스콧(사계절) ●●●●●●●◐○○


한니발이 알프스를 넘은 지 고작 80년 만에 지중해와 중국,
동서양의 두 세계가 처음으로 만나게 된다.  



   이 시기가 글로벌 고대사의 관점에서 특히 중요한 이유는 각국 통치자의 행위가 그들의 운명뿐만 아니라 서로의 계획, 결정, 성취에 점점 더 큰 영향을 미쳤기 때문이다. 이 시대 통치자들은 전투를 알리는 나팔 소리와 행군하는 병사들을 앞세워 연결된 세상을 구축해나갔다. 그 결과 한니발이 알프스를 넘은 지 고작 80년 만에 지중해와 중국, 동서양의 두 세계가 처음으로 만나게 된다. 이 순간부터 고대 세계는 모든 개별 행동이 전체에 영향을 미치는 체스판 같은 성격을 띠게 되었다. 

                                                                                                        - p. 133. 전쟁과 변화하는 세계 - 머리말. 




   . 한니발 전쟁과 그 이후를 다룬 '로마인 이야기' 2권과 3권을 읽다보면 시오노 나나미가 로마가 카르타고나 갈리아 같은 지중해 서부 세계를 상대하고 있을 때 동쪽의 대국들이 힘을 합쳐서 로마를 쳤으면 되지 않았을까, 하는 얘기가 나오는데, 이 책에는 바로 그 시기의 지중해 동쪽 세계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그 내용에 따르면, 포에니 전쟁이 발발하던 기원전 200년 전후, 체제를 통해 거대한 힘을 사용하는 방법을 깨달은 대국은 딱히 로마뿐만은 아니었다. 알렉산더의 장군들이었던 셀레우코스와 안티고노스가 맞붙은 입소스 회전은 칸나에 회전만큼이나 대전투였고, '디아도코이' 전쟁으로 불리는 대전쟁 끝에 로마의 동쪽에는 지중해에서 인도 국경에 이르는 거대한 셀레우코스 제국이 선다. 


   . 이렇게 비슷한 시기에 형성된 로마와 중근동의 '동방제국'들은 천년 가까운 기간 동안 밀고 밀리는 싸움을 벌인다. 카이사르와 제정 초기만 해도 로마가 군사적인 우위를 보이며 셀레우코스 제국을 유프라테스 강 유역까지 밀어냈지만, 셀레우코스 제국 이후에 들어선 파르티아나 사산조 페르시아에 이르면 싸움은 일진일퇴를 거듭하게 된다. 파르티아의 수레나스는 크라수스가 이끄는 로마군을 전멸시켰고, 사산조 페르시아는 로마의 '3세기의 위기' 시기에 황제 발레리아누스를 사로잡는 등 로마를 밀어붙였다. 결국 이 시기의 역사는 로마 패권의 역사가 아니라 로마와 동방제국 간의 팽팽한 대립이라고 보아야 한다. 마찬가지로 처음의 이야기로 돌아오자면, 지중해 동쪽의 국가들이 포에니 전쟁의 시기에 떠오르는 로마를 막지 못했던 것처럼, 로마 역시도 입소스 전투와 디아도코이 전쟁의 지기에 동쪽에 제국이 들어서는 것을 막지 못했던 것이다. 서양과 유럽 중심의 관점에서 보기 때문에 로마 패권의 시기처럼 여겨지는 것일 뿐.


   . 이렇듯 저자는 '체제의 정비', '힘의 사용과 이를 통한 확장', '이념으로서의 종교의 도입'이라는 세 개의 큰 주제를 통해 기존의 국가별, 지역별 역사에서 벗어나 비슷한 시기에 전혀 다른 지역에서 일어난 국가와 사회의 변화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시대에 따라 그 대상은 그리스의 민주주의와 중국의 초기 관료제의 차별점이기도 하고, 중국으로 전파된 인도의 불교와 로마에 맞서다 체제에 흡수되어 이후 유럽 사회를 지배하는 기독교의 차이이기도 하고, 중국과 인도와 중근동과 로마에서 각각 힘의 사용법을 깨닫고 전쟁과 확장에 몰두하던 제국들의 유사점이기도 하다. 이렇게 책을 따라 시야를 넓혀보면 역사의 유사한 점과 차별되는 점이 흥미롭게 느껴지는 게 이 책의 매력이다. 


   . 여기에 상대적으로 '저명한 역사'에 비해 접할 기회가 많지 않은 아르메니아의 기독교 이야기나 셀레우코스 제국의 흥망성쇠 같은 잘 알려지지 않은 역사도 극적으로 서술되어 있어서, 역사에 관심이 있는 독자라면 한 번 접해볼만한 좋은 책이니 추천. :)




   다른 한편으로 주나라 제후국은 육지에서 지속적인 영토 방어전을 치르면서 통치 계급에게 권력이 집중된 구조를 그대로 유지했다. 그러나 로마와는 달리 군주의 힘만으로 대규모 군대를 육성하거나 그들을 먹이고 무장시키기 위한 물자나 자금을 조달할 수 없었다. 따라서 더 크고 중앙집권화된 행정조직이 구축되었다. 그 결과 진정한 의미의 관료제가 탄생했다. 관료층은 학문과 기술을 익혀 직위를 획득한 신생 하급 귀족으로 채워졌다. 이렇게 능력을 중시하는 사회 환경 속에서 '사士 (선비/문관)'라는 사회, 정치적 계급이 발달했으며, 공자의 가문도 이 계급에 속했다. 관료제는 모든 시민이 민주주의 운영에 동등하게 참여하는 것이 원칙이었던 아테네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로마에는 중앙 관료 집단 대신 '쿠르수스 호노룸(출세의 사다리)'이 서서히 구축되어, 야망을 품은 로마인이라면 이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야 했다. 

                                                                                                                    - p. 104. 쇠락 그리고 부활의 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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