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영과 편견을 넘어, 쏟아지는 사건들을 읽어내기 위해

아랍 - 유진 로건 (까치) ●●●●●●●●●○

by 눈시울


오늘 날 대부분의 아랍 지역의 일반 대중들은
이슬람적 색채가 강한 일상을 살아가고 있기 때문에,
1981년의 중동이 얼마나 세속적이었는지를 상상하기란 쉽지 않다.



1974년 이후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 양측의 입장이 경직되면서 함마미와 아브네리는 자신들이 속한 사회 내의 과격분자들로부터 점점 더 큰 위협을 받게 되었다. 1975년 12월에 한 정신 나간 한 이스라엘인으로부터 텔아비브 자택 인근에서 칼을 맞은 아브네리는 심각한 부상을 입었다. 그리고 1978년 1월에는 함마미가 런던 사무실에서 사살되었는데, 이는 이스라엘과의 만남에 반대하던 팔레스타인의 거부파 아부 니달 그룹의 소행이었다. 단발에 함마미의 머리를 명중시킨 범인은 배신자라고 비난하며 그에게 침을 뱉고는 유유히 런던 거리를 빠져나갔다.

- p. 539. 석유의 시대




. 오스만 투르크의 이집트 정복에서부터 시작하는 이 이야기는, 1차대전 전후에 일어난 투르크의 쇠퇴와 이를 틈탄 서구 열강의 아랍 세계(중동)의 분할로부터 본격적인 궤도에 오른다. 러시아와 영국의 영향력에서 벗어나려 했던 투르크는 1차대전에서 독일의 편에 섰지만 이제는 누구나 다 알다시피 폭망한 도박(....)이었고, 독일이 패전하자 투르크의 식민지였던 아랍 지역을 두고 유럽 열강들의 식민지 경쟁이 본격화되었다. 리비아를 차지했던 이탈리아, 알제리와 시리아, 레바논에 손을 뻗친 프랑스, 이집트와 이라크, 요르단을 차지하고 아라비아 반도에 동맹 세력을 두어 영향력을 행사했고, 무엇보다도 팔레스타인을 가지고 있었던 영국의 식민통치와 그 실패에 대해 상세하게 기술해나간다.


. 처음에는 전혀 낯선 이야기로 느껴져 힘겹기는 하지만, 유럽 식민통치의 실패로 발생한 문제들은 결국 현재와도 맞닿아있고, 그 시절 유럽 열강들이 그어둔 영토선 대부분은 지금도 유효하기 때문에 어딘가에서는 우리에게도 낯익은 지점들을 찾아낼 수 있다. 안타깝게도 그 낯익은 지점들 대부분이 '중동의 화약고'이고. 아프리카에서도 그렇듯 아랍 세계 역시도 민족이나 그전의 역사를 무시한 채 강대국의 이해관계로 국경선이 그어지고, 하루 아침에 한 나라가 된 다른 부족과 민족들은 주도권을 놓고 수많은 목숨을 잃어가며 싸우고 있다. 레바논, 이라크, 시리아, 쿠웨이트, 그리고 팔레스타인 문제에 이르기까지.




아랍 국가들이 5월 15일 전에는 어떤 공동의 염원을 가졌었든지 간에 두 달간의 전쟁 참사를 겪으면서 이 모든 것은 산산조각이 났다. 전쟁 시작 전부터 이미 상당히 심화되어 있던 아랍 국가들 간의 분열은 전쟁의 제 1, 2 국면에서 발생한 병력 손실로 인하여 더욱 악화되었다. 아랍 국가들은 아랍 연맹의 입안자들이 낙관했던 신속한 승리는커녕 갈수록 승산이 없어보이는 전쟁에 자국 군대의 발목이 잡혔음을 깨닫게 되었다.

- p. 379. 팔레스타인 재앙과 그 결과




. 책의 후반부에서 유진 로건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충돌, 그리고 그 충돌이 아랍사회 전체로 확대되며 벌어지는 일들을 이야기한다. 네 차례에 걸친 중동전쟁과 아랍 국가들의 연이은 패배, 그로 인한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점령과 팔레스타인 인들의 추방, 그로 인한 이집트에서의 군부 쿠데타, 전면전 대신 석유를 무기로 싸우기 시작한 아랍국가들, 아랍국가들에서도 외면받은 팔레스타인인들의 투쟁과 각 국에서 벌어지는 내전, 이 모든 것을 아우르는 이슬람 근본주의의 등장 등의 사건들을 따라가다보면 후반부의 400페이지가 택도 없이 부족하다는 걸 알게 된다.


. 더구나 아랍 세계의 변화는 지금 이 순간에도 계속 이뤄지고 있기 때문에, '성실한' 저자는 무려 720페이지의 분량을 할애하고도 끝낼 타이밍을 잡지 못하고, 에필로그에 후기에서까지 계속 내용을 업데이트 해야만 했다. 20세기 말의 화해 분위기로 책을 끝내려고 했더니 9.11이 터지고, 이어지는 테러와의 전쟁과 오바마의 등장, 아랍의 민주혁명까지. 그렇게 책 마지막 페이지까지 필사적으로 업데이트를 했는데도 불구하고 IS의 등장과 몰락, 탈레반의 재집권, 그리고 이스라엘과 하마스의 전쟁은 생각지도 못한 채 씁쓸하게도 지금에 와서는 전혀 실현가능성이 없어보이는 아랍 민주혁명의 확장에 대한 기대로 책을 마감할 수밖에 없었다. 그만큼 아랍세계는 지금 이 순간에도 변화하고 충돌하며, 전진과 퇴보를 거듭하고 있는 것이다.


. 심지어 이 책을 읽고 리뷰를 쓰는 사이에도 아프가니스탄에서 미군과 나토군이 철수하여 탈레반이 정권을 잡게 되면서 탈레반과 북부동맹간의 내전이 이어지고 있고, 이스라엘이 사우디와 우호관계를 맺더니 최근 며칠 사이에는 하마스가 이스라엘에서 민간인을 대상으로 대학살을 벌이고 이스라엘이 '테러 진압'이 아닌 '전쟁'을 선포하면서 한 치 앞도 예측할 수 없는 참혹한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 이로 인한 역사를 서술하기 위해선 또 책이 몇 권씩 필요하겠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과거의 어느 시점까지'를 서술하는 통사는 필요할 수밖에 없다. 그래야 쏟아지는 하루하루의 뉴스를 스쳐보내는 것을 넘어, 역사 위에 올라서서 미래를 바라볼 수 있기 때문이다. 두툼하고 묵직하며 정말 세세했던 이 뛰어난 이야기책은, 그런 목적을 위해서는 지금까지의 어떤 책보다도 더 적합했다.




나세르는 자신이 만들어 낸 허위정보를 믿는 지경에 이르게 되었다. 국내의 비판을 모면하기 위한 연막으로 시작된, 즉 미국이 이스라엘 편에 서서 전쟁에 가담했다는 거짓 주장이, 새로운 제국주의 물결 속에서 중동 지역에 대한 통제력을 강화하기 위해서 미국이 이스라엘을 이용하고 있다는 확신으로 변해갔던 것이다. 아랍 세계 전역에서 이스라엘과 미국 간의 공모 혐의가 그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던 패전의 원인을 설명하는 데에 동원되었다.

- p. 484. 아랍 민족주의의 쇠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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