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인 이야기 12권 - 시오노 나나미(한길사) ●●●●●●●●○○
아무리 나쁜 결과로 끝난 일이라 해도 그 일을 시작한 애초의 동기는 선의였다.
3세기 로마제국의 특징 가운데 하나는 정략적인 면에서 게속성을 잃어버린 것이다. 그 전에는 나쁜 황제로 단죄를 받은 사람이 죽은 뒤 제위를 계승한 황제도 선제의 정책 가운데 좋은 정책으로 판단되는 것은 계속 추진했을 뿐만 아니라, 그것을 더욱 발전시키는 것도 주저하지 않았다. 기본 정책의 계속성은 이것으로 보장되었다. 황제의 치세가 길었다는 이유만으로 계속성이 보장된 것은 아니다. 계속하는 것이 에너지 낭비를 막는 방법이라는 것을 자각하고 인식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3세기의 로마 제국은 가진 힘의 낭비에 신경을 쓰지 않게 되었다. 이것도 로마인이 로마인답지 않게 되어가는 하나의 조짐이었다.
- p. 215. 필리푸스 아라부스 황제
. 211년부터 284년까지 73년간 23명의 황제. 그 중 14명이 암살, 전사가 둘, 자살이 둘. 재위 10년을 넘긴 황제는 단 두 명. 그 중에는 손꼽을만한 명장이나 행정적으로 유능한 황제도 있었고 평화시라면 성군이라 불릴만한 선량한 황제도 있었지만, 그런 황제들조차 천수를 누리지 못했던 시대였다. 그리고 극단적으로 짧은 제위기간은 체제의 불안을 가져왔고, 체제의 불안은 제국을 구성하는 이들의 위축으로 이어지고, 위축은 곧 경제의 붕괴로 이어졌다. 그게 로마제국의 3세기였다.
. 연대표만 봐도 진절머리가 나는 3세기를 꼼꼼하게 하나하나 짚어가면서 시오노 나나미는 로마의 3세기를 '체제에 대한 신뢰의 붕괴와 그로 인한 사회적 위축의 심화'로 정의한다. 야만족의 침입으로 방어선이 뚫리자 사람들은 안전한 도시로 모이고, 그러한 외곽지역의 공동화는 경제력의 약화를 가져온다. 여기에 이민족에 대응하고 내전을 벌이는 과정에서 군사력이 소모되고, 이를 보충하려다보니 양질의 경제인구가 군대로 유입되어 경제력의 약화가 심화된다.
. 거기에 3세기의 시작점인 카라칼라 황제의 로마시민권 전면 확대로 - 인기를 위한 정책이었는지 선의에 의한 것이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 속주세가 사실상 사라지며 재정은 더욱 악화되고, 이를 메꿔야 할 사회사업 역시 체제에 대한 불신으로 인해 축소된다. 눈에 보이는 암살과 침입과 내전이 아닌, 로마를 떠받쳐왔던 사회 시스템의 붕괴야말로 진정한 '3세기의 위기'였다.
. 이런 로마를 차근차근 장악해 간 것이 기독교였다. 공공심과 사회적 연대가 사라진 로마제국에서 기독교는 유일하게 구성원들에게 연대감과 위로를 제공할 수 있는 집단이었다. 자선활동을 통해 사라진 사회사업을 대체하고 붕괴된 사회안전망을 메웠다. 더 이상 로마인으로서의 자긍심이 유효하게 기능하지 않은 상황에서 '크리스티아누스'로의 새로운 소속감을 제공했다. 시오노 나나미 여사는 이런 일련의 과정을 기독교의 '로마 탈취'라고 명명하는데, 의도를 떠나 그 자체로 상당히 절묘한 네이밍이라는 생각이 든다. 3세기의 70년을 거치며, 로마는 외부의 껍데기만 남아있고 그 내부는 기독교가 장악해갔던 것이다. 뒤를 이은 황제들이 이 상황에 대해 내놓을 각각 반대의 해결책은, '13권에서 공개됩니다.' :)
불행이나 역경에 시달리는 사람들에게 최후의 구원이고 위안이 되는 것은 희망이라고 전성기의 로마인이었던 세네카는 말했다. 그런 로마제국도 3세기 후반에 접어들면 제국 영내에 사는 사람들에게 '평화'를 줄 수 없게 되었기 때문에, '희망'도 줄 수 없게 되었다. 완고한 신앙심보다 자유로운 이성의 작용을 중시해야 한다는 철인 황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말이 과연 그들에게 효과를 기대할 수 있었을까. 기독교가 승리한 요인은 실제로는 로마가 약해지고 피폐했기 때문이다. 로마제국은 활력을 유지하는 데 가장 중요한 요소인 자신감과 자긍심마저 잃어버렸다.
- p. 418. 로마제국과 기독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