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인가, '제국'인가-두 황제의 서로 다른 선택

로마인 이야기 13권 - 시오노 나나미(한길사) ●●●●●●●◐○○

by 눈시울


'사두정치' 체제도 이제 그것을 믿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이 시대에는 아직 로마 영토로 쳐들어와서 땅을 점령하고 거기에 정착하는 단계에는 이르지 않았다. 쳐들어와서 사람이나 가축을 빼앗아 자기네 땅으로 돌아가는 도적행위에 머물러 있었다. 하지만 이런 일이 상례가 되면 그 땅에는 아무도 살지 않게 된다. 겁에 질린 주민은 안전한 도시로 흘러든다. 지방 인구는 줄어들고 도시 인구는 늘어나는 지방 과소화와 도시 과밀화의 시작이다. 도시와 농촌에 주민이 적절히 흩어져 사는 균형 관계가 깨지면, 그 다음에 기다리고 있는 것은 생산성 저하와 실업자 증가다. 이것을 막는 길은 안전보장 뿐이다.

- p. 24. 혼미에서 탈출




. 12권 내내 이어지던 '3세기의 위기'에 빠진 로마제국을 구하기 위해 13권에 등장하는 두 황제는 각각 반대의 해법을 내놓는다. 우선 먼저 등장한 디오클레티아누스는 내부의 혼란을 군사적으로 제압하고 황제의 자리에 올라 전제정치를 시행했음에도 로마라는 체제를 존속시키기 위해 로마제국을 4등분하여 사두정치를 시행했으며, 이에 그치지 않고 사두정치 체제가 어느정도 안정을 보이자 과감하게 은퇴를 선언하기까지 했다. 그와 반대로 이후에 등장한 콘스탄티누스는 분할되었던 제국을 다시 하나로 합치고, 동방식 전제군주제를 도입해 제위기간 내내 절대권력을 누렸다. 둘을 비교해보면, 그나마 '로마'를 유지하려고 했던 이는 디오클레티아누스라고 봐야 할 것이다.


. 그러나 디오클레티아누스의 결단은 권력의 속성을 이해하지 못한 이상론으로 끝이난다. 그가 권력을 내놓고 물러나자마자 로마는 갈라진 권력을 소유한 이들의 내전에 의해 몇 번이고 시달려야만 했으며, 이미 권력을 내놓은 디오클레티아누스는 아무 힘도 없고 아무 목소리도 낼 수 없는 상태에서 그가 고심 끝에 만들어낸 체제가 무너지는 것을 보아야만 했다. 말년의 그는 아내와 딸이 시해되는 것조차 막을 수 없을 정도로 무력했다.




디오클레티아누스가 만년에 어떤 심경이었는지를 알려주는 기록이 전혀 남아 있지 않아서 애석하다. 그가 확신을 가지고 실시한 정책은 그가 살아 있을 때 모조리 파탄을 맞았다. 그런 일을 겪은 황제는 그를 제외하고는 아무도 없다. 기독교 문제만 해도 그렇다. 그가 박해와 탄압을 강행한 첫해부터 헤아려도 겨우 10년 뒤에 방향이 180도 바뀌었다. '사두정치' 체제도 이제 그것을 믿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 p. 242. 기독교 공인




. 그 과정을 지켜 본 콘스탄티누스는 '로마제국'에서 '로마'를 버리는 쪽을 택한다. 이미 로마 전체에 퍼져있던 기독교를 현실적인 세력으로 받아들이고, 여기에 동방국가들의 전제정을 전면적으로 수용하면서 그나마 남아있던 공화제적인 요소를 모두 없애고, 심지어 수도 로마마저도 버리고 새로운 '제국'을 만들어낸다. 그렇게 도나우 군단과 동방 군단을 기반으로 원래의 로마에서 멀리 떨어진 동쪽의 반도를 중심으로 한 다른 수도가 생겨났고, 제국은 그렇게 살아남게 된다.


. '3세기의 위기'를 바라본 디오클레티아누스와 콘스탄티누스의 해결책은 각각 달랐다. 디오클레티아누스가 하나로서의 '제국'을 포기하고 4등분하는 한이 있더라도 어떻게든 로마 그 자체를 지키는 쪽을 선택했다면, 콘스탄티누스는 '로마' 그 자체의 존속은 포기하더라도 제국을 이어나가는 쪽을 선택했다. 그 결과 제국은 분할되고, 그 반쪽은 붕괴되었지만, 나머지 반쪽은 다시금 천년을 이어나간다. 시오노 나나미는 디오클레티아누스의 방법이 이뤄지지 못한 걸 아쉬워하면서 콘스탄티누스의 방법에 대해서는 "그건 로마가 아니다"라고 강변하지만, 중세 천년의 암흑기 동안 그나마 남아있던 제국의 반쪽만이라도 없었다면, 그 암흑은 더욱 길고, 깊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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