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서 로마의 멸망은 결정지어졌다

로마인 이야기 14 - 시오노 나나미(한길사) ●●●●●●●○○○

by 눈시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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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의 전환기에 살게 된 사람에게도 선택의 자유는 있습니다.
흐름을 탈 것이냐, 흐름을 거스를 것이냐, 흐름에서 발을 뺄 것이냐.



도나우 강 북쪽에는 다른 게르만족이 건재해서 여전히 로마 제국 영토에 대한 침입과 약탈을 그만두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쳐들어온 야만족에게 수확한 농작물을 빼앗기고, 친형제부터 일을 거들어주는 노예까지 납치당하는 생활에는 변함이 없었다.

게다가 이제는 황제가 누구든 간에 국가 지출은 줄지 않았다. 율리아누스 황제의 '구조 조정'은 단기간의 단절이었던 것처럼, 군사와 행정이라는 양대 국가기구는 점점 비대해져서 제1부에서 기술한 콘스탄티우스 황제 시대로 완전히 돌아가버렸기 때문이다.

야만족의 약탈과 국가의 중과세에 협공당한 농민의 생활은 고달파질 뿐이었다. 그들은 결국 독립보다 보호를 선택하게 된다. 농민이 농노로 바뀐 것이다.

- p. 325. 야만족의 이주를 공인하다




. 이번 책에서 시오노 나나미 여사는 밀라노 칙령에서부터 테오도시우스 칙령에 이르기까지 기독교를 대하는 세 황제의(실제로는 몇 명이 더 있긴 하다) 정책에 초점을 맞추어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아버지 콘스탄티누스 대제의 정책을 계승해 기독교 수용을 더욱 더 확대한 콘스탄티우스와, 이에 제동을 건 율리아누스, 그리고 기독교를 국교로 승인함으로써 사실상 이후 역사의 방향을 결정한 테오도시우스. 그들의 정책에 따라 기독교의 세가 확대와 축소를 거듭하는 과정이 14권의 주요 내용이고, 그래서 여사가 붙인 제목도 '그리스도의 승리'다.


. 하지만 로마제국 자체를 놓고 보면, 기독교의 공인이나 국교화는 그저 몰락하는 과정에서 벌어지는 부수적인 사건이었을 뿐이다. 오히려 이 시대의 주요 사건이라면 라인강의 주력군단 대부분을 소멸시킨 마그넨티우스의 반란이나, 도나우강 방어선을 무너뜨린 고트 족의 대규모 이주, 이를 방어하는 과정에서 벌어진 하드리아노폴리스 전투의 참패와 발렌스 황제의 전사일 것이다. 이어지는 참사들로 인해 로마는 이제 더 이상 회복할 수도, 돌이킬 수도 없는 지점에 이르게 된다.




3년에 걸친 이 내란에서 전력에 가장 깊은 상처를 입은 것은 마그넨티우스의 세력 기반이었던 라인 강 서쪽의 갈리아였다. 아무리 적게 잡아도 3년 동안 잃은 전력이 3만 명은 되었다. 전투에 익숙한 고참병을 3만 명이 넘게 보충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광대한 갈리아의 방어력은 결정적으로 저하되고 있었다. 이 사실을 일찌감치 깨달은 것은 콘스탄티우스 황제보다 라인 강 동쪽에서 항상 서쪽으로 쳐들어갈 기회만을 노리고 있던 야만족이었던 모양이다.

- p. 90. 부제의 처형




. 단순히 전쟁에서 패한 게 문제가 아니다. 그 과정에서 계속되는 약탈과 침략으로 인해 생산 가능한 농지는 대거 줄어들었고, 그럼에도 끊임없이 방어전을 벌여야 하는 국가는 자영농을 상대로 더 많은 세금을 징수할 수밖에 없다. 결국 자영농은 대거 농노화되었으며, 징집 가능한 자원이 급감하면서 이민족을 대규모로 포섭하지 않고서는 군대조차 구성할 수 없는 처지가 된다. 로마의 실제적인 멸망은 다음 권인 15권에서 다뤄지지만, 이미 이 시기에 이르면 제국의 근간이 무너지고 멸망이 확정된 것이나 다름없었던 것이다.


. 그렇기에 여사께서 아무리 아쉬워하신들, 율리아누스의 정책이 지속되었다고 로마가 더 이상 버틸 여지는 없었다. 오히려 이 시기에 벌어진 기독교의 공인화와 국교화는 로마제국 그 자체보다는 이 뒤에 올 중세의 로마에 영향을 끼쳤다고 보는 게 맞다. 이와 함께 시오노 나나미 여사는 율리아누스의 반 기독교 정책이 지속되고 공인화나 국교화가 없었다면 로마가 좀 더 건전하게 유지될 수 있었을지도 모르고, 그리스-로마의 종교나 문화 역시 오롯이 살아남을 수 있지 않았을까 아쉬움을 표하시지만,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이미 로마의 근간이 무너져내리던 상황에서 로마 멸망을 정해진 상수라 생각한다면 로마를 멸망시킨 이들이 기독교를 수용했던 것처럼 그리스-로마의 신을 수용했을지, 더 나아가 종교조차 수용하지 않는 이들이 문화라고 수용했을까 하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다.


. 그리고 그렇게 되었을 때 무력도 권위도 가지지 못했던 다른 이탈리아 도시들의 운명이 그러했듯, 로마 역시 몰려왔다 몰려가는 이민족들에 의해 식민지가 되지 않았을까. 그나마 제국이 붕괴되고 몇 차례 약탈을 당하는 와중에서도 이민족들이 로마 '시'만큼은 교황이 있는 기독교의 중심지라는 걸 인정했고, 그 권위 덕에 길고 어두웠던 중세를 살아남을 수 있었던 걸 보면, '그리스도의 승리'라는 책의 제목은 이 시기를 비꼬는 것이 아닌 - 훨씬 뒤의 시기를, 그 의미 그대로 표현하는 제목이 아닌지.




인간은 이동한다. 게다가 대개는 폭력적으로 이동한다. 4세기에 그들의 눈은, 동쪽으로는 페르시아 왕국, 서쪽으로는 로마제국에 쏠려 있었다. 그리고 이 이동 현상은 도미노식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보통이었다. 로마와 접경한 지역에 이미 정착해 있던 야만족을 뒤에서 새로 이동해온 야만족이 로마 영토 안으로 밀어내는 것이다. 로마제국은 국경 근처에 사는 야만족과는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데 성공했지만, 북방 야만족 문제가 전혀 해결되지 않은 것은 이 도미노 현상이 4세기에 와서 점점 심해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 p. 295. 야만족 출신 황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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