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친구 마키아벨리 - 시오노 나나미(한길사) ●●●●●●●●●○
'전' 서기관은 사라지고, 대신 작가가 탄생한 것이다.
여기서 나는 해가 뜨면 일어나 숲으로 가네. 그곳에서 나무를 벌채시키고 있기 때문이지.
숲에는 두어 시간 머물러 있네. 그때까지의 작업을 다시 검토하기도 하고, 일꾼들과 함께 어울리곤 하면서 말일세. 이 친구들 손도 잘 다치고, 툭하면 저희들끼리 싸우고, 이웃마을 사람들과도 곧잘 다투곤 해서 도무지 사고가 그치지 않는 인간들이거든....
숲에서 나오면 옹달샘으로 가지. 그 샘가에 가서야 비로소 나는 내 자신의 시간을 갖게 된다네. 보통 책 한 권을 들고 가는데, 단테나 페트라르카나, 아니면 더 마음 편한 티불루스나 오비디우스 같은 시인들의 작품이지. 그리고 거기에 읊어져 있는 정열적인 연애라든가 시인 자신의 사랑을 읽고, 내 자신의 그것들을 떠올리면서 잠시 그런 생각을 만끽하며 보낸다네. (중략)
식사가 끝나면 다시 선술집으로 돌아가네. 이 시간의 선술집 단골들은 푸줏간 주인과 밀가루 장수와 두 사람의 벽돌공인데, 이 친구들과 나는 그날이 끝날 때까지 크리커나 트릭 트랙 놀이를 하면서 불한당이 되어 보낸다네. 카드와 주사위가 난무하는 동안 무수한 다툼이 벌어지고, 욕설과 폭언이 터져나오고, 생각할 수 있는 별별 짓궂은 짓은 다 자행되지.
거의 매번 돈을 걸기 때문에 우리가 질러대는 야만스런 목소리가 산 카시아노 마을에까지 들릴 정도라네. 이렇게 해서 나는 나의 뇌에 눌어붙은 곰팡이를 긁어내고, 나를 향한 운명의 장난에 분노를 터뜨리는 것일세. 이처럼 내 자신을 짓밟는 것은, 운명의 신이 나를 괴롭히는 것을 아직도 부끄러워하지 않고 있는지 시험하기 위해서라네.
밤이 되면 집으로 돌아가서 서재에 들어가는데, 들어가기 전에 흙 같은 것으로 더러워진 평상복을 벗고 관복으로 갈아입네.
예절을 갖춘 복장으로 몸을 정제한 다음, 옛사람들이 있는 옛 궁정에 입궐하지. 그곳에서 나는 그들의 친절한 영접을 받고, 그 음식물, 나만을 위한, 그것을 위해서 나의 삶을 점지받은 음식물을 먹는다네. 그곳에서 나는 부끄럼 없이 그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그들의 행위에 대한 이유를 물어보곤 하지. 그들도 인간다움을 그대로 드러내고 대답해 준다네.
그렇게 보내는 네 시간 동안 나는 전혀 지루함을 느끼지 않네. 모든 고뇌를 잊고, 가난도 두렵지 않게 되고, 죽음에 대한 공포도 느끼지 않게 되고 말일세. 그들의 세계에 전신전령으로 들어가 있기 때문이겠지.
단테의 시구는 아니지만, 들은 것도 생각하고 종합하여 정리하지 않는 한 과학이 되지 않는 것이니, 나도 그들과의 대화를 '군주론'이라는 제목의 소논문으로 정리해 보기로 했네. 거기서 나는 가능한 데까지 이 주제를 추구하고 분석해 볼 참이네.
군주국이란 무엇인가? 어떤 종류가 있는가? 어떻게 하면 획득할 수 있는가? 어떻게 하면 보전할 수 있는가? 왜 상실하는가?
- p. 16-18. 산탄드레아 산장, 500년 후.
. 지금으로부터 500년 전인 1512년 봄, 피렌체에서 북동쪽으로 120km 떨어진 라벤나의 들판에서는 4만 명의 병력이 격돌하고 있었다. 당시 유럽을 양분하고 있던 프랑스 대 스페인의 혈투. 고만고만한 제후국과 도시국가들의 시대에 '양으로서의 힘'을 휘두를 수 있던 몇 안되는 국가들 간의 힘대 힘의 정면충돌의 결과, 주요 지휘관을 포함해 양 군 1만 4천명이 전사했다. 특히 승리를 거둔 프랑스 측의 총사령관과 추기경이 모두 전사하는 참사가 벌어졌는데, 누구도 예기치 못했던 이 결과는 멀리 떨어진 피렌체 공화국, 그리고 공화국의 제2서기국 서기관으로 있던 '공무원' 니콜로 마키아벨리의 인생을 완전히 바꾸어 놓았다.
. '르네상스의 여인들'로부터 시작되어 오랜 시간을 이어져 온 르네상스 시리즈의 끝맺음으로 시오노 나나미 여사는 군주론의 저자인 마키아벨리의 이야기를 선택한다.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 그리고 중세 기독교를 거치며 이제는 윤리와 종교라는 기준을 통해 정치를 보는 게 당연해진 시대에 거름망들을 떼어내고 오로지 그 자체로서의 정치를 이야기한 인물. 로마로 대표되는 공화정을 지지했지만 혼란 상황에서는 군주제도 독재도 필요하다고 이야기한 인물. 그러나 그의 주장은 생전에는 관심을 끌지 못했고, 죽은 후에는 반종교개혁의 파도 아래 금서로 지정되었으며, 그 이후에는 독재자들에게 이용당했고, 프랑스 혁명 이후 계몽과 이상의 기치 아래 비판의 대상이 되었다. 그럼에도 그의 주장은 수용이든 오용이든 재해석의 대상으로든 오늘날까지 살아남아 있다. 그렇기에 시오노 나나미는 르네상스의 종언 직전까지 살면서 르네상스 시대의 정치에 대해 쓴 마키아벨리의 삶을 이야기한다. 탁월한 마무리다.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 시대의 정치는 윤리와 같은 것이었다. 그들이 이상적인 정체의 추구를 그치지 않은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리고 중세. 토마스 아퀴나스는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의 사상에 그리스도교의 생각을 가미했으므로, 윤리는 점점 더 지상적인 것에서 멀어져버렸다. 그로부터 정치는 윤리도 의미한다는 것을 유럽은 오랫동안 의심하지 않게 된 것이다.
마키아벨리의 독창성은, 오랜 세월 연결된 채 본래의 성질마저 변질해버린 느낌의 이 정치와 윤리를 명쾌하게 갈라놓은 데 있었다. 그 갈라놓는 방법이야말로 르네상스였던 것이다.
- p. 315. 군주론의 탄생.
. '나의 친구 마키아벨리'라는 도발적인 제목을 달고 마키아벨리가 '본 것', '한 것', '생각한 것'이라는 3부의 구성으로 이루어진 이 책은 군주론이 아닌, 마키아벨리가 '어떻게 군주론을 쓰게 되었는지'에 대한 내용이다. 그도 그럴 것이, 그 사람의 잘 정리된 사상만 가지고는 그와 친구가 될 수 없을 것이므로. :) 시오노 나나미가 책의 제목과 말미에 쓴 것처럼, '마키아벨리를 읽는 이의 친구로 만들기 위해' 책은 2/3의 분량을 할애해 군주론을 쓰기 이전의 마키아벨리의 행적을 따라간다. 피렌체 공화국의 공무원이었던 - 지금 지방직으로 친다면 7급 최선임이나 아직 현장에서 뛰어야 하는 6급 무보직 계장(어차피 공화국이라고 해도 실제로는 수도권의 시와 비슷한 규모니까) 정도 되었을 마키아벨리. 급여는 박봉이고, 출장은 잦은데 출장비는 적어서 자기 돈으로 메꾸기 일쑤고, 걸핏하면 수당 한 푼 나오지 않는 T/F팀에 차출되는 그였지만 워커홀릭인데다 고향을 위해 자신이 원하는 일을 할 수 있다는 데 만족한 그는 스물 아홉부터 마흔 네 살까지의 15년을 일에 파묻혀 행복하게(?!) 보낸다.
정책 결정권은 없지만 정책을 입안할 때, 채용되고 않고를 떠나서 자기가 받아 분석, 종합한 정보에 입각하여 의견을 말할 수도 있었다. 더욱이 서기국 동료들은 그의 생각에 싱싱한 반응을 보여주는 유쾌한 인간들이었다. 스물아홉 살의 마키아벨리는 좋아서 의기양양한 기분으로 관료 생활을 시작한 것이 아닐까? 그의 입버릇이었다는 "에코 미!"라도 외치면서.
'Ecco mi!'라는 이탈리아 말을 이런 경우 어떻게 옮겨야 적합할는지 여러가지로 생각해보니, 그의 생각과 그 무렵의 상태를 바탕으로 그의 버릇이었던 해학 기미의 어조로 표현하려면 다음과 같이 번역하는 수밖에 없을 것 같다.
"마키아벨리, 납신다!"
- p. 161. 비직업관료 첫 등청의 날.
. 하지만 그랬던 그의 삶은 앞서 얘기한 라벤나 전투로 인해 한순간에 무너진다. 프랑스 편에 선 피렌체 공화국, 스페인 편에 선 메디치 가. 프랑스 군은 승리에도 불구하고 군사지도자와 정치지도자를 한순간에 모두 잃고 갈피를 잡지 못한 채 와해되고, 그와 반대로 비록 패배했지만 메디치 가가 살아남은 스페인 군은 피렌체로 밀어닥친다. 피렌체 공화국 군은 스페인 군의 공격에 붕괴되고, 지도자였던 소델리니는 망명하고, 정부가 무너졌다 재구성되는 혼란 가운데 마키아벨리는 '공무원', '실무진'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면직된다. 그 때 그의 나이가 마흔 셋. 그 나이에 이렇다할 자산도 기술도 자격도 없는 문과(응?) 백수라니. 누구에게나 악몽 같은 일이다. 그저 끔찍할 뿐이다. 상상도 하기 싫다(....)
애초부터 도시생활자였고, 바로 얼마 전까지만 해도 국정의 중추에 있던 사람에게는 산장의 조용한 생활은 견디기 어려운, 생과의 단절을 의미한다. 이것이 마흔 네 살로 옮겨가고 있는 마키아벨리를 괴롭히지 않을 수 없었으리라.
니콜로 마키아벨리는 평온한 은둔 생활을 그것대로 즐길 수 있는 사나이가 아니었다. 이것도 제2의 인생이다 하고 유연히 대할 수 있는 사나이도 아니었다. 그는 분노가 들끓는 가슴으로 '은둔'한 것이었다. '군주론'은 이 분노의 산물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나의 그릇된 판단일까?
- p. 309. 1512년, 여름.
. 그렇게 그는 다시는 직장으로 돌아가지 못한 채, 초라한 농장과 성벽 보수하는 일로 근근이 연명하면서 글을 써내려간다. 왜 피렌체 공화국은 멸망할 수밖에 없었는지. 그렇게 되지 않으려면 - 그래서 자신 같은 실업자를 또 만들지 않으려면 - 어떻게 해야 하는지. 그러면서 반면교사로 공무원 시절에 자기가 보고 경험했던 강대국들에 대한 내용도 넣는다. 그러다보면 이탈리아의 통일과 생존을 외치며 냉혹하게 칼을 휘둘렀던 체사레 보르자의 모습이 떠오르기도 하고, 좋은 상사이고 훌륭한 인격자이긴 했지만 나라를 지켜내지 못했던 소델리니의 모습이 대비되기도 한다. 그렇게 나온 게 군주론이다.
. 그렇기 때문에 책을 다 읽고 나면, '마키아벨리와 친구가 되었습니까'라는 말에 (석연치 않을수도 있지만) 어쨌든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하긴 군주론의 사상가라면 좀 부담스럽지만, 억울하게 잘린 동종업계 종사자와 친구를 안하면 누구와 하겠는가. :)
시대는 바뀌고 주위 환경도 어지럽게 변하는데 사람의 생각과 방법이 변하지 않는다면, 그 사람은 어떤 때는 행운을 만나도 어떤 때는 비운에 울게 됩니다. 다만 대현자가 있어서 시대가 변하는 것을 재빨리 깨닫고, 그것으로 여러 정황이 어떻게 변할 것인지 내다보아 스스로를 그것에 대응시킬 수 있다면, 그는 틀림없이 언제나 행운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그런 대현자는 존재하지 않으므로, 인간은 언제나 가까운 데 있는 것밖에 보지 못하고, 그 결과 운에 좌우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 p. 302. 1512년 여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