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섯째 아이, 공간의 미래, 장편소설가 되기 外
<세계문학>
1. 장편소설가 되기 - 존 가드너(걷는책), ●●●●●●●○○○
- 카버의 글쓰기 선생이었던 존 가드너의 글쓰기에 대한 책. 글쓰기에 대한 일반적인 방법론을 물론 작가가 겪는
영감과 희열, 부업과 생활고에 이르기까지 그가 경험한 글쓰기와 작가생활에 대한 모든 것이 쓰여져 있다.
자신이 걸었던 팍팍한 길을 같이 걸어가겠다는 젊은 작가들에 대한 애정과 걱정이 한가득 묻어나는 책.
2. 대지 - 펄 벅(혜원출판사), ●●●●●●◐○○○
- 온통 거대한 자연과 거대한 중국과 거대한 역사로 가득찬 서사.
19세기 후반의 중국을 배경으로 한 사람의 인생을 드문드문 풀어놓는 식으로 성글게 이어지지만,
시공간적 배경이 워낙 광활하다보니 그게 오히려 시원시원하게 느껴진다.
3. 인간의 대지 - 앙투안 드 생텍쥐베리(학원사), ●●●●●●○○○○
- 생텍쥐베리가 항공우편 회사의 야간 비행사 일을 하며 겪고 생각했던 일들을 적어나간 에세이집.
이런저런 작가의 생각 사이에 첫 비행이나 동료의 죽음, 안데스 산맥을 헤매다 극적으로 살아남은 기요메,
사하라 사막에서 추락했다가 구조된 생텍쥐베리의 경험담이 실려 있는데, 솔직히 이쪽이 훨씬 재미있었다.
4. 페스트의 밤 - 오르한 파묵(민음사), ●●●●●◐○○○○
- 20세기 초 동지중해에 위치한다는 가상의 섬 민게르가 섬에 퍼진 페스트를 계기로 오스만 제국에게서 독립하는
이야기를 다루는 파묵의 가상역사소설. 소설을 쓰던 중 코로나 사태가 터져서였는지 코로나 대처법을 책에
그대로 가져오는 바람에 코로나 방역 홍보물처럼 되어버린 게 아쉽다. 하긴 터키의 사망자가 10만이었으니....
5. 다섯째 아이 - 도리스 레싱(민음사), ●●●●●●●◐○○
- 하필 조카가 막 태어나던 시기에 읽는 바람에 '두려워져서' 제대로 리뷰할 수 없을 정도였지만,
그렇다고 아예 나중에 읽어야지 하고 중간에 덮을 수 있는 책도 아니어서 끝까지 읽긴 읽어야 했다.
그 정도로 생생하고 비참하며 그 어디에도 퇴로가 없고, 읽는 사람의 본능적인 두려움을 건드린다.
6. 파르마의 수도원 - 스탕달(민음사), ●●●○○○○○○○
- 아주 예전에 처음 읽었을 때 영 와닿지 않아서 이 책을 읽기엔 나이가 너무 어린건가 생각했는데,
다시 읽어도 이 책의 인물들은 여전히 평면적이고 유치하며, 스토리는 편의적으로 진행되고,
문장은 아름답긴 하지만 와닿지 않는다. 19세기 초반의 양산형 장르문학 이상도 이하도 아닌 책.
<한국문학>
1. 제28회(2004년) 이상문학상(문학사상사) - 화장, 김훈 外
- 오랜 뇌종양 간병 끝에 아내를 잃고 자신도 악성 전립선엽으로 지친 '나'는 일종의 이상향이자 도피처로 회사
직원을 선택하지만, 표현은 물론 흔한 상상조차 투사하지 않는다. 그저 늙고 피폐해져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는
감성을 홀로 풀어놓기 위해 누구에게도 딱히 언급되지 않는 그녀를 객체로 삼았을 뿐. 우스꽝스럽고 슬프다.
2. 신중한 사람 - 이승우(문학과지성사), ●●●●●●○○○○
- 꼬여도 단단히 꼬인 끝에 아이러니와 억울함이 뒤엉킨 수렁에 빠진 소시민의 모습을 여러 측면에서 조망하고
있는 이숭우의 단편집. 전원주택을 완성하고도 현실에 발목이 잡히다 결국 그 꿈을 이룰 수 있게 되었을 때
비참한 나락으로 떨어져버리는 '신중한 사람'이 베스트. 첫 이야기인 '리모컨이 필요해'도 신선해서 좋았고.
3. 제14회(2020년) 김유정문학상(강) - 우리는 어디까지 알까, 정지아 外
- 변변찮은 지식인으로 메마른 삶을 살고 있는 '나'와 술에 찌든 채 죽음을 앞둔 막노동꾼 사촌동생인 '기택'을
대비시키는 구도나 작가의 메시지는 뻔하지만, 그럼에도 정지아의 문장 - 젖내와 매운탕과 희석식 싸구려
알콜과 땀과 병에 찌든 냄새 - 은 그 생생함과 진함으로 이야기를 끝까지 읽어내게 만든다.
4. 통역사 - 수키 김(문학과지성사), ●●●●●●◐○○○
- 평이함과 지루함 사이의 어딘가를 느릿느릿하게 흘러가던 390페이지,
가슴을 꽉 막히게 하는 60페이지,
그 충격을 무덤덤하게 받아내는 25페이지.
5. 제5회(2004년) 이효석문학상(문학의숲) - 물 한 모금, 이혜경 外
- 비슷한 시기에 나온 다른 문학상 작품집들에 비해 훨씬 전통적이고 우직한 느낌이 드는 단편들로 구성되어 있던
이효석 문학상 작품집. 외국인 노동자에 대해 해설하기보다, 그들의 입을 빌려 직접 이야기하는 이혜경 작가의
'물 한모금'을 읽으며 오히려 더 보편성을 느낄 수 있다는 게 인상적이었다.
<인문>
1. 공간의 미래 - 유현준(을유문화사), ●●●●●●●◐○○
- 권위의 상실을 두려워하며 재택근무를 반대하던 이들은(재택근무 반대 층의 코로나 유병률이 가장 높았던 건
참 극적이었다) 생명의 위협 앞에 재택근무를 받아들이고 회식과 모임을 내려놓았고, 미래의 대안으로 제시되던
원격교육은 한계를 드러냈으며, 공공장소가 봉쇄된 상태에서 집은 어느때보다도 그 가치를 드러냈다.
2. 당신이 무언가에 끌리는 이유 - 말콤 글래드웰(김영사), ●●●●●○○○○○
- 그동안 말콤 글래드웰의 책이 하나의 주제를 가지고 그와 관련된 이야기를 펼쳐나갔다면,
이 책은 결국 하나의 주제로 묶이지 못하고 쟁여두었던 글들을 한데 묶은 책이다.
한 번 쉬어간다고 생각하고, 나름 재미있는 이야기 모음집이구나 생각하면 나쁘지 않다.
3. 생명 가격표 - 하워드 스티븐 프리드먼(민음사), ●●●●●●◐○○○
- 9.11 희생자들의 보상금 책정으로부터 시작되는 이 책은 현대 사회에서 생명의 가치가 어떻게 결정되는지를
이야기한다. 그렇다고 단순히 당위를 주장하는 것으로 끝나지 않고, 세세하고 분석적으로 현 시스템을 설명하고
이익집단들이 '알고리즘'의 이름으로 시스템을 조정하는 방식을 이야기 한다는 점에서 꼭 읽어봐야 할 책.
<종교, 역사>
1. 부활을 입다 - 팀 켈러(두란노), ●●●●●●○○○○
- 사회적으로는 전세계를 뒤흔든 코로나, 개인적으로는 췌장암 4기의 힘겨운 상황에서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부활을 말하는 팀 켈러의 이야기. 부활이 있기에 기독교는 세상을 외면하고 개인의 내세를 쫓는 종교가 아니라,
세상의 어렵고 잘못된 곳에 먼저 손을 내밀고 적극적으로 다가가는 종교가 될 수 있었다.
2. 봄의 제전 - 모드리스 엑스타인스(글항아리), ●●●●●●◐○○○
- 1차대전을 분기점으로 달라지는 사회 분위기에 초점을 맞춘 - 전쟁과 관련된 사회사 혹은 정신사.
그래서 이 책은 사라예보로 시작해 종전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스트라빈스키와 니진스키의 '봄의 제전'으로
시작해 에리히 레마르크의 '서부전선 이상 없다'가 전 유럽을 휩쓰는 모습으로 끝이 난다.
3. 세상의 끝을 넘어서 - 로런스 버그린(해나무), ●●●●●●●○○○
- 대항해시대 온라인의 세계일주 스토리를 진행하면서 부분부분 보다가 너무 재미있어서 처음부터 죽 읽게 된 책.
마젤란에 지나치게 감정을 이입한(?) 나머지 뒤를 이어받아 험난한 항해를 거쳐 세계일주를 완성시킨 이들에
대한 평이 지나치게 박하다는 걸 빼면 우리가 몰랐던 첫 세계일주의 세세한 이야기를 꼼꼼하게 잘 풀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