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로마인 이야기 15권 완결 이후 10년 만에 다시 시작된 시오노 나나미의 그리스 통사 이야기. 내가 처음으로 접했던 로마인 이야기가 6권(아우구스투스가 권력을 장악하고 본격적으로 황제 체제로 들어가는)이었으니 거기서부터 15권 완결까지가 10년, 그리고 완결 이후 짬짬이 그 이후의 시대를 다룬 이런저런 책으로 또 10년. 그리고 그리스인 이야기 3권. 이렇게 써놓고 보니, '책과 함께 나이를 먹어간다'는 게 소름 돋을 정도로 와닿는다. 물론 나만큼이나 시오노 나나미도 나이를 먹었기에, 이제는 로마인 이야기를 쓰던 시절 - '한니발 전쟁'의 몰입감이나 '율리우스 카이사르'를 다룬 넘쳐흐르는 열정에서는 한발 반 정도 발을 뺀 대신 이야기 내내 역사 전체를 관조하는 여유가 느껴진다. 사실 지식으로는 도저히 학자들이 쓴 역사서에 미칠 수 없겠지만, 대신 시오노 나나미 같은'역사작가'들은 글이 유려하다는 강점이 있으니까. 요 몇달동안 학자들이 쓴 이런저런 역사서들을 읽다가 읽었더니 이렇게 문장이 읽기 편할 수 없다. 페이지가 술술 넘어간다. :)
. 보통 페르시아와 그리스의 전쟁하면 마라톤 전투, 그리고 300으로 알려진 테르모필레 전투, 그리고 살라미스 해전 정도가 유명하고 역사책에서는 주로 이 전투들을 하나하나 상세하게 묘사하는 데에 집중한 후 아테네와 페르시아로 넘어가려는 식이라 '그래서 왜' 라는 의문이 남는다. 물론 크세르크세스의 침공 당시 400만 병력은 헤로도토스 특유의 과장이겠지만, 어쨌든 페르시아는 그 시대 사람들의 이야기로 수백만, 실제로도 수십만을 동원할 수 있는 대국이었고 마라톤에서 투입한 병력은 겨우 1-2만 정도에 불과했는데도 마라톤에서 패하자 원정은 거기서 끝났다. 또한 크세르크세스 역시도 살라미스에서 패배하긴 했지만 아테네는 이미 불타버린 상태였고, 테르모필레에서 승리를 거둔 페르시아 육군은 여전히 건재했지만 그 이후의 행보에 대해서는 잘 설명되지 않는다.
대병력을 소집할 힘을 가진 다리우스 왕은 마라톤 전투에서 패배했지만 군사적으로는 큰 타격을 입지 않았다. 그리스 침공에 나선 병력은 2만 5천명 정도였다. 당시 페르시아의 국력을 생각하면 그보다 열 배나 많은 군대를 동원해 곧바로 공격할 힘이 있었다. 다리우스가 입은 진정한 타격은 위에서 제시한 두 가지 이유, 즉 '왕 중의 왕'의 '신화'가 무너졌다는 점이다.
실제로 1만 명밖에 되지 않는 아테네에게 패배하자 그 열 배에 이르는 속주의 주민들이 봉기를 일으켰다. 페르시아는 아테네에 설욕전을 펼칠 힘을 잃었다. 마라톤에서 철수한 뒤 4년 이상을 이집트 전역으로 퍼져나간 반란을 진압하는 데 허비하고 말았다.
- p. 173. 제1차와 제2차 전쟁 사이의 10년
. 그렇다보니 이렇게 개개의 전투보다는 전쟁 자체에 초점을 맞춰 통사식으로 읽어나가면 마라톤 이후 페르시아 전역에서 수없이 벌어진 반란이나, 살라미스 이후의 플라타이아이 전투처럼 '저명한 역사' 사이사이의 빈틈이 하나씩 메꿔진다. 그 와중에 파우사니아스처럼 역사 속에 가려져 있던 승자가 드러나기도 하고. 이렇게 빈틈을 메꿔나가면서 인과관계를 맞춰갈 수 있다는 게 이 책의 장점. 아마 이야기의 진행 상 2권에선 페르시아 전쟁에서 승리한 그리스의 번영과 펠로폰네소스 전쟁 이야기가 다뤄질텐데, 거기서는 또 어떤 빈틈을 메워갈 수 있을 지 기대가 된다. :)
'그 격차'(민주정)는 왜 생겼을까. 아테네만이 중산계급을 확립하는 데 성공했기 때문이었다. 솔론이 첫걸음을 뗴고 페이시스트라토스가 경제력을 더했으며 그 뒤를 계승한 클레이스테네스가 개혁을 단행해서, 아테네는 스스로 생산하는 사람들이라는 의미를 가진 '건전한 중산계급'을 확립했기 때문이다. '잘게 분할'하는 데 그치지 않고 재편성한 것이 사회 격차를 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