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포의 보수 일기 - 온다 리쿠(북폴리오) ●●●●●○○○○○
아니, 생각한다기보다 나 자신과 그 장소에 물어본다는 쪽이 맞을 것이다.
여기서 무슨 일이 벌어지면 놀랄까. 무엇이 나타나면 이야기가 될까.
. 한 때 온다 리쿠의 책을 '섭렵했다'고 할 정도로 읽었던 적이 있다. '밤의 피크닉'으로 시작해 '흑과 다의 환상' 에서 본격적으로 온다 리쿠의 이야기에 빠져들었고, 이후 '삼월은 붉은 구렁을'과 리세 시리즈, 도코노 일족 시리즈, 단편집과 추리소설과 판타지물에 이르기까지 당시 출간된 모든 책을 도서관과 마을문고와 서점에서 구해서 더 이상 읽을 책이 없어질 때까지 읽어댔다. 작품의 편차가 원체 큰 작가라 개중에는 시시한 소설도 많았고, 앞부분에선 추리소설인가 잔뜩 기대감을 주다가 뜬금없이 판타지로 끝나기도 하는 등 종잡을 수 없는 경우도 있었지만, 그래도 그렇게 읽을 수 있었던 건 문장이 좋고 그 문장을 통해 보여지는 장면들이 좋았기 때문이다. 사실 소설을 읽다보면 발상도 (특히 추리소설이라면) 트릭도 좋은데, 정작 문장이 지루해서 읽기가 고역인 경우가 꽤 있다. 그런 점에 있어서 온다 리쿠 같은 작가들은 이야기가 삼천포로 빠지거나 말거나 당장 문장을 읽는 게 즐거우니까 계속 읽게 된다. 하여튼 그렇게 읽다읽다 더 읽을 소설이 없어져서, 에세이로까지 넘어오게 되었다. :)
. 원래 에세이라는 게 약간 - 특히 소설가가 쓰는 에세이라면 더욱 - 일종의 팬미팅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연예인이라면 얼굴을 구경하고 사진을 찍고 사인을 받든가 하겠지만, 사실 소설가라면 얼굴을 봐도 그다지 큰 의미는 없으니까(....) 대신 글을 통해 그들의 일상을 구경한다. 작가도 독자도 서로 긴장을 풀고, 소소한 신변잡기나 책, 음악에 대한 감상을 들으면서 공감대를 형성한다. 때로는 그게 다른 독서로 이어지기도 하고, 내가 이미 접한 것이면 반가워하게 되는. 그 과정에서 문장 몇 개를 건질 수 있다면 더 좋고. 그런 게 에세이 아닐까. 가령 이 책에서라면 '저도 기네스 맥주를 좋아합니다. 여사님'이라든가 '저도 쿠도칸 다큐멘터리 봤는데 자기 드라마 리허설 보고 웃을 때 저 사람 왜 저러나 싶더라고요' 같은 반응 정도.
. 그러다가도 아주 잠깐씩 드러나는 작가 온다 리쿠의 모습에 흠칫하기도 한다. '비행기 안돼 무서워 하지만 난 자본주의의 노예라 탈 수밖에 없어' 같은 신변잡기를 건성건성 넘어가고 있다가 갑자기 "그런 가게에서는 손님과 호스티스 모두 연기를 한다. 서로 과장된 반응을 보이고 헤프게 웃는다. 그러나 진지한 이야기를 할 때, 사람은 표정과 반응이 모두 극단적으로 적어진다. 자연히 동작이 줄어들고 공기에 긴장감이 어린다. 그것을 '어둡게 가라앉아 있다'고 표현한 것이리라." 같은 문장과 맞닥뜨리면 나도 모르게 턱을 고이고 문장을 곱씹게 된다. 물론 그러다다가도 곧 '기장님 제발 그만 흔들어요 난 돌아가겠어 돌아갈거야' 식의 푸념을 접하고 있자면 다시 자세를 늘어뜨리게 되지만. :)
. 밀고 당긴다고 하기엔 전반적으로 좀 느슨하긴 하지만, 이런 식으로 전혀 생각지도 못한 타이밍에 치고 들어오는 부분이 있는 게 이 책이 가진 묘미이다. 하지만 앞서도 말했듯 에세이는 어디까지나 팬미팅이고, 이 책은 그런 경향이 좀 더 농후하니까. 일단은 '흑과 다의 환상'이나, '유지니아'나, '코끼리의 귀울음' 같은 소설을 읽고 작가에 대한 팬심이 좀 더 커진 후에 도전하는 걸 추천. :)
눈과 책은 비슷하다. 한 권, 한 권은 별 것 아닌데, 어느 새 소리없이 쌓여 그 무게가 생활을 압박하고, 때로는 무너져 내려 위험한 흉기로 돌변하곤 한다.
- p. 24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