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왕자 필사
"내가 너 책임질게!"
책임으로 부부가 된 우리는
책임감이라는 임무를 수행하는
직장동료가 되어가
우리가 결혼 전
책임지려던 마음은
사랑이지 않았나
책임이 품고 있던 사랑은
알갱이가 작아 다 쏟아져내리고
남아버린 책임의 또 다른
임무만 남아버렸어
곱디고운 사랑이 빠져나간
우리는 거친 입자만 남아
서로에게 상처를 남겨
또 다른 책임이라는 이름아래
아이들이 있어
그 책임에도 부모의 사랑이
가득했지
더 이상 아이가
부모가 우주가 아님을 알고
방문 하나로 거리를 뒀지
부모자식 간에도
임무라는 책임이 남아
여기서도 서로 모난 부분끼리
부딪쳐
어린 왕자를 읽었지
'여우'의 길들임과 기다리는 시간만
기억되던 이전과 달리
하나가 남더라
꽃
어린왕자에겐 꽃이 있어
행성을 떠나고 나서야 알게 된
세상 여느 꽃과 다른 의미의
꽃 한 송이가 있는 거야
어린 왕자가 말했지
나는 꽃에 책임이 있어!
나는 이제야 어린 왕자를 읽었어
나는
당신에게도
아이에게도
책임이 있어!
나는
당신에게도
아이에게도
사랑받고 싶어!
나는
당신을
아이들을
사랑하고 있어!
책임이라는
조금은
무겁고 진한
사랑이라는
내 꽃은 그대들이야
양이 꽃을 먹느냐 안 먹느냐는
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문제였던 거야
"내가 너 책임질게!"라는 고백처럼
책임 = 사랑
사랑이 잊히고 책임만 남아 버거웠나봐
어린 왕자가 찾아준 건
사랑이라는 이름의 책임과
'나'라는 행성을 빛내는 방식이야
내가 계산한
책임의 속셈은 이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