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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재수 없지?

기형도 / 질투는 나의 힘

by baraem

"재수 없어!!"

마음에 들지 않고 기분이 나쁘다는 의미를 가진 '재수 없어!'




나는 가끔 내가 재수 없다!


중학교 시절 비가 와서 소풍이 취소된 날이 있다.

소풍은 학교로 변경되었고 삼삼오오 아이들은 흩어져 군데군데 모여들었다.

동그랗게 둘러앉은 어느 무리에 앉았는데 내 차례라며 질문을 하라고 했다.


아마 진실게임이였나 보다.

누군가를 지목해 질문을 하라는 거였다.


지목 했다.

왜 그 친구를 지목했는지는 모른다.

지금이라면 아마 그 친구라면 무난하리라는 안전함이 있었던 모양이다.




"00야! 나 재수 없지?"




순간의 정적을 느낄새도 없이 둥근 원을 이탈해 뛰어나왔다.

학교 밖으로.


달리기는 또 왜 그리 잘하는지 누가 따라오지도 않는데 빨라서 따라 잡지 못할 듯 뛰었다.




비 오는 날 날궂이를 좋아한다.


자발적 미친년이 되어 뛰어다니는 걸 즐기는 편이다.

허나 그날의 나는 자발적 미친년의 행복감이 아닌 자발적 재수 없는 년이 되어 달렸다.



자기혐오를 말하는 게 아니다.

재수 없음에 대해 말하는 것이다.







재수 없는 놈이 있었다.


따박따박 말을 하는데 어느 말 하나 틀린 게 없다.

그렇게나 간결한 꼬집음에 '너 재수 없어!'라고 말했지만, 나를 읽어줬다는 기쁨과 나를 읽어버렸다는 쪽팔림에 마중 나간 말이 "재수 없어!"다.





나는 요즘 내가 좀 재수 없어 보인다.


세상 뭐 좀 안다는 듯 평온해 보이는 표정이나, 뭐든 이해해 보려 느리지만 멈추지 않고 돌아가는 생각 회로 가 그렇다. 단지 먼저 걸어가 본 길을 말하는데 낯선 길에 들어선 이의 불안함 앞에 내가 으스대고 있진 않나 자기 검열에 들어간다.



이러니 '재수 없음'이 그저 '마음에 들지 않고 기분이 나쁘다는 의미'에 그치지게 마음에 들지 않다.

타인에 피해를 준 게 아니었다면 그 재수 없음에는 '불편한 내 마음 조각'이 딱 걸린 것이다.





중학생 시절 나는 나를 사랑하지 못해 '나를 재수 없어 했고'

조금 지나서는 '내 재수 없음에 너도 재수 없어질까 멀리했고'

자라서는 나를 읽어 꼬집는 상대의 말에 '쪽팔려 재수 없어 했고'

지금의 나는 스스로를 재수 없어 할까 봐 '재수 없는 자기검열을 한다'




그러니 혹시 자신이 '재수' 없다고 여기는 이가 있다면

재수는 옴 붙지 않고 다시 도전할 수 있는 기회라고 전해주면 좋겠다.




넌 재수 있는 사람이라고!

뭐 재주면 더 좋고!




재수의 의미재물이나 좋은 일이 생길 수 있는 운수니까.




KakaoTalk_20251106_103011738.jpg 기형도 / 질투는 나의 힘 / 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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