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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 확인

2016-03

by 김토로

창고시설로 들어온 곳이 있다. 아래에 기존의 창고 시설이 있고, 상단부에 사업자는 다르지만 추가로 창고시설을 짓는 곳이었다. 평균임목축적이 지역 평균입목축적의 115%로 높은 편이었다. 이는 현장에 가서 확인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되어 현장을 확인한 뒤 문제없을 시 조건부로 승인되기로 했다.

순전히 임목축적 때문에 현장을 보러 간 것이었는데, 가보니 경사도의 문제도 있었다. 기존의 창고를 지으면서 만들어진 법면으로 인해 경사도가 심하게 높았으나 프로그램으로 산출하여서 개발 전의 경사도가 적용되어 있었던 것이다.




1. 해당 부지는 전수조사를 진행했다고 했다. 그러나 현장을 확인해본 결과 경급 6 이상의 수목 중 누락된 것이 있었고, 절토부 상단 부근의 수목을 최근 벌목한 뒤 복구한 것으로 보였다. 마른 정도를 보았을 때 5년 이내의 벌목이기 때문에 임목축적 서류에 포함되어야 한다.

특히 사업지 경계 부근의 수목들의 임령이 높고, 경급도 높아서 보호해야 할 가치가 있고, 공사 시 훼손되거나 완료 후 고사될 가능성이 높아 보이므로 보호대책 마련이 필요해 보였다.

2. 서류상 경급 32의 적용 수고를 잘못 대입하여 결과를 도출하였다.

3. 사업지의 직선거리 450m 위치에 보호수가 있고, 딱따구리 서식지도 존재하므로 공사 시 소음관리에 특별히 유의해야 한다.

4. 경사도의 경우 절토부를 기준으로 좌측 부근의 토양이 유실되어 경사도가 높았고, 현황 실측을 진행한 절토부의 경우 서류상 경사도 이상으로 여겨지므로, 기존 조사자를 제외한 제3자가 진행할 필요가 있다.

5. 사업지까지의 출입을 위한 도로가 2차선이고, 주변에 주택이 있음에도 인도가 설치되어 있지 않아 공사차량 및 창고 이용 차량의 출입 시 주의가 요망된다.


실제보다 좀 줄이기는 했지만 위와 같은 의견을 줬다. 현장을 한 번쯤은 가봐야겠다고 생각했고, 이렇게 빨리 현장에 가게 될 줄은 몰랐다. 산림조사자야 정말 얼마나 전문가냐 싶지만 결국은 사업을 진행해야 하는 사업자에게 고용된 입장이기 때문에 사업자의 입맛에 맞게 서류를 작성할 수밖에 없으리라 생각된다. 물론, 아니신 분들도 있겠지만.




이 창고시설은 참 다양한 경험을 하게 해 줬다. 위원이 되고 고작 세 번째 회의만에 사업자가 청탁을 해 들어왔다. 단체의 임원급 회원을 통해 사업을 통과하게 도와달라고 말을 전하더니, 내가 안 만나준다고 하니 막무가내로 사무실을 찾아왔다. 그걸 주선한 임원은 정말 최악이었다. 사실 주선도 아니고 그냥 쳐들어왔다. 찾아온 사람은 엄밀히 말하면 사업자가 아니었다. 사업의 콩고물을 받아먹는 관계자였다. 말이 먹히지 않았다고 생각했는지 이후에 사업자도 찾아왔다.

비교할 산림조사서를 가지고 오라고 했으나 늦게 제출해 놓고 빨리 의견을 달라고 전화를 하고, 의견을 좋게 달라는 건 아니지만 내가 의견을 늦게 주면 큰일 난다는 둥의 협박 아닌 협박을 했다. 이 사업자는 대기업이라면 대기업이었고, 토지주는 공기업이었다.

의견서를 써 놓고 검토하고 있었는데 1시간이 멀다 하고 전화가 오고, 전화를 못 받았더니 온다는 말도 없이, 심지어 문자도 없이 사무실 앞에 찾아와서 쭈뼛거리고 서 있었다. 토지주와 관련된 사람이었다. 아마 관리자급은 아닌 것처럼 보였다.


"그렇게 계신다고 뭐가 되나요? 보내 드릴 테니 가세요."


이렇게 말해도 쭈뼛거리고 서 있더니 갔다. 누가 보면 문 앞에 세워두고 벌주는 것 같고, 갑질 한 것처럼 보이겠지만 실상으로 들어가면 협박은 내가 당하고 있었던 것이다. 나중에 들으니 나 때문에 잘못되었다느니, 내가 나쁜 사람이라느니 그런 이야기까지 하고 다녔다고 한다.

심의를 하는 위원의 개인정보(전화번호, 주소, 소속 등)가 쉽게 나가는 것도 화가 나지만, 사무실에 와서는 내가 위원인지도 모르고(젊은 여자라고는 생각도 못하고 왔겠지) 거드름을 피우다가 나인걸 밝히니 태도가 확 변하는 걸 보니 더 화가 났다.

심지어 임목축적을 조사했던 산림조사자는 내가 없는 사이 사무실에 찾아왔었다고 한다. 약속하고 왔냐니까 그렇다고 거짓말까지 했다나. 약속이 없는 것으로 안다는 동료의 말에 "사업주가 시켜서 온 건데..."라고 하더니 갑자기 태도를 바꿔서 "내가 나이가 많다고 무시하는 거냐." 등의 이상한 발언까지 하고 갔다고 한다.


이런 상황들이 종종 생긴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빨리 만나게 될 줄은 몰랐다. 이 일로 인해 막무가내로 찾아오는 사업, 청탁을 하는 사업은 더 꼼꼼히 보겠다고 다짐하게 되었고 여전히 지키고 있다. 문제가 없다면 굳이 찾아올 필요도 없고, 따로 설명할 필요는 더더욱 없을 테니까 말이다. (그러나 나의 이런 굳건함에도 협박과 무시는 현재 진행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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