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자람이 Jul 26. 2021

내일은 또 내일의 숨결에


 인생이라는 긴 여정 속에 아픈 기억들은 아물지 않고 상처가 되기도 합니다. 그런 상처들이 부정적 에너지가 되기 전에 건강한 해소법을 찾을 필요가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매일 걷기 운동을 하고 있습니다. 건강도 유지하고, 자신과의 대화를 통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다양한 방법을 모색하기도 합니다.

 오래도록 해왔던 산책은 저의 마음을  어루만지는 시간입니다. 운동을 하며, 책 읽듯 마음을 읽어 옵니다. 탁 트인 공간의 위로와 잔잔한 물의 흐름이 마음의 평정을 찾아 줍니다.

 무던히 애쓰며 바쁘게 살았던 오늘을 다독이는 시간이기도 했습니다. 송골송골 끙끙댔던 긴장감을 푸는 시간이었습니다. 학원을 할 는 밤 11시쯤에 운동을 했는데, 코로나 때문에 요즘은 저녁 7시쯤 합니다.

 학원 운영 때는 학업 스트레스 받는 학생의 반항적 태도, 부모님들의 억지 요구들, 엄마와의 갈등 속에서의 학생들의 거짓말, 학업성과와 친구와의 갈등, 자아 탄력성 회복을 위한 격려의 말들, 수업 방법의  변화와 대응 등 주로 학원운영과 가족들의 고민같은 것들이 이 산책길을 따라 다녔습니다. 이제는 코로나의 수많은 이슈와 뉴스들이 운동하는 발자국과 함께 하곤 합니다. 운동을 시작한 지 7년이 넘었습니다.

 똑같은 코스를 다니다 보니 쌓인 발자국만큼 사소한 것들의 변화가 눈에 들어옵니다. 지나온 추억과 시간이 배어 있는 산책길에서 풍경들이 많은 것을 연상시킵니다. 토독토독 튀어나오는 참새들의 아지트 나무, 발레 하는 나무,물소리 담는 나무 등  익숙해진 나무마다에 눈길도 줍니다. 가로수 불빛에 유난히 빛을 내는 나무도 '빛을 품은 나무'라고 불러 주곤 합니다.

 요즘은 7시가 넘어도 낮 같습니다. 가끔 반가운 나비나 벌이 보이면 꽁무니를 쫓아다니며 사진을 찍습니다. 어찌나 반가운지, 카메라 아이콘을 누르기 전에 금방이라도 날아가 버릴까 봐 조바심을 냅니다. 연두였다가 샛초록으로 바뀌던 풀들 속에서 꽃이라도 피면 그냥 지나치지 않고 화들짝 멈춰 섰습니다.


“와~이거 사진에 담아가야쥐~”


남편은 기다리며 마디 얹습니다.


“꽃만 보면 아기 보듯 벙긋하며 사진을 찍는구먼.. 저것도 예쁘네. 어라? 못 보던 꽃이 저기 보이네”


 남편도 사진을 찍습니다. 잘 찍힌 사진은 제게 보내 주기도 합니다.

 꽃을 보며 감탄하는 말을 살포시 풀어 놓게 됩니다.'짓뭉개고 후벼 파는 바람을 이겨내었기에 네 미소가 그리도 이쁜 거구나~’  

애틋하게  눈길이 머물렀습니다. 꽃마다에 그리운 사람들의 얼굴을 떠올려 보기도 했습니다. 어찌나 빛을 내며 웃고 있는지, 떠올린 얼굴들도 빛이 났습니다.


산책하는 길에 만났던 꽃들의 아름다움 속에 그리운 얼굴들이 빛을 냅니다.




운동을 하다 보면 갑자기 까치들이 까악 까악 노래를 합니다. 그러면 저도 모르게 소리 내서 응답합니다.


"알았다고, 알았다니깐~"


 까치 우는 소리를 들으면 반가움 마음에,


"복 들어온다. 복 들어온다니깐" 까치가 깝치는 소리가 이렇게 들렸습니다. 사실 그러는 날에 꼬박꼬박 복이 들어오는지 확인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왜냐면 그렇게 착각하는 게 좋았거든요. 스스로 풋웃음을 웃다가도, '그리 착깍하면 어때' 싶습니다. 매번 까치들의 소리가 들려 올 때마다, 전 신나게 흥얼거렸습니다.


"알았다고, 알았다니깐~"

반가운 손님의 범위(?)가 넓어진 덕분에 웃는 일이 생기고 있습니다.이런 착깍에 피식~웃으며,산책길에 나만의 유우머를  만들곤 합니다.


 밤에는 커널웨이 분위기가 화려합니다. 운동하면서 맛있게 물들어 가는 가게 냄새들도 향유합니다. 때로는 양고기 냄새가 좀 거북할 때도 있지만, 가게마다의 음식냄새는 눈앞에 음식들을 떠올리게 했습니다.

 도로변에는  가게가 문을 열었습니다. 예전 옷가게였는데 그 가게 간판 내리고 떡볶이 가게가 생겼습니다. 제일 잘 되는 듯 보이는 가게는 배달 대행 가게입니다. 가게 앞 오토바이들이 즐비하게 대기하고 있었습니다. 자주 오토바이 시동 소리가 폭발하듯 들리면, 경제가 역동적으로 흘러가는 소리구나 싶습니다. 사실 코로나가 1년 넘게 이어지면서 자영업자들이 직격탄을 맞았습니다. 4차 유행으로 저녁 장사를 포기하거나, 견디지 못하고 폐업하는 곳이 많아져 안스럽습니다. 커널웨이 양쪽 많은 상가들도 문을 닫거나 비워진 상태였습니다. 내놓은 가게 유리창에는 임대, 매매 부동산 포스터들이 도배가 되어 있었습니다. 그 상인들 얼마나 답답했을까요?  화병을 털어 내듯 가슴을 내리쳤을 것입니다.

 코로나로 문을 닫는 와중에 새로 문을 여는 가게들을  응원하는 마음으로 쳐다보았니다. 근래에 커피와 세트로 파는 와플가게의 샛노란 담벼락을 지나 오면서 ‘코로나 속에서도 살아남으셔요’라는 말을 남겼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화가 이름의 와플집이라 처음 생길 때부터 정감이 갔습니다.  

 산책길의 커널웨이 물줄기는 끗해 보입니다. 소란스러운 마음을 깨끗이 씻어주는 기분입니다. 한 번씩 보트를 타는 사람들을 보면 미끄러지듯이  물 위를 달리는 기분에 잠기기도 했습니다. 자전거 타는 사람들의 역동적인 발놀림에 물줄기가 속도가 붙는가 싶습니다. 개를 산책시키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가끔씩 개들이 주인을 닮은 것 같다는 농담을 남편에게 건네며 개 뒤꽁무니를 계속 쳐다보기도 했습니다.


 풍경마다에 이름을 붙여가며 커널웨이 따라 운동을 합니다.




밤에 만나는 화려한 조명 아래서 바이올린, 기타, 더블베이스 등을 연주하는 조각상을 지나갈 때는 리듬을 타는 듯한 스텝을 밟으며 지나가기도 합니다. 그윽한 조명 옆을 지나가거나 특이한 모양의 나무 옆을 지나갈 때도 가슴속에 불쑥 솟아오르는 말들을 퍼올립니다. 옆사람과는 소리없이 뛰지만 속으로 노래를 부르기도 했습니다.


 우리는, 빛이 없는 어둠 속에서도 찾을 수 있는

우리는, 아주 작은 몸짓 하나라도 느낄 수 있는~


그렇게 노래하다가 보이는 풍경이 바뀌면 레퍼토리가 순식간에 바뀌었습니다.


홀로 푸르른 나무 앞을 지날 때는,

저 들에 푸르른 솔잎을 보라. 온 누리 끝까지 맘껏 푸르다. 우리 나갈 길 멀고 험해도 깨치고 나가 끝내 이기리라~

 이렇게 속으로 노래하는 것을 너무 많이 들었던 그 나무들은 아마도 제가 산책을 가지 못한 날엔,  노래를 흉내 내고 있을지 모른다는 상상을 했습니다.

 걱정이 있는 날에는 빨간 전화박스 옆의자에 앉아서 '이적의 걱정 말아요 그대'흥얼거리기도 했습니다.

'그대여 아무 걱정하지 말아요. 우리 함께 노래합시다. 그대 아픈 기억들 모두 그대여 그대 가슴에 깊이 묻어 버리고. 지나간 것은 지나간 대로 그런 의미가 있죠. 우리 다 함께 노래합시다 후회 없이 꿈을 꾸었다 말해요. 새로운 꿈을 꾸겠다 말해요.~ '흥얼거리다 보면 참 위로가 되는 노래였습니다.

 요즘은 물 옆이라 모기가 많았습니다. 좀 멀리 설치된 빨간 파라솔에서 물을 마시며  음악을 듣기도 했습니다.

시시각각 변하는 경치마다에 어울리는 음악은 제 영혼의 배고픔을 채워 주었습니다.


 

음악을 감상하는 장소들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스스로 안고 있는 문제들을 비틀어 보기도 하고, 거꾸로 뒤집어 보기도 합니다. 요즘은 더워서 중간에 한 번 물을 마시고 쉽니다. 물을 마시다 보면 금방 자신과의 대화 어조가 차분해집니다. 그리고 다른 사람인 듯 자신과의 대화를 다시 하게 됩니다. 신기한 것은 그런 생각 속에 점점 '남에게 보여지는 나'를 의식하기보다 저의 생각을 당차게 실현하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몇 년 동안 운동을 해오고 있습니다. 한 바퀴 돌고 오면 거의 1시간이 넘습니다. 쌓은 발자국만큼 제 건강을 유지해 오고 있습니다. 헛소리도, 노래도, 걱정도, 지나가는 사람으로 인한 엉뚱한 상상도 촘촘히 마음에 들어와 평범한 하루를 채색하곤 합니다. 가녀린 풀잎들이 살랑대던 연두 잎으로, 어둠을 밝히며 빛을 내는 조명들의 화려함으로,  미치도록 하늘을 달리는 헉헉대는 숨결로, 집에 들어오면 적당히 피곤하면서 평화로워집니다. 샤워 마치고 시원한 음료 한 잔 들이켜면, 자신에게 할 일을 했다는 제스처로 빈 컵을 들어 올립니다.


'우리가 코로나 시대를 얼마나 헤맬지는 몰라도, 오늘 운동했으니까 괜찮아.

내일은 또 내일의 숨결에 맡기는 거지. 아듀~~'


 그렇게 새벽 시간을 맞이 합니다.



산책에서   / 자람이


일상이 맴도는 산책길에서

후다닥 튀는 발자국 불꽃을 피웁니다.


하루 동안 가시 돋친 감정들

노란 눈물 젖은 달님에게 녹이고 

바람에 풀어헤칩니다

괜찮다 괜찮다 나를 일으켜 세웁니다


나에 대한 실망감이

노을 풍경처럼 길을 적시

돌고 도는 생각의 실타래에서

설레이는 숨구멍에 불씨를 틔웁니다


녹색 성장하는 나무들 사이로

아득하게 허우적 대던 나의 마음들

초록 잎맥을 펼쳐 냅니다

생기를 북돋는 그리운 얼굴들

눈부신 미소 떠올려 봅니다


내가 선의를 잃지 않으면

뿌려진 선의가 선의를 만나

기대고 따뜻해져서

내게 돌아오는 날이 있지요


실패와 불안의 헛걸음들도

꾸준히 흐르는 물결이 되면

머나먼 푸른 사막 바다를 돌고 돌아

언젠가는 희망의 닻이 되지요


눈부신 미래를 향하여

꿈을 쫓는 발걸음

푸릇푸릇한 산책을 니다.




이티가 두고 간 자전거/ 발레하는 나무/ 흐르는 물결 푸른 사막을 돌고 돌아/ 우주에 떠도는 음악을 모으는 곳 (제가 마음대로 이름 붙이는 장소들)

매거진의 이전글 바로 지금 여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