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있으면 봬요
나의 두통 레벨은 퇴원을 한 이후부터 수직 상승했다. 전에 없던 복통까지 날 괴롭히기 시작했고 몸의 통증까지 있던 나는 정말이지 상태가 좋지 못한 시간들을 보내기 시작했다. 겨우 줄여놓은 패취의 용량은 퇴원과 동시에 기하급수적으로 올라가기 시작했다. 지금 생각해보아도 그 때가 가장 아팠던 때로 꼽을 수 있을 정도로 아팠다.
아침에 눈을 뜨면 뇌를 관통하는 듯한 심한 두통이 나를 괴롭히는게 너무도 괴로워서 정말 눈을 뜨고 싶지 않았다. 하루종일 파도가 심한 배 위에 서 있는 것만 같았다. 물만 마셔도 헛구역질을 해댔다. 편두통은 위장장애를 동반하는 질환이기도 하기에 편두통이 시작되면 나는 하루종일 헛구역질과 구토를 해대야만 했다. 그래서 나는 토해도 기분이 나쁘지 않을 음식들을 먹었다. 그 예로 아이스크림을 제일 많이 먹었다.
산소가 도움이 될 수도 있다는 말에 산소통을 달고 살아보기도 하고 멀미약이 효과가 있기도 하다는 말에 멀미약 한뭉텅이를 사 몸을 가누지 못할 정도로 어지러울 때에는 멀미약과 트립탄제를 동시에 삼켜내기도 했다. (죽고 싶을 정도의 두통에 시달리지 않는 한 이 방법은 따라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하지만 이내 토해내길 반복하는 내 몸에 나는 포기하고만 싶었다. 진심으로 내 몸을 버리고 싶었다. 그 어떠한 노력에도 내 몸은 쉬지 않고 아팠다.
몸의 통증은 익숙해진 탓인지 참으라면 어느정도는 참을 수 있었지만 두통은 어떻게 해도 참을 수 없었다. 두통은 잠을 잘 수도, 다른 것에 집중을 해 통증을 분산 시킬 수도 없게해 사람을 미치게 만들기 딱 좋았다.
참 이기적이게도 내가 괴로우니 한참 전에 손을 놓아버린 하나님을 찾기 시작했다. 나는 매일 자기 전에 내일은 이 괴로운 날들이 끝이 나게 해달라고 기도하고 또 기도했다.
하지만 병원에서는 이 이상으로 특별하게 내게 적용을 해볼 수 있는 치료가 없다는 말만을 반복할 뿐이었고 그에 나는 무력하고 미지근한 눈물을 흘리길 반복할 뿐이었다. 자고 일어나서 울고 밥을 먹다 울고 운동을 하다 울고 진료를 받다 울고 그냥 계속 울었다. 울고 싶지 않아도 눈물이 났다.
당시에 나는 류마티스 내과 외래 때 교수님께 매주 공유하던 약일지를 쓰고 있었는데, 약일지가 갈수록 빼곡하게 차던게 너무도 싫어서 마음대로 약을 빼먹는 일이 잦아졌다. 약을 먹기 싫다는 생각이 강해지니 몸에서도 약을 거부하기 시작했다. 약을 먹으면 반사작용으로 구토를 해 약을 뱉어내기 시작한것이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진짜 나으려는 의지가 있긴 한걸까.”
근데 사실 많은걸 바란 적도 없던 것 같은데, 그냥 더도 덜도 아닌 딱 친구들만큼만. 아니 그거의 절반이라도.
내 꿈은 그냥 남들처럼 안아프고 평범하게 사는것
그냥 두통 없이 오래 앉아있을 수 있었으면 좋겠고
몸 통증이 없어서 원하는 만큼 운동하고 싶다.
-2021년 6월 21일 일기 中
외래진료를 가면 또 다시 입원치료를 하자는 이야기만을 듣길 반복할 뿐. 입원치료는 일시적인 것일 뿐 더러 나처럼 명확한 원인을 가지고 있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입원자체가 유의미하지 않다는 것을 누구보다도 잘 알기 때문에 여러 차례 입원을 거절했다.
지쳐가기만 했다. 사실 힘이 나는게 이상한 상황이었다.
여느 날 처럼 먹기 싫은 약을 손에 쥐고 인상을 쓰고 있을 때였다. 그 날 따라 우연히 든 생각은
“처방 받아온 약을 모두 털어 넣으면 오히려 이상해져서 반대로 나을 수도 있지 않을까?”
지금 생각해보면 한없이 잘못된 생각이라는걸 알지만 당시에는 옳은 판단을 할 건강한 몸과 마음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어느 때 처럼 외래를 보는 도중 교수님께서는 내 표정을 살피더니 유난히 지쳐보이고 울 것 같다고 말씀을 건네셨다. 지치긴했지만 사람이 너무 지치니 오히려 눈물이 나지 않더라.
“2주 뒤에 봐요”
“살아있으면 봬요”
나는 그 때 결심했던 것 같다. 내가 계획한 것을 실행해보기로.